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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간비오산(干飛烏山) & 원각사의 봄바람

간비오산(干飛烏山) & 원각사의 봄바람

간비오산자락에서 조망한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꽃 빛으로 스며드는 봄바람의 따스함이

어제 바람 다르더니 오늘 바람 또 달라서

바쁜 꽃잎 앞 다투어 서둘러 피어나고

잠이 덜 깬 벌 나비들 비틀대며 날아드네

꽃바람 속으로"

                                       함기선의 <꽃바람>이란 시다.

장산소나무 숲
춘난과 현호색

흩뿌리다 만 이슬비가 연두이파리를 살짝 어루만진 산길에 봄바람이 알랑댄다. 어제는 천둥번개라도 치며 여린 봄을 요절낼 것 같던 바람인데 언덕에 바짝 엎드린 야생화를 일깨운다. 햇살이 부시시 고개 든 꽃잎을 파고들고. 허나 정작 기다리는 벌 나비는 소식이 없다. 그래보여선지 작고 청초한 야생화가 눈길을 뺏는다.

간비오산 봉수대
고비와 고사리(좌)

아내는 골짝에서 진초록고비가 밀어 올리는 새순을 발견하곤 호들갑을 떤다. “여보, 고비 땁시다.” 발길은 이미 고비 숲을 향하는 아내였다. 골짝 여기저기에 자생하는 고비다발 속에서 고비새순 따기는 그렇게 느닷없이 시작됐다. 고비나물은 고사리 못잖은 산나물이다. 울`부부가 서울생활을 하면서 고사리채취 할 데가 없어 아쉬워하고 있는데 고사리사촌인 고비를 발견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소냐! 나도 고비채취에 뛰어들었다.

간비오산 봉수대에서 조망한 마린시티

야산에서의 고비나 고사리채취는 정작 나물맛보다도 놈들을 발견하여 채취하는 재미가 훨씬 쏠쏠하다. 고비`고사리발견에 올인 하는 일념과 숲 헤치는 고행은 어쩜 행선(行禪)이지 싶은 거다. 야산에서의 나물채취 행위는 등산 못잖은 영육일체(靈肉一體) 전신운동인 셈이다. 게다가 운이 좋아 고비(고사리)군락지라도 발견하여 채취하는 옹골참과 고비를 대쳐 말려서 지인들에게 생색내며 나눠먹는 즐거움은 엄청 뿌듯하다.

원각사녹차밭과 장독대
원각사~구곡산 능선의 송림과 진달래

오늘 간비오산과 옥녀봉을 밟고 장산에 오른다는 산행계획이 고비체취에 빠져 엉뚱하게 장산공원을 거쳐 원각사골짝을 더듬었다. 간비오산 정상에 올랐다. 13세기 이후 약 700여 년간을 해운포(海雲浦) 일대에 침입한 왜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간비오산봉수대(干飛烏山烽燧臺)에 섰다. 봉수대 담벼락사이에 민들레와 나도 바람꽃이 하늘거린다. 황령산 봉수대와 함께 부산의 불침번노릇을 톡톡히 해냈던 봉수대는 빛 바래는 역사의 한 페이지마냥 스산하다.

간비오산정상에서 조망한 금련산(뒤로 봉수대가 있는 황령산이~)
간비오산정에서 조망한 센텀시티

햇불(봉烽)과 연기(수燧)를 뜻하는 봉수대는 사방을 조망할 산꼭대기 요지에 설치하여 변경 기지에 급보(急報)를 알리던 통신 방법이다. 간비오산 봉수는 연변봉수(沿邊烽燧)의 출발지로 서울 목멱산 봉수로 전달돼 조정의 임금에게 알리는 통신수단이었다. 간비오산 봉수대에 오르면 해운대와 광안리, 멀리 오륙도 앞까지 부산포구를 조망할 수 있는 요새다. 지금은 마천루숲의 최첨단도시로 변신한 부산을 실감케 한다.

원각사계곡의 너덜지대

고비 찾으려 고도가 낮은 골짝을 더듬다보니 장산공원엘 들러 원각사를 향하고 있었다. 능선의 제법 넓직한 안부에 녹차밭을 품고 있는 원각사는 절이라기보단 차농원이다. 승용차가 십 여대 주차된 카페는 절간 같지가 않는 분위기다. 구릉초지에 짬짬이 나타나 앙증맞게 미소 짓는 야생화는 고비 못잖은 신선한 기쁨을 안겨줬다. 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환의 궤를 따라 새롭게 발현한다. 춘난이 부끄러워선지 꽃봉오리고개를 숙이고 있다.

▲원각사 송림 속 바위쉼터에서의 망중한은 무릉도원이 별거냐?였다▼

새싹과 꽃들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거의 여일한다. 변하고 사라지는 건 인간이고 나다. 장산의 소나무는 조정에서 관리하는 이산(李山)이었는데 원각사에 오르면 울창한 소나무숲에 절로 감탄케 된다. 소나무숲 바위쉼터에 앉아 솔바람소리에 귀 기울리다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여기 선경(仙境)이란 생각이 든다. 검푸른 송림사이로 반짝대는 햇빛은 한낮의 일식(日蝕)이 빗는 별빛이어라! 눈을 지그시 감으면 산행의 피로도, 일체가 사라지는 느낌이라. 

녹차밭 뒤로 원각사가 살짝 보인다
녹차밭의 참살이 카페

하산하여 폭포사(瀑布寺)개울에 발을 담궜다. 얼음물은 엄청 시려 족욕을 거부하고 바위에 내려앉은 봄볕이 계절의 사잇길을 알려준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민들레홀씨가 하얀 날개를 달고 계곡여행을 왔다. 낯선 땅에서 명년 봄엔 영혼을 싹틔울려면 물길에 내려앉지는 말아야 할텐데~. 황홀했던 벚꽃도 마지막 꽃잎을 바람에 얹히고 떠난자리에 연초록 잎사귀를 펴낸다. 까치부부가 집 수선하느라 부산을 떤다. 명년엔 지 새끼들이 똑 같은 짓을 할 테다. 봄날의 생명은 바쁘다 바뻐!  역사는 순환의 고리다.

원각사계곡에서 조망한 장산, 유명한 너덜갱이 장관을 이룬다
원각사골작에서 본 옥녀봉, 내겐 아찔한 트라우마가 있는 봉우리다

봄 산행치곤 아니다, 봄을 채취하는 봄날의 여행으로 오늘은 미처 못 느낀 봄바람의 맛깔에 흡씬 젖었다. 명년 봄에 나는 다시 오늘의 모습으로 간비오 산자락과 원각사 송림속을 유유자적할 수 있을까? 오늘 보았던 꽃들과 고비는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텐데~! 아직 봄이 한창인데 지는 벚꽃 땜에 가슴이 철렁내려 앉는다. 4월이 절반으로 잘렸다. 왜 세월은 이리 빨리 달아나려할까? 궁시렁대는 내게 아내 왈, "언제 철 들거요?"      2022. 04. 13

폭포사계곡의 물길은 어찌나 차겁던지~
간비오산봉수대
간비오산정에서 조망한 해운대, 중앙의 높은 건물이 LCT
산릉을 휘덮은 송림 속의 산책은 그대로 행선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