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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코로나19 탈출구? - 사패산

코로나19 탈출구? - 사패산

석굴암 바위문

회룡역사를 나와 북한산둘레길 16구간 보루길을 건너뛰어 회룡골짝에 들어섰다. 바위골짝은 연둣빛이 묻어나고 진달래와 벚꽃이 뭉텅뭉텅 번졌다. 가녀린 물길이 바위사이를 흐르며 반짝반짝 물비늘 치는 4월의 풍광은 싱그럽다. 누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던가!

회룡폭포(우)

화창한 주말, 삼삼오오꼬리를 물고 골짝을 오르는 산님들의 발걸음이 경쾌한데 잔인한 달이라니! 회룡폭포가 바위를 건너뛰며 4월을 찬양한다. 움츠러든 산님들에게 봄날의 메시지를 전하려 듯 속삭인다. 그 찰나를 마음에 담느라 산님들은 발길을 멈춘다. 회룡사가 화사하게 꽃단장한 채 맞아주고!

회룡사의 돌담

회룡사(回龍寺)는 태조(이성계)와 얽힌 얘기가 많다. 6백여 년 전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왕위에 오른 태종한테 뿔따구가 난 태조는 고향 함흥으로 가서 은거한다. 태종은 어찌해서든 선왕을 환궁시키려 수차례 사신을 보내지만 함흥차사(咸興差使)였다. 그러다가 태조가 뜬금없이 무학대사가 머물고 있던 이 절에 온다는 전갈에 태종은 득달같이 달려왔다. 

회룡사경내, 태조와 태종과 무학이 어디서 대좌했을꼬?

태종은 무학대사와 여기서 태조를 영접했다. 얼마나 기뻤으면 무학은 회란용가(回鸞龍駕)를 읊으며 태조를 맞았을까! 회룡사(回龍寺;돌아온 용, 임금)란 절 이름도 예서 비롯된다. 1403년(태종 3)의 얘기다. 아마 태조도 무학을 핑계대고 회룡사에 올 때의 발걸음도 결코 가볍지만은 안했을 테다. 아들 이기는 아비 없음은 고금소통이리라. 더구나 대차고 호방한 태종도 그 아비에 아들일지니~.

회룡골짝

사회적 거리두기를 외면한 듯한 산님들의 발걸음도 경쾌할 수만은 없으리라. 코로나19팬데믹 속에 맞는 두 번째 4월을 방콕생활로 뭉그적댈 순 없어 나선 산행일 테다. 동토의 산야를 연둣빛으로 희망을 일깨우는 새싹들의 아픔을 채 받고 싶어서 일듯 싶다. 오르막길의 산님들이 활달해 보인다. 그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신물 날만 하다마다?

회룡사 뒤 암봉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엘리엇(T,S Eliot)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뇌였던 때도 1차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대지에 솟은 새싹의 아픔을 황무지 같은 우리들 마음의 희망으로 차환하려 했지 싶다.  

석굴암과 석굴암벽의 타포니현상

태조와 태종은 사찰 어디서 을씨년스런 대좌를 하고 무학은 그 무거운 분위기를 일신시키려 무슨 말을 했을까? 개국20년 전(1384년) 이성계와 무학이 창업(개국)성취를 위해 3년간 기도를 올렸다는 석굴암과 무학굴을 찾아 올랐다. 회룡사 뒷골의 석굴암은 한참을 올라야 한데 그 많은 산님들의 인기척도 없다.

