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대의 작은 거인 강감찬장군

강감찬장군동상

오전 11시, 낙성대(강감찬)역4번 출구에서 C를 만났다. 강감찬(姜邯贊,948~1031)장군 사당이 있는 낙성대공원산책을 하자는 제안에 나는 얼씨구나 쌍수를 들었던 거다. 초등시절에 배운 귀주대첩의 강감찬장군은 이순신, 을지문덕장군과 함께 우리역사상의 위대한 3대장군이었고, 특히 강감찬은 나와 동본(同本)인 ‘진주 강씨’여서 어릴 적부터 내 마음속 깊이 경애한 인물이었다. 글면서도 여태 강감찬장군의 태생지이며 사당이 있는 낙성대를 참배하지 않았는데 C가 나의 아쉽고 민망스러움을 한꺼번에 해소시켜주는 처방전을 내밀어 준 셈이다.

안국사홍살문

관악산은 황갈색 화장을 한 채 가을연회가 한창이다. 관악산자락 큰 별이 떨어졌던 낙성대(落星垈)는 아담한 공원으로 다듬어져 안온하고 고즈넉했다. 낙성대공원엔 장군의 위풍당당한 기마상이 주위를 압도하고, 연못 뒤쪽 동상 우측에 있는 홍살문을 통해 외삼문[安國門]을 통과하면 사당-안국사(安國)에 들어선다. 사당정원 양편에 ‘고려강감찬장군사적비’와 ‘姜邯贊落星垈’라 음각된 삼층석탑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안국사라는 장군의 영상을 모신 사당이 자리한다. 안국사는 화톳불처럼 피어오르는 단풍에 휩싸였다.

'강감찬낙성대'3층석탑과 사적비

이름 모를 산새가 환영사라도 하듯 지저귄다. 고려 정종임금의 신하 한 분이 하늘에서 큰 별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보고 그곳엘 가보니 사내아이가 태어났었다. 기이한 생각이 들어 아이를 데려가 기르니 그가 강감찬이라. 시절은 만주에서 태동한 거란이 송나라와 패권전쟁을 치루고 있던 혼란기라 신생국 고려도 불안한 시기였다. 시절이 하 수상할 땐 하늘은 큰 인물을 내리곤 했는데 마침 문곡성(文曲星,북두칠성 네 번째 별)이 관악산자락에 떨어졌던 것이다.

허나 강감찬은 체구가 왜소하고 잘 생기지도 못한데다 늦깍이(36살)로 문과에 급제하여 별반 이목을 끌지 못한 인물이었다. 이 무렵 조정에선 송나라의 사신을 영접하게 됐는데 그 사신은 후미에 서있는 강감찬을 보고 찾아가 절을 하고 예를 갖추면서

“큰 별이 오랫동안 중국에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 동방(고려)에 있습니다.”라고 읍했단다. 인물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풍기는 인품의 아우라란 걸 통찰한 사신이었다.

낙성대정원과 외삼문

1018년, 거란의 소배압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한다. 71세의 노익장 강감찬은 사생결단의 의지로 구국항전의 기개를 외치며 선봉장으로 거란에 항전하여 승기를 잡는다. 소가죽을 엮어 보를 만들어 강물을 막았다가 거란군이 도강할 때 강물을 터서 급류에 거란군을 수장시켜 대승을 했다. 인구에 회자된 ‘귀주대첩(龜州大捷)’이다. 현종은 친히 함경도 영파역까지 마중을 나가 금화팔지(금장식한 여덟 송이 꽃)를 머리에 꽂아주면서 환영식을 베풀었다.

낙성대공원

또 하나의 일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고관대작들이 좌우명 삼아야 될 강감찬장군의 고매한 처세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장군은 슬며시 일어나 현종의 허락을 얻어 자리를 떴다. 시중을 들고 있던 내시에게 눈짓으로 뒤따라오라면서. 연회장 밖에서 장군은 내시에게 대수롭잖다는듯 넌지시 물었다.

“여보게, 밥 먹으려고 밥그릇 뚜껑을 여니 빈 그릇이네. 경황 중에 실수한 모양인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새파랗게 질린 내시는 곧장 엎드려 부들부들 떨기만 하자 장군이 타이르듯 일러준다.

“전하께서 알게 되면 치도곤을 칠 테니 내가 일단 들어가 변소엘 가는 핑계를 대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앉거든 얼른 곁에서 ‘진지가 식은 듯하니 다시 바꿔 올리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밥을 갖다놓는 게 어떤가?” 내시는 감격 황송하여 고개만 조아릴 뿐이었다. 그 후 강감찬장군은 이 일을 없는 듯 함구했다. 근데 내시가 그 은전(恩典)을 자기만 품고살기가 벅차 동료한테 자랑하듯 속삭였다.

한참 후 그 사실을 현종이 듣고 조회를 열어 신하들 앞에서 장군의 덕망을 치하하면서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게 하라고 하명한다. 아랫사람에 대한 장군의 인자한 처세는 오늘날 부유층과 정부의 고위직들이 필히 귀감삼아야 될 일화일 것이다. 천여 년 전의 강감참장군이 평상심에서의 행장이 이토록 아쉽고 심금을 울리는 건 지금의 우리들 삶이 너무 권부지상주의(權富至上主義)만을 좇는 이기적인 삶 탓일 테다.

강감찬장군의 범상한 일생에서 귀주대첩이란 구국정신보다 우리를 감동 먹게 하는 건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며 베푸는 삶일 테다. 국정을 이끄는 리더는 백성의 마음을 살피고 감동케 할때 부국강병의 나라를 기약할 수 있겠다. 하여 장군의 그런 위민정신의 일화를 후예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C와 나는 낙성대와 연계된 관악산둘레길에 들어섰다. 단풍이 절정인데다 주말이어선지 산책객들이 넘쳐났다.

이달부터 실시되는 위드 코로나는 움츠러들었던 일상에서 보다 자유스런 기지개를 펴는 평상으로의 환원이어선지 둘레길 산책객들은 밝고 활기차다. 마스크만 아니면 코로나19는 적어도 관악산자락엔 사라진 듯싶었다. 내가 서울생활에서 얻은 기쁨 하나는 C와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각별한 사이가 됐지 싶은 거다. C는 강감찬의 후예답단 생각을 들게끔 인품이 고매하다. 내가 그에게 제안했다.

“우리 건강 챙겨서 활동할 수 있는 날까지 자네는 나를 동반시켜 같이 시간을 공유하세나”라고.                  2021. 11. 06

낙성대공원의 단풍
★★★낙성대공원옆의 서울교육청 과학전시관은 C와 내게 흐뭇한 추억 하나를 안겨준 장소다. 잠깐 쉬다 자릴 뜨면서 휴대폰을 챙기지 못했다. 반 시간쯤 후 전화벨이 울리고 화면의 발신자는 C가 아닌가? 한대 맞아 멍해진 우린 과학전시관을 향해 종종걸음 쳤다. 어떤 중년신사가 휴대폰을 습득 아까 통화한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 우릴 찾았던 거였다. 이처럼 선량한 분들이 공생하기에 세상은 살맛이 난다. 분실한 휴대폰을 끝내 찾지 못했다면 얼마나 낭패냐. 분실휴대폰에 저장된 온갖 정보들을 복원할 수도 없겠거니와 당장 세상과 소통하는 씨날줄이 끊겨 고립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테니 말이다. 참으로 고마운 의인을 만나는 행운을 안겨준 낙성대였다. 
▲관악산둘레길▼
서울대정문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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