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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운조루(雲鳥樓)와 알밤의 정감(情感)

운조루(雲鳥樓)와 알밤의 정감(情感)

운조루

음력 보름날인 1월15일(정월대보름), 6월15일(유두), 7월15일(백종), 8월15일(한가위)명절을 ‘달의 명절’이라고도 한다. 정월대보름은 정초에 그 해에 닥칠 삿된 기운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벽사(辟邪)의 명절이고, 한가위는 풍요를 기리며 조상께 제례를 올리는 명절이다. 한가위,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부르는 추석(秋夕)은 ‘가을을 대표하는 밤(만월)’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한텐 정월대보름 때부터 추석까지는 상당히 곤궁한 기간이다. 이 어려운 때에 아니, 일 년 내내 이웃에게 쌀을 나눠주며 인간애를 공유한 선비가 있었으니 전남 구례군의 류이주(柳邇冑)님이다. 그 분이 살고 있는 저택 운조루(雲鳥樓)엔 쌀뒤주가 있는데 뒤주엔 ‘타인능해(他人能解:누구나 쌀뒤주를 열수 있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원통형의 뒤주엔 쌀 세 가마니를 담을 수 있고, 그 쌀은 인근 마을의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항상 개방되어 누구나 퍼 갈 수 있도록 했다. 글고 한 달에 한 번씩 뒤주가 비워지면 쌀을 채워놓는 선행을 후손들이 대대로 이어가게 했단다. 혹여 뒤주에 쌀이 떨어진 걸 발견 시 가솔들을 닦달하였고, 쌀을 퍼가는 이의 불편해할 마을을 헤아려 뒤주를 사랑채와 사랑채 사이 헛칸에 두었다.

 

쌀을 퍼가다 혹여 주인과 마주칠 확률이 없도록 배려해서다. 사람들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과 나눠먹게 쌀을 아끼며 조금씩 퍼가는 공생의 미덕을 발휘했다. 쌀을 채우는 마음과 그 쌀을

조금씩 여럿이 나눠먹는 배려의 애정은 운조루가 동학혁명, 여순사건, 6.25전란 속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상생의 원려 탓이었다.

 

‘타인능해’란 상생의 정신은 류이주님이 그해 수확하는 쌀의 20%이상을 보시하는 이웃사랑의 한 방편이었다.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공생공영의 삶은 가진 자들의 솔선수범에서부터 비롯된다. 올 추석에 울`집은 색다른 선물 하나를 받아들고 숙연해졌다. 한 되(1.8L)쯤 될 햇밤이었는데 W님이 다른 선물과 함께 보내준 추석선물 이였다.

해마다 W님은 명절에 선물을 보내주시곤 했는데 의외의 햇밤은 간단한 쪽지를 첨부한 채였다. 햇밤은 경북 산촌 어느 가난한 미망인이 W님께 보낸 추석선물이었다. W님은 햇밤을 받아들고 울`집사람 - ‘맛있게 먹을 사람’ - 생각이 불현 듯 났다는 게다. 외국인인 W님은 M금융사CEO로 햇밤을 보낸 미망인은 W님의 전직운전기사 부인이다.

 

젊은 운전기사가 병사하자 W님은 명절 때마다 촌지를 미망인에게 보낸단다. 그렇게 수년을 해왔는데 금년엔 뜬금없는 햇밤을 답례품으로 보내왔다는 게다. 미망인은 마당의 밤나무가 알밤을 떨구자 답례품으로 보낸 거였다. 알밤은 얼마나 씻었던지 반들반들 윤기가 자르르한 게 곱디고운 미망인을 보는 듯했다. 아니 따뜻한 마음을 접하는 기분이 들었다.

W님이 가난한 이웃 챙기는 자선활동은 우리나라를 비롯 범`아시아권을 아우른다고 한다. 우리가 W님을 알게 된 건 그분의 동생과 친구가 한국여행을 왔을 때 집사람이 한식저녁상을 대접한 게 계기가 됐다. 그 후 명절 때마다 울`집도 W님의 선물명단에 끼었나 싶었다. 암튼 W님이나 류이주님의 이웃사랑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호혜는 아무나 하는 적선행위는 아니다.

 

그들은 천부적으로 사회약자들을 챙기고 그 행위를 사랑하는 공생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천사들이다. 오래전에 떠난 운전기사가정을 챙기고 그 기사부인이 마당에 떨어진 알밤 한 되를 추석선물로 보내는 마음의 교류는 운조루의 쌀뒤주에 얽힌 배려의 삶을 생각게 했다. 코로나19로 스산해진 금년추석에 어느 산골 알밤이 전하는 따뜻함에 감동했다. W님, 고맙습니다. 2020. 10. 01

#, 위 사진은 네이버 창 '구례 운조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