좌로부터 음각된 무자중추유차 김구, 석굴암, 불 

4월의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연푸른 산록에 석굴암은 바위빗장을 푼채 고즈넉하게 나를 맞는다. 근디 개미새끼도 안 보이고, 머위가 탐스런 꽃뭉치를 치켜들며 나를 본다. 석굴암입구 바위에 石窟庵, 佛, 無子中秋遊此 金九라고 새긴 글이 선명하다. 백범친필로 언론인 남상도등이 1949년3월에 음각했단다.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석굴암에 백범 김구가 일경(日警)에 쫓겨 상해망명 때까지 은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석굴암 산신각과 극락전

석굴암이 하도 외진데다가 사패산등산로가 흐지부지해 찾는 이가 드물어 아쉬웠다. 석굴암바위들은 인왕산선바위처럼 사포니현상으로 독특한 형상이다. 극락전과 삼신각을 지나 긴가민가한 산길에 들면 범골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사패산행이 초행인 내가 인터넷에서 이 산길 정보를 읽고 석굴암뒷길에 들어섰는데 낙엽 탓에 등산로 찾아가기가 난처했다.

사패산도 바위와 솔의 연애질은 밤낮이 없다

가파른 골짝에서 산님도 없어 진퇴를 몇 번이나 되풀이 하면서 올랐는지 모른다. 반시간쯤 헤매다 범골능선삼거리에 올라서자 산님들이 웅성댄다. 꼬리를 무는 산님 행렬은 정상까지 이어졌다. 사패산 바위는 모나지 않는 거암들이 많아 끼리끼리 앉아 ‘잔인한 4월의 희망’을 나누기 좋아선지 빈 자리가 없다. 코로나19 치외법권지역인가? 

사패산(賜牌山 552m)은 코로나19피난처인가? 정상의 널따란 바위마당엔 사람 꽃이 피었다. 인증샷 하려는 산님들은 찬스 찾기 여수가 돼야한다. 그 넓은 바위마당에 내 홀몸 쉴만한 자리가 없는 건 사위로 펼쳐지는 산릉의 파도가 기똥찬 탓일 테지만, 서울근교의 높지 않은 유명산이라서다. 코로나19엑서더스로, 잔인한 4월의 꿈을 좇기에 하늘아래 이만한 유토피아가 있었던가! 싶은 게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얼마나 여수었는지? 뒤로 도봉능선이 장엄하다

남쪽엔 무학의 탄성‘회란용가’에서 차용한 회룡시가지가 깔리고, 뒤쪽엔 태조와 태종이 무학과 더불어 정사를 의논했다는 기념을 기리려 부른 의정부(議政府)시가지가 갸웃댄다. 근디 태조와 태종이 상봉했다는 전좌(殿座)마을은 어디꼬? 정오를 훨씬 넘긴 시각, 기갈을 때울 장소를 찾다 하산면서 나만의 쉼터바위를 찾아들기로 했다.

정상은 코로나19 치외법권역?

오르고 내리는 엑서더스 산님들로 등산로는 붐빈다. 바위산이길 천만다행이다. 사패산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들, 산님들이다. 부왕선조(宣祖)로부터 하사받은 정휘옹주(貞徽翁主)의 산이 아니다. 아니 이 나라 모든 산주는 국민이다. 개인산주(山主)는 잠시 위탁자일 뿐이다. 선조는 여섯째 딸 정휘옹주를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보내면서 도봉산 한 자락을 몽땅 하사하여 ‘사패산’이라 명명됐다.

갓바위 앞을 지나 바위쉼터를 찾아들었다. 도봉산의 자운봉을 어깨동무한 연봉들이 하늘을 파먹고, 그 뒤엔 북한산봉우리들이 수묵화를 그린다. 저 아랜 호암사가 숲속에 붙박혔고, 연둣이파리를 애무한 바람결이 준령을 넘어오느라 쉬이~쉬이~ 차갑다. 산마루를 오르고 내리고, 땀 짜다가 찬 바람결에 움 추리는 산행은 삶자체이다. 인생의 축소판을 실감하고 싶거든 산을 오르면 된다.

