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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해파랑길1 - 이기대해안길의 와이(Y)

해파랑길1 - 이기대해안길의 와이(Y)

해식동굴

정오, 아내와 난 오륙도 스카이워크에 섰다. 오륙도는 삼륙도로 둔갑을 하고있다. 잔잔한 해풍을 업고 온 파도는 해안바위에 내려놓느라 뒤척거린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속엔 무슨 사연이 있을까? 2016년이 기울 무렵인 11월에 나를 이곳에 안내한 절친 Y가 저만치 앞서서 해맞이공원으로 사라진다.

두 섬으로 변신한 오륙도

희끗희끗한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며 덩치 큰 그가 등허리 살짝 굽힌 채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던 그 모습이다. 짙은 녹색의 싱그러운 숲길을 가드레일 붙잡고 길잡이 하던 그대로다. 요 며칠간 드셌던 해풍도 미풍이 되어 그날처럼 트레킹하기 썩 좋다. 해안벼랑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숲길은 그때처럼 굽이치는 포말의 띠를 좇고 있다.

농바위, 버들,싸리나무를 엮은 함에 종이를 발라 궤를 만든 가구를 농이라 한다. 농같은 이 바위는 해녀들이 물길질할 때 연락기점으로 삼았다.

파도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바위들은 새까맣게 멍들었을까? 그 멍을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바닷물은 하얗게 물보라를 치고! 파도소리와 숲을 어르는 바람소리는 이기대 해안산책길이 사람들이 즐겨찾는 이유일 것이다. 맘만 먹으면 바닷물에 발을 담글수도 있고~! 절애에 간당간당 선 망부석 같은 농(濃)바위가 애처롭다.

소쿠리[濃]를 든 해녀들의 물질표시역할도 이젠 흐지부지 된 채 미포항과 오륙도를 잇는 여객선에 눈길 줘야만 해서다. 뷰`포인트마다 설치된 쉼터는 기암괴석의 해안선과 파도의 싸움을 관람하기 딱이다. 게다가 용가시, 사스레피, 다정큰, 보리수, 동백 등의 사철나무는 피톤치드샤워까지 보시한다. 5월의 해안숲길은 초록낭만이 묻어난다.  

온갖 수종의 나무들이 원시림을 이뤄 난대림속을 걷는 힐링숲이다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듯한 이 해안숲길을 안내해 줬던 Y는 그 후 한 번이라도 더 와보고 하직했을까? 2년 후 그가 영면(永眠)했을 때 나는 서울~부산이란 원거리핑계로 장례에 불참했었다. 몇 달 후 부산에 와서 Y의부인과 통화 했었는데 만나 뵙기 난처한 눈치였다. 미안했다. Y는 벼랑에서 바위가 바위를 머리에 이고 망부석처럼 서 있는 농바위를 보며 말했었다.

어류와 시간을 낚는 강태공, Y는 위태스런 그들이 낙사하드라도 결코 불행한 죽음은 아니라고 했었다

‘가진 게 적을수록 편해~’라고.  공동어시장에서 어류도소매 업으로 부(富)를 쌓은 그는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수십 년 전 언덕에 입주한 집 한 채 그대로의 평안한 삶을 즐긴단다. 사기당한 돈을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부자가 됐겠지만, 3년차 투병생활 중인 그가 그걸 관리하느라 머리까지 아팠을 거라고 히죽 웃었다.

그는 소탈하고 인심이 푸졌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에 고향 들판의 밭주인과 그 밭에 지금 어떤 (서리할)먹거리가 있는지를, 동네친족들의 제삿날자를 죄다 꿰뚫은 영특한 친구였다. 해운대와 이기대 산책길에서 하루를 온전히 동행했던 Y는 내가 그 후 두 번 부산에 내려와 전화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약속을 지연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병세가 매우 악화됐었는데 멍청한 나는 기미를 눈치 채지 못했다.

주인 떠난 해안초소는 강태공의 피난처(좌) & 이 코스 끝인 해운대LCT와 미포항(우)

그렇다고 그리 빨리 떠날 줄은 그나 나나 예상 못했던 게다. Y가 낚시꾼들을 응시하며 말했었다. ‘날마다 이렇게 산을 찾다가 갑자기 객사라도 하는 게 행운이다’라고. 치마바위 깨부턴 낚시꾼들이 바다를 낚고 있다. 바위해식 청정해안에 수초가 많아 어군이 많아 설까? 아님 시간을 낚고 있을까? 그날 그는 삶에의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텅 빈 해안초소, 이젠 망군소(望君所)가 됐다

한참을 주시해도 낚싯줄 당기는 모습이 안 잡힌다. 산다는 건 어쩜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을 어찌 요리하느냐가 성공한 일생일 테다. 영화 <해운대>를 찍었다는 어울마당에 닿았다. 갯바위엔 낚시꾼과 해초와 조개를 건지는 아낙들이 한가롭다. 물질하던 해녀는 온데간데 없어 해녀막사는 비어있고, 구리광산은 잡초 무성한 웅덩이라.

