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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너만의 꾀꼬리를 찾아라’ - 영축산 통도사

너만의 꾀꼬리를 찾아라’ - 영축산 통도사


중학수학여행 때 스친 통도사는 항상 내 맘 깊숙한 곳에 버킷리스트로 남아있던 절이었다. 아니 규모가 상당했던 사찰보단 구부정한 소나무들이 무진장했던, 끝도 갓도 없는 울창한 솔밭 속에 시냇물이 흘렀던 기똥찬 풍경이 늘 잔영으로 뇌리에 남아있었다.

 

 

그 어림할 수 없을 솔밭은 걷는 로망이 꿈틀대며 연연하고 있었던 게다. 난 오늘 마침내 그 통도사를 찾아 아련한 솔밭풍정에 취하기로 했다. 양산`신평 버스터미널에 내렸을 땐 10시 반이 지났었다. 드뎌 화창한 봄날 영축산문(靈鷲山門)에 발 들여놓는 순간 소나무들이 환영이라도 나온 듯하다.

 

떼 지어 나온 소나무들은 나 어릴 적의 우람했던 당당함에 고색 짙은 갑골(胛骨)치장을 한 채여서 경건하기까지 했다.

헤일 수 없이 많은 소나무들이 헬 수 없는 세월을 견디어온 건 불타가 법화경을 설법한 인도 영축산(靈鷲山)의 불토와 맥이 통해 설까? 천태만상의 소나무가 어쩜 부처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무풍한송로는 2km쯤 되리라

 

 그 송림불토(松林佛土)-무풍한송로(無風寒松路)를 밟으며 계곡의 가녀린 물소리에 마음이 그윽해진다. 만약 내가 행선(行禪)의 경지를 안다면 얼마나 좋으랴. 반시간쯤 송림불토에 몸 씻는데 하마석(下馬石)이 발길을 멈추게 하더니 부도밭에 이어 영축총림문이 나타났다

하마비, 무풍한송로 바위엔 민초들의 이름이 수 없이 음각됐는데 그 짓도 예서 끝

 

통도가람의 입문인가 싶었는데 성보박물관이 활짝 핀 수선화를 매달고 위셀 떤다. 우람한 현대식건물이 어째 고토의 산사(山寺)와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한국불교의 보물들은 죄다 관람할 수 있는 성역이다. 빠듯한 시간땜에 하산시 보기로 한다.

우람한 성보박물관,수선화를 선물로 준비했다

 

영축산통도사일주문이 누구나 통도(通度)할 수 있다는 듯 열려있다. 일주문현판'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글씨는 흥선 대원군의 친필이라 했다. 천왕문을 향하는 갓길에 매화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봄햇살을 낚아 사찰처마에 봄을 심고 있다. 팔짝처마끝과 끝을  햇빛이 건너뛰고 있다.  

영축총림 앞 부도전

 

극락보전과 범종루의 퇴락한 듯한 세월의 더께가 봄 햇빛에 더 아늑하다. 만세루와 불이문이 피운 매화의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매향을 맡으며 만세루(萬歲樓)현판을 초서로 갈긴 여섯 살배기 꼬마녀석이 누굴까? 하고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다.

범종각과 만세루와 석탑에 봄 향기를 뿝는 매화

 

꼬마가 만세루 세 글자를 쓰느라 이마에 땀방울 얼마나 솟았을까? 하는 생각~! 불현듯 가왕 조용필씨가 생각났다. 그가 대마초사건으로 곤욕을 치룰 때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여길 찾았었다. 그는 운 좋게도 경봉스님을 알현케 되어 큰절을 올렸는데 한참을 쳐다보던 스님이 느닷없이

통도사일주문

 

"그대는 뭐하는 놈인고?"라고 묻자, 조용필이

"노래 부르는 가숩니다"라고 얼떨떨 자기소갤 했다.

"네가 꾀꼬리냐, 노래는 너보다 꾀꼬리가 훨씬 잘하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네 꾀꼬리가 어디 숨었는지 그걸 찾아보란 말이다라고 뚱딴지같은 일갈을 하곤 스님은 말씀을 거뒀다.

 

 

밑도 끝도 없는 화두에 머리가 하 해진 용필은 산문을 내려오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 천진난만했던 어릴 때를 추억하게 된다. 글고 어릴 적에 흥얼대던 콧노래를 문득 기억하며 악상에 젖어들었다.

 

갈수기의 통도천이 선물한 데칼코마니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엄마가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강아지만 멍멍 난 그만 울어버렸지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용무늬바의

 

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

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불이문

 

쇠붙이 하나 사용 않고 목재로만 지었다는 불이문(不二門)은 분별이 없는 불성의 입문이다. 그 우측에 스승이 제자에게 게송이나 발우를 전하는 데 미륵불의 출현을 상징 하는 봉발탑이 흡사 옛 줄리메컵이나 장고 비슷하다. 그 앞에 가늠할 수 없을 미륵불탄생을 고대한 고목이 목련 몇 송이를 갓 피우고 있다.