회룡골의 석굴암(앞)과 회룡사(뒤) 조감도

산은 삶의 지혜를 터득케 하고 자연은 사람을 사유하는 시인이나 철학자로 안내한다. 정휘옹주의 시할아버지 유영경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려던 사실 때문에 1608년 광해군에 의해 유배사사 되고, 그 일가도 거의 멸문지화 되다시피 했다. 유정량도 10여 년간 유배생활을 전전하다 인조반정 후 풀려났는데 사패산의 산주는 여전했을 터다.

석굴암선바위도 인왕산 선바윌 닮았다. 태조와 무학과 선바위 인연은 인왕산까지 이어진다 

‘나라는 짐의 것이다’라는 조선왕권의 폐단은 어쩜 현대의 권부에서도 냄새나나싶어 불쾌하다. 땅이 부의 상징이고 대물림해야 한다는 수전노들의 일탈이 서글프다. 범골능선을 탄다. 호암사 못미처 불쑥 솟은 바위산을 오르려고 회룡골 샛길로 빠졌다. 거암들을 수북이 쌓아놓은 암봉은 신선대가 다름 아니었다. 저만치 혓바닥처럼 튀어나온 바위에서 커플 한 쌍이 낭만을 낚고 있다. 보기 좋았다.

물범바위 옆에 나는 벌러덩 누웠다. 파란 하늘이 내려덮칠 것 같이 가깝다. 바위에 햇살 부딪치는 소린가! 반시간쯤 귀를 쫑긋 열고 우주의 소릴 염탐하고 싶었다. 허나 내 무딘 영감에 사치스런 욕심이란 걸 곧 알아챘다. 호암사를 향한다. 출입금지 인줄을 친 동굴이 나타났다. 무학대사가 기도한 자릴까? 호암사경내에 발을 들여놓는다. 초파일 연등을 다느라 바쁘다.

호암사

바위동굴의 기도처에 여인의 기원이 간절해 보였다. 곧 끝날 기미를 못 느껴 멀리서 사진 한 컷 찍고 돌아섰다. 아까 올랐던 바위봉우리가 사찰 앞마당으로 쏟아질 것만 같이 지척이다. 독경소리가 귓전을 따라오다 개울 흐르는 물소리에 바통을 넘겼다. 오늘 보약은 진했다. 산을 오르는 건 보약을 먹는 셈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 나는 건강한가 싶고~!  2021. 04. 10

정상에서 조망한 의정부쪽의 산능파도, 공들여 파놓은 주인 잃은 학돌은 눈물을 글썽글썽 거렸다 
산행들머리
회룡폭포상단, 잔인한 4월의 기도를 속삭이는 듯한 물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입구의 4백살 된 귀목과 회룡사의 법고
회룡사담장. 불가에 담장이란 게 언어도단일 텐데? 암튼 운치가 있어 그걸로 힐링처가 된다
석굴암 선바위와 산신각
석굴암 극락전과 선바위(타포니현상의 바위는 기괴한 모습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포대능선병풍 속의 회룡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태조의 회란용가를 알고 있을까?
두꺼비바위도 같고?
갓바위 
도봉능선과 북한산능선이 한 폭의 묵화가 됐다
암봉에서 조감한 범골의 호암사
잔인한 4월에 유토피아를 찾은 로망스의 커플, 비박할지도 모른다
나는 물범 옆에 사지를 뻗고 누워 푸른 하늘을 탐닉했다. 살아 있는 건 오직 구름과 바람소리!
이 바위는 어떤 수술을 했을까? 봉인 솜씨가 돌팔이 의사였지 싶어 바위가 더 더욱 짠했다
포대능선, 하늘 아래 젤 높은 절 망월사가 그려졌다
출입금지 인줄을 두른 석굴. 무학이 기도 올린 곳일까?
▲호암사▼
호암사석굴암 기도처, 근접하고 팠지만 여인의 기도는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아까 내가 물범 옆에서 우주를 탐닉했던 암봉이 호암사를 덮칠 위세다. 아직도 낭만의 커플은 그대로다(좌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