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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삼악산의 춘설

 삼악산(三岳山)의 춘설(春雪)

진눈개비가 흩날리는 꾸무럭한 아침에 등산을 갈까 말까 주저하다 배낭을 챙겼다. 강원내륙산간지역에 많은 눈이 내릴 거란 기상청예보에 춘천 삼악산행을 생각했다. 지난 겨울철 성에차질 안한 적설에 못내 아쉬워했던지라 푹푹 빠지는 눈 세상을 그렸다. 열차가 강원도에 들어서자 차창을 어지럽히는 눈발에 마음풍선을 달았는데 삼악산 금강굴에서부턴 보슬비가 내렸다.

금강굴
등선제1폭포

우의를 꺼내 입었다. 영상의 날씨에 비까지 내려 적설은 눈 반 물 반이 됐다. 천길 단애 까만 바위협곡이 하늘을 쥐어짜낸 물방울까지 흩뿌리고, 폭포수는 굉음을 질러대며 칼바위에 잘린 하늘이 금강굴에 걸려 으스스하다. 등선폭포는 실상 깊고 좁디좁은 미로 같은 협곡에 비하면 규모가 새 발의 피다. 깊고 좁고 긴 구불구불한 금강굴을 위해 몇 개의 폭포들은 굉음을 질러내며 불협화음의 연주를 하고 있을 뿐이다.

▲설국으로 변한 등선골짝▼

등선1폭포, 2폭포, 백련폭포, 비룡폭포, 주렴폭포가 미궁의 협곡을 울리는 불협화음은 일상의 나를 놓는 파격의 맛에 취몽 시킨다. 하여 금강굴협곡의 매력을 사랑하나 싶고. 물기 젖어 반들반들한 검은 금강굴에 압축된 세상은 오롯이 당신만을 위한 찰나적 희열일 것이다. 녹다만 눈덩이는 부스럼처럼 붙었는데 산속을 파고들수록 하해진다. 아니 질펀한 설국(雪國)이 펼쳐진다. 설토(雪土)는 두텁고 물길만이 검게 꼬리를 이어 골짝을 파고들었다.

털보네 집의 짙은 연기가 겨울이 한창이라고 웅변하는 듯~

나무들은 죄다 하얀 꽃송이 장식을 했다. 설국이다. 누군가가 최초로 디딘 발자국을 뒷사람이 포개 디뎌 물기 밴 물렁한 어설픈 눈길을 만들었고, 나무들은 침입자에게 간당간당 매단 눈꽃 폭탄을 떨어뜨린다. 살아있는 건 흐르는 물소리다. 물소리 없는 설국의 골짝은 고요의 전당인데 오직 내 발길에 밟히는 눈의 신음소리가 내가 살아있음을 의식케 한다. 흥국사(興國寺)는 눈두덩에 파묻혔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은 촛불을 켜놓고 문을 활짝 열었는데 정작 인적은 없다.

▲흥국사는 태봉국의 궁예가 철원서 왕건과 싸워 패한 후 피신하여 아지트로 삼은 곳이다. 궁예는 등선봉일대에 삼악산성을 쌓고 왕건과 일전을 벌려 군토중래를 꿈꿨다▼

스님도 눈두덩을 피해 어디 피신했을까?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아 뒤 처마 밑에 자릴 펴고 기갈(飢渴)을 때운다. 오후1시반이 지났다. 설화뭉치에 휘어진 나지(裸枝)와 운무(雲霧)를 휘두른 등선봉에 눈길 파는데 느닷없이 쿵~ 하는 천둥소리에 움찔했다. 처마에 걸린 눈덩이가 눈사태로 떨지는 소리였다. 푸근한 날씨는 이 아름다운 설국을 야금야금 녹이고 있었다. 장딴지까지 차 오르는 설국의 산행을 이쯤해서 접기로 했다.

