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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임진강변 반구정에 올라

임진강변 반구정에 올라

평화누리길은 서부 DMZ 접경지역191km의 자연생태를 답사하는 최북단의 힐링로드다. 한강하류와 임진강, 논두렁`밭두렁과 강변철책길을 걸으며 자연생태에 취하고 역사유적을 음미할 수 있다. 프로방스풍의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반구정을 연결하는 21㎞의 평화누리길 7코스를 걷는다.

J와 나는 논두렁에서 돌미나리와 쑥과 씀바귀 등 봄나물을 등산가방 가득히 채취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특히 돌미나리는 흔치 않는,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봄나물이라고 두 시간여를 꼬부리고 앉아 채취하느라 허리아파 죽을(?) 판이었지만 신명이 났다. 글다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황희장승의 유적지 반구정을 찾아들었다.

임진강이 장단반도를 휘돌며 도도히 흐르는 탁류를 철조망은 생태보호울타리라도 된 듯 접근을 막고 있다. 더구나 철책 중간 중간에 초소까지 있으니 분단의 트라우마는 기이한 형상으로 우릴 슬프게 한다. 황희(黃喜)정승이 귀향하여 임진강에 서식하는 갈매기를 벗 삼으며 유유자적하고파 세웠던 앙지대(仰止臺)의 반구정(伴鷗亭)에 올랐다.

황희 정승 입상

관풍루(觀風樓) 

軒高能却暑  집이 높으니 능히 더위를 물리치고

詹豁易爲風  처마가 넓으니 바람이 통하기 쉽네

老樹陰垂地  큰나무는 땅에 그늘을 드리우고

遙岑翠掃空  먼 산봉우리는 푸르게 하늘을 쓰는거 같네         

*황희 정승의 유묵시로 동상좌대에 음각돼 있다

사당전경

임진강에 발목 담글 수 없게 된 황희의 심사는 어떨까? 허목(許穆)의 <반구정기>에 "조수 때마다 백구가 강위로 몰려들어 모래사장 벌판에 가득하다" 고 하였는데 그 모래사장근처에도 갈 수가 없는 현실은 우리 모두의 서글픔이며 비극이다. 세종은 황희 정승에게 북방정책을 담당케 하였고 황희는 총애하는 김종서를 함경도에 파견한다.

철조망 너머 임진강 저쪽이 장단반도이고 거기에 DNZ철책선이 있다

그로 하여금 두만강 및 압력강 유역에 4군 6진을 설치하여 개가를 올렸으니 지금 분단의 철조망 앞에서 공은 참담한 심정일 테다. 황희 정승은 고려 말부터 세종조에 이르기까지 조정의 고위직을 두루 역임하고 24년간을 정승자리에 있었으니 그의 인품과 그릇을 짐작할 만하다. 하여 황희란 이름석자는 정승의 대명사라 회자됐다.

소명제

황희정승도 인간인지라 자식들에 관한 비리와 구설수에 파직유배(1주일 후 복권)까지 당하기도 했었는데 필자가 얼른 납득하기 어려운 건 박포의 처와 간통했단 사초얘기다. 박포(朴苞)는 '제1차 왕자의 난'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방간을 사주하여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가 방원한테 참수된다.

황희와 맹헌의 영당, 음2월10일 제향을 올린다

이 때 박포의 아내가 충북 죽산현(竹山縣)에 살면서 집안종놈과 간통한 걸 우두머리종이 알게 되자 그를 죽여 연못 속에 수장했는데 며칠 후 시체가 떠올랐으나 부패하여 식별할 수가 없었다. 현관(縣官)이 시체를 검안하고 범인을 추문하자 박포의 아내는 발각될까 두려워 한양으로 도망하여 황희 정승의 집 마당 북쪽 토굴 속에 숨어 여러 해 동안 살았다.

앙지대

그동안 황희와 간통한 박포의 아내는 사건이 무사히 해결 된 줄 알고 돌아갔다. 이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입소문으로 번져 사신(史臣) 이호문(李好文)이 이를 <세종실록(世宗實錄)>에 기록했다. 후에 지춘추관사 정인지(鄭麟趾)가 이 사초를 보고 황보인, 김종서 등 6명과 상의 ‘헛소문 이다’라고 중의를 모았으나 실록에서 삭제하지 않고 시비를 후세에 맡겼다.

장단반도와 DMZ이북땅이 손에 닿을 듯하다

사초를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불문율 탓이라지만 범인이 황희 정승이라 무고처리하지 안했나 싶은 게다. 만약 이호문이 근거 없는 소문을 실록에 기록했다면 어찌 목숨을 보전하여 사관으로 남을 수 있었겠는가? 필자의 상상의 나래로는 황희의 간통사실은 진실일 것이다.

사당 출입문

자기 집안에 숨어들어온 여인을 챙겨 보살피다 통간을 하다 보니 박포의 아내였고,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아챘지만 이미 벌어진 간통과 살인범인 은익 죄를 벗어날 수 없는 노릇이었을 테다. 그래 몇 년 동안 집안 토굴에 숨겨두고 살았지 싶다. 감히 누가 그런 황희 정승을 죄인으로 포박하고 나아가 세종대왕 체면에 구정물을 튀겨 조정을 풍지박살 낼 수가 있겠는가?

철조망 너머 임진강은 황희의 내밀한 흉심을 알고 있을 테다. 근세 3공화국 때 마포나루께 정인숙 살인사건이 한강물에 묻히는 듯 말이다. 비일비재한 고위층의 치정사건은 5백여 년이 흐른 군부독재시절까지도 대외비사건으로 유언비어로 떠돌기 일쑤였다. 아니 이번에 치룬 서울`부산시장 재선거도 그런 아류의 죗값이라 생각된다.

시장 잘못 뽑은 죄로 백성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대느라 호주머니 털어 세금을 내야만 했다. 부정부패로 인해 치루게 되는 재선거비용은 재선거를 야기시킨 당사자가 전액 부담케 하는 법을 조속히 제정해야한다. 그비용 땜에라도 오직(汚職)행위를 안 할 것이다. 옛날엔 왕이 고위직을 뽑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뽑았으니 사회적비용은 우리 몫이다. 암쪼록 투표 잘 해야함이다. 반구정을 빠져나왔다.

임진강변의 철조망엔 군시설로 초소가 군데군데 있다

만발한 벚꽃과 선홍색도화 꽃잎이 임진강바람에 철조망을 넘나든다. 따뜻한 봄바람은 임진강 저쪽 장단반도 DMZ너머로 불어댈 테다. 오직 사람만 래왕하지 못할 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황희 정승이라면 누구를 파견하여 통일의 개가를 울릴까 궁금하다. 노회하고 영민한 노정승의 탁견이 아쉽다. 반구정에서 자괴감에 슬퍼해야 할 오늘이 야속하다.  2021. 04. 15

반구정
황희정승 영정
반구정내부,  허목의 '반구정기' 현판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