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靈山) 봉래산(蓬萊山)과 흰여울문화마을
아침10시, 흰여울문화마을 입구에서 봉래산(蓬萊山)트레킹을 시작한다. 흰여울길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여러 갈래 물줄기가 흡사 눈사태 같다하여 흰여울길이라 한다. 아내와 난 3년 전에 이곳 절영해안길을 트레킹 했었는데 그동안 흰여울문화마을은 산뜻하고 아기자기한 이색적인 문화마을로 일신했다.
마치 그림으로 접했던 그리스 산토리니 섬 북쪽의 이아마을의 모습을 연상케 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성냥갑집들이 가파른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 푸른 바다를 향한 열망은 6.25피난민들의 애환과 비원을 말하는 듯싶었다. 세로로 난 14개의 흰여울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얽혀 삶의 질곡을 보듬었을 동네어르신들이 아침청소를 하고 있다. 조붓한 골목길이 어찌나 정갈하고 깔끔한지 며칠간 머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장난감 같은 조그만 카페와 공방과 온갖 점방들이 상상의 허를 찌른 꾸밈새로 어깨를 맞댄 풍정은 젊은이들의 발길과 눈길을 매료시킨다. <변호인>을 비롯한 수 많은 영화의 세트장으로 각광받은 끼닭을 알만하다. 더욱히 영화의 명장면과 대사를 담벼락에 옮긴 그래피티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해풍과 짬짬이 바뀌는 검푸른 묘박지(錨泊地)의 미묘한 수 싸움 읽기도 매력이 넘친다.
100척에 가까운 선박들이 장기판을 벌리고 그 수읽기삼매경속에 불 지피는 일출과 일몰의 황홀경은 파라다이스가 여길까 싶은 게다. 서민들의 질박한 삶이 으리비까한 빌딩속의 메커니즘보단 행복지수가 높을 테다. 절영해안길 위 백련사(白蓮寺)) 옆구리 산길을 파고든다. 숲속을 헤집는 산길은 영선사를 휘돌아 함지골수련단 위 모천(母泉)약수터에 이른다.
저 아래 목장마을사람들일까? 몇 분이 운동기구에 매달려있다. 봉래산정을 향하는 숲길에 들어선다. 인적이 뜸해 태곳적숲속 길은 곧장 바위너덜로 이어진다. 5분쯤 오르다 우측바위너덜 갈림길로 올라섰다. 시종(始終)이 모호한 바위너덜지대는 으름과 다래넝쿨 옷을 걸쳤다. 연초록 숲을 뚫는 산길은 간신히 등산로시늉을 내고 있다.
손봉 안부에 오르기까지 반시간 남짓 인기척도 없던 외딴 산길을 무료하지 않게 해 준 건, 수풀사이로 언뜻언뜻 얼굴 내미는 묘박지의 상선들과 푸른 해원에 발 뻗은 송도와 우도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안부에서 십 분쯤 바윗길을 더듬으면 손봉이 나타난다. 빌딩울타릴 친 부산항과 감만터미널을 잇는 부산항대교, 저 끝머리의 오륙도가 손이 잡힐 듯하다.
발아랜 해양대학교의 조도가, 구릉 저쪽의 다른 산봉우린 태종대다. 3년 전에 트레킹 했었지만 이번에 짬을 내 다시 찾을 예정이다. 되돌아서 자봉을 향한다. 덱`둘레길이 편해선지 산님들은 등산로가 빡세지 않는데도 외면한다. 자봉엔 정자가 뎅그러니 서있다. 코앞의 감만엔 정박한 화물선이 장사진을 이뤘다.
반시간쯤 협곡을 가로질러 봉래산정상(해발 395m)에 섰다. 사위를 휘두르고 있는 미항 부산이 명료하게 발아래 깔렸다. 봉래산정은 기묘한 바위군락이다. 정상의 삼신할매 산신령바위는 영험하여 영도인들을 어머니처럼 품어 평안케 한단다. 욕심도 대단해 영도인이 외지로 떠나 삼신할매가 보이는 곳에 살면 3년 안에 망하게 한단다.
허나 들어오는 사람은 상부상조하여 협동과 단결심을 진작시켜 애향인으로 잘 살게 하는 운명의 산신령이란다. 그 산신령바위에 올라 인증사진 찍느라 젊은이들이 방정을 떨고 있다. 필시 영도인도 아닐 텐데? 제발 삼신할매가 안 보이는 곳에서 살아라! 바위를 쌓아놓은 봉래산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명산이라! 봉황이 날아드는 형상의 이 영산(靈山)이 영도에 있다는 건 천우신조일 것이다.
중국전설엔 불로초가 자생하는 산이 동쪽바다에 있어 진시황은 서북을 파견해 불로초를 구해오라 명한다. 서북은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봉래산에서 불로초를 구했다고 했다. 진시황이 죽고 망한 건 삼신 할매의 눈 밖을 벗어나질 못한 탓일 것이다. 나는 삼신할매바위 아래 장대석에 걸터앉아 기갈을 때우면서 음식을 떼어 고수레를 했다. 삼신할매도 시장기 돌게 분명해서였다.
불로초공원 쪽으로 하산한다. 봉래산엔 국내 어느 산도 넘 볼수 없을 희귀식물들이 자생한다. 호랑가시나무와 물푸레나무과의 은목서를 마주했다. 신선동체육공원에 닿았을 때가 오후 2시를 넘었으니 네 시간을 봉래산에서 신선놀음 한 셈이다. 영도구민을 아니 부산시민을 행복케 하는 봉래산이 있어, 불로초 못잖은 태곳적숲길을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영산이 아닐까! 2021.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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