▲3월중순의 설화 -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실감 났다. 목련이 꽃봉우리를 틔우려는 찰나 시샘하던 겨울이 눈꽃을 피워댔다▼

설토는 갈수록 깊어질 테고 시간도 빠듯한데다 홀로산행이라 더는 무리일 것 같았다. 3월 중순에 설국에 들어선 감회는 좀체 얻기 어려운 추억거리다. 되짚어 금강굴을 향한다. 회색구름 사이를 빠져나온 햇살이 나지의 눈꽃을 속절없이 낙화시킨다. 겨울과 봄은 그렇게 씨름하나 싶다. 누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눈 폭탄이 아무리 쏟아져도 새싹은 움튼다. 순환의 고리는 만고불변의 자연법칙인 것을~!                                   2022. 03. 19

등선봉 오르는 등산로는 폭설에 완전 사라졌다.

# 위 산행기를 쓰고 있는 오늘 윤석열 당선자가 청와대를 용산 국방부청사로 옮긴다고 했다. 명목은 청와대를 국민한테 돌려주고 광화문 집무실에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지키겠다는 각오였다. 뜻은 좋다. 허나 여건상 광화문 대신 용산 국방부청사로 이사한단다. 더구나 봄꽃이 지기 전에 국방부청사에서 집무를 시작하겠다고 밀어붙일 자세다. 하지만 용산 이전은 모든 조건이 불합리하다는 게 국민적 공감대다. 오죽하면 역대 합참의장 11명과 국방장관 10여명이 재고(再考)할 것을 주장하겠는가?

금강굴 칼바위에 잘려 내려 앉은 하늘 탓에 홀로 트레킹 감회가 카멜레온처럼 다양했다
등선제1폭포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이 되려고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윤 당선인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과의 소통은 장소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신념과 의지의 문제다. 용산 국방부의 대통령집무실은 반경 8km까지 비행금지 구역이 되고, 용산과 남산일대는 고도 제한에 묶여 재개발이 불가능해지며 강남까지 4차 산업혁명(드론 등) 사각지대가 되어 시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윤호중 민주당 위원장이 철회를 주장했다.

등선제2폭포

현재의 청와대는 70여 년간 역대 대통령이 집무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문제가 있으면 개선 내지 부속건물을 신축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국민과의 소통의 장을 만들면 된다. 이전비용 600억원~1조원이 국민의 혈세인데 윤 당선인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단 말인가? 국민한테 허락도 안 받고 혈세를 전횡하려는 작태가 곧 제왕적인 대통령일 것이다. 당장 이전장소가 뭣하면 청와대서 집무하면서 5년 동안에 차분하게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 옮겨야 마땅하다.

백련폭포

코로나 팬데믹에 소상공인들의 생존권과 동해안 산불로 집 잃은 이재민들이 임시 수용소에 있는데, 국민과 소통한답시고 600억원을 들여 집무실이사를 해야만 하나? 그게 국민들의 생존보다 더 화급한가? 청와대이전 보다 더 시급한 난제 많다. 우선 청와대서 집무하면서 국민적인 동의를 구해 이전해야 진정한 대통령일 것이다.  춘래춘불사춘이라고 임기 5년은 후딱 지나간다. 국민의 힘 당직자들은 코로나수칙 뭉개며 식당에서 건배하는 용기(?)를 윤 당선인에게 충언하는 패기(覇氣)로 사용하라. 준비되지 않은 불통의 결정으로 ’공정과 상식‘에 반한 정치를 거둬야 함이다.            2022. 03. 20

등선제2폭포
운무에 가린 등선봉능선에 삼악산성이 있다
바지런한 산님은 비닐하우스의 적설을 치웠다
흥국사의 600년 느티나무
▲산신각 지붕의 적설이 봄기운에 밀려 처마끝에서 낙상하면서 천둥소릴 내곤 했다▼
삼악산성엔 말을 모아둔 말골, 칼싸움 했던 칼봉, 군사들의 옷을 널었던 옷 바위가 있다.
산수유(좌)와 히어리(우)
주렴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