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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봄 붙잡기

봄이 더디 가길~!


추위가 제아무리 혹독해도 겨울을 마냥 붙잡을 수 없고, 겨울이 굼벵이처럼 뭉그적대도 매화 향에 자릴 내놓지 않을 수 없다.

온실이 없어 응접실 앞 처마 밑에 분재 십여 개를 모아놓고 비닐로 얼키설키 바람막이를 해 놈들의 겨울나기를 해 온지가 수십 년째다.

응접실에서 유리창으로 그놈들의 겨울나기를 훔쳐보는-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는 분재들을 때론 짠한 맘으로 응시하다 오늘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매화를 마주했다.

그 추위에도 그 알량한 비닐 막 속에서 봄은 매화꽃잎에 앉아 떨고 있음이다.

그 매분(梅盆)도 몇 해 전 동상에 걸렸던지 몸통이 죽고 뿌리에서 새 순이 난건데 작년부터 꽃망울을 피우고 있는 거였다. 하여 금년에도, 이 강추위에도 무사할까 자못 초조했는데 살아있었던 거다.

모두 열한송이를 피울 작정인가 싶다. 반가웠다. 기뻤다. 미안했다.

누가 그랬던가? “봄소식이 매화가지 끝에 왔다(春信到梅捎).”라고.

매화 잎에서 파리하게 떨고 있는 봄을 응시하며 난 비닐 막을 걷을까말까 망설이다 오후엔 기어코 걷어치웠다.

차가우면 꽃망울이 더디 터뜨릴 거라 그만큼 봄이 오래 머물 거란 생각에서였다.

시성 두보(杜甫)의 <가석(可惜)>이 생각났다.

“뭐가 그리 급해 꽃잎을 날리는가 (花飛有底急)

늙어가니 봄이 더디 가길 바라지만 (老去願春遲)

기쁘고 즐김이 안타깝구나 (可惜歡娛地)

내 젊을 때는 이미 아니네 (都非少壯時) “

꽃향기 흐드러지는 환희의 봄을 즐기다보면 세월은 흐르고 그래 몸은 더 늙어 감을 애석해하는 두보의 시심이 그렇게 절절히 다가옴이다.

하여 분매의 꽃잎을 만개 못하게 하고팠다.

분매를 분신처럼 사랑했던 퇴계선생도 늙고 죽음은 어쩌질 못했다.

선생은 임종시 시자에게 “분매에 물을 줘라”고 유언했었다.

선생의 분매는 연인기도 했다.

선생은 평생 두 번에 걸친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마친 후인 48세에 단양군수로 자임하여 18세의 두향이란 기생을 만나 모처럼 9개월간 짜릿한 연애를 했고 그 두향이 이별하면서 선물한 매분이었다.

나는 선생의 다른 건 다 좋아해도 연애관은 힐난하고 싶다.

두향을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지척인 풍기·안동에 머물면서도 끝내 재회의 기횔 만들지 안했다는 점을 말이다.

선생과함께 사랑놀이를 했던 강선대에 움막을 치고 살았던 두향은 선생이 임종했단 소식을 접하고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유언으로 매분에 물을 주라했던 매화는 두향이 죽고 나서도 얼마나 꽃을 피웠을까?

두보가 타계하고 두향이 투신을 하며 선생이 유언을 남겨도 가는 봄을 매화는 그 화사한 미소와 향기로도 잡지 못한다. 아니라면 매화가 봄을 훔쳤다 이맘때 다시 동반함일까?

내가 비닐 막을 걷어치워도 매화는 만개할 것이다.

봄을 더디가게 만류할 수 있는 건 마음일 테다.

20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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