자연이 빚어놓은 신비한 구경거리로 돌개구멍과 해식동굴이 있다. 바위틈에 돌이나 모래가 들어가 파도에 팽이 돌면서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에 물이 고여 살아난 듯한 바위는 눈깔물속에 푸른 하늘을 담았다. 눈물 가득 채운 바위눈깔! 멋진 엠보싱바위를 만들었다. 자연의 힘은 불가사이 조각품을 만들어낸다.

해초류와 조개를 줍는 아낙들과 강태공들로 바위는 심난하다

해식동굴은 자연의 힘이 어떤지를 경악케 한다. 바위를 뚫는 파도의 공력과 시간의 축적에 경외할 뿐이다. 화산과 퇴적암층이 빚은 바위조각이 질펀하게 펼쳐진 이기대공원은 기암들의 해안전시장 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선사한다. Y는 폐 구리광산 앞에서 많은 얘기를 들려주며 가이드노릇에 열심이었다.

멀리 해운대 센텀시티와 LCT가 조망된다. 해파랑길1코스는 LCT옆 미포항까지다

경상좌수사 이형하(李亨夏)가 <동래영지 산천조>에 '左營南十五里 上有 二妓場 云(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二妓臺) 말한다)'라고 기록했다. 그 이기대를 향토사학자 최한복(崔漢福)이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수영성을 함락한 후 여기서 연회를 열었는데, 수영의 의기(義妓) 둘이 연회에 참가해 왜장을 술취하게 하여 품에 안고 바다에 떨어져 죽어 그 두 기녀의 충절을 기리려 의기대(義妓臺)라 함인데 나중에 이기대라고 불렀다. 고 풀이했단다.

구름다리를 지나 동생말에서 휴식을 취한 후 우린 용호부두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석별을 아쉬워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니? 그때만 해도 그는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비워 쾌차하려니 여겼다. ‘명년 봄에 와선 아내랑 함께 만나자’고 철석같이 약속하며 헤어졌었다. 글곤 이듬해 부산에 와서 두차례 내가 호출했으나 후일로 미뤘다.

돌개구멍, 바위틈에 든 자갈을 거친 파도가 회전시켜 생긴 바위구멍은 하늘을 담은 바위눈깔이 됐다

그 한식당을 찾았으나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천성이 후덕한 그는 명계(冥界)에서 잘 지내고 있을 테고, 오늘 울`부부의 이기대 해안산책길트레킹도 아마 지켜보고 있지 싶었다. 그의 부인은 뒷정리 후 안산따님 근처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했었다. Y가 처가에서 치룬 결혼식(옛날 혼례식은 신부댁에서 행했다)에 우인으로 동행했던 정황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날마다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숲길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던 Y를 그리며 귀가를 서둘렀다. 나도 그를 따라갈 날이 멀지 않았을 테다. 친구야, 저승에서 좋은 산책길 많이 알아놨다가 내가 가면 길동무해 주게나. 그날까지 건강하여 우리 본래 모습 잃지 말세. 자네 모습 그대로지? 그래야 얼른 알아볼게 아닌가.

2021. 05. 10

# pepuppy.tistory.com/648에서 2016.11의 '이기대해안산책길'을 볼 수 있습니다

구름다리
해안데크 산책길
보석광물 벽옥이 바위에 'ㄱ'자로 박혀있다. 
오륙도의 해맞이공원과 고층아파트
미포항과 오륙도를 래왕하는 여객선
오륙도와 농바위 사이를 미끄러지는 관광여객선
광안대교와 조개줍는 여인
화산각역암(좌)과 응화진퇴적암(우)
이기대산책길은 곰솔퍼레이드를 받는 호강도 쌉쌀하다
이기대공원에서 시작한 해파랑길1코스는 광안대교를 건너 마천루의 해운대 미포항까지 18km쯤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맨발 남해에 담구고 망중한을 즐기는 낭만은 당신의 선택사항이다▼
▲해식동굴▼
파식지대의 해안절경을 이룬 밭골새
해운대모래축제와 L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