 

 

봉발탑과 고목목련

 

봉발탑(奉鉢塔)은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다음세상에 올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이란다. 바닥돌과 몸돌, 지붕돌로 나눠진 받침돌위에 밥뚜껑 모양일 것 같고, 장고모양 이기도 한데 받침돌엔 연꽃무늬가 기둥돌엔 가느스름한 테가 음각됐다. 세상에 탑도 많지만 이런 탑은 없다.

 

 

암튼 난생 처음 보는 독보적인 탑이라. 글고 그 옆엔 석가세존 사리부도비가 있는 세존비각이 세월의 떼를 켜켜이 안고 있다. 용화전, 관음전, 대명광전들이 세존비각만큼 사파의 허물을 안느라 찌든 고풍은 절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대웅전뜨락에 들어섰다.

 

석가세존사리부도비각

 

금강계단이 있는 대웅전은 사방에 대방광전, 적멸보궁이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금강계단엔 부처님 정골사리가 봉안 돼 통도사가 불보사찰인 소이다. 모든 스님들은 여기 금강계단에서 서원을 하고 계를 받아야 승적에 오를 수가 있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단다.

 

구릉지

 

부처님 정골사리는 신라 자장스님이 당나라 오대산에서 참선에 들었는데 홀연히 문수보살께서 출현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 한 벌을 전수한다. 스님은 그 사리와 가사를 이곳 축서산(鷲栖山)에 봉안하면서 인도 영축산과 비슷하여 산 이름도 영축산으로 개명하게 된다.

금강계단의 석존사리탑, 출입금지라서 신령각담벼락에서~

 

근디 금강계단은 출입금지였다. 구릉지를 건너 신령각담벼락에서 까치발로 금강계단을 일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다. 구릉지엔 겨울을 나느라 깨 벗은 백일홍이 그림자를 띄우고 있는데 금붕어가 백일홍처럼 매달려있다. 구릉지는 통도사창건신화가 서려 있는 연못이다.

 

 

자장율사가 절터를 닦으려고 연못에 사는 용들한테 이소하길 청했으나 마이동풍하자 법력으로 일전을 벌린다. 법력에 견디지 못한 아홉 마리 용들이 뒤 영축산계곡으로 달아났다. 세 마리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피를 쏟으며 낙사했는데 바로 용혈암이다.

구릉지의 용나무, 금붕어가 꽃이 됐다

 

글고 다섯 마리는 골짝 깊숙이 도망치다 바위에서 떨어져 죽자 그 골짝을 오룡골이라 부른다. 오룡골엔 핏자국이 낭자했던 검은바위가 있다. 한 마리가 남아 스님께 절터를 수호할 테니 살려달라고 애걸해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주었으니 바로 구릉지인 것이다.

 

그 구릉지에 나무그림자가 용처럼 꾸물대고 있었다. 명부전과 응진전을 휘돌아 영축산을 향한다. 무풍한송로는 줄곧 이어졌다. 영취골짝의 마른물길에 닳고 닳은 바위들이 알몸 들어낸 채 일광욕하는 게 가피(痂皮)같기도, 하얀 물살 같기도 하다.

 

 

무풍한송로가 통도로 드는 불자들의 행선길이며 또한 치유의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작위로 펼쳐진 송림사이를 뚫고 정오쯤 통도사극락암(通度寺極樂庵)에 들어섰다.불사가 한창이라 암자분위긴 어수선하다.

극락암 아취교

 

작은 연못에 걸친 아취교를 건너려는데 수면에 드리운 벚나무가 물이 오르는지 곧 꽃봉오리를 터뜨릴 찰나다. 조롱박으로 산정양수(山精藥水)를 받아 해갈을 달래자 저만치 산수유가 웃는다. 놈을 그냥 지나칠 순 없어 한 컷 담았다.

극락암연못의 봄

 

늙은벚나무가 노망기가 돋았던지 벚꽃 대신 노랑산수유 꽃으로 봄을 영접하고 있었다. 샛길로 나와 다시 솔밭을 질주한다. 홍송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극소화시키려고 몸뚱일 훼훼 휘면서 몇 백 년을 살아가는 지혜가 경탄스러웠다. 우리들보다 달관된 생을 살고 있음이라.

산수유흐드러진 극락암

 

비로암(毘盧庵)이 가까워오자 울창했던 송림이 잠깐 하늘을 열었다. 히멀건 바위준령이 하늘금을 친 아래 비로암이 언뜻 모습을 나타낸다. 비로나자불을 모신 비로전 옆의 북극전(北極殿)현판은 경허스님친필이라나? 아담하면서 오밀조밀 상당한 암자다.

비로암 여시문

 

북극전 앞의 물레방아가 속세의 풍정을 기억케 해 성불제가를 소홀히 하지 말란 의미일까? 막 피운 목련이 봄기운을 암자에 가득 채운다. 300m를 되짚어 나와 백운암쪽을 향한다. 백운암까진 1.2km라니 영축산정은 1.5km쯤 될 테고 1시간여면 오를 수 있으리라.

목련을 만개시킨 비로암

 

오후1시가 넘었다. 본격 산행에 들어서며 서둘렀다. 저만치 앞서 한 여인이 한량한 산행을 하고 있었다. 초행인 나는 여인에게 산행코스를 묻고 확인한 채 앞서나갔다. 백운암200m쯤 앞에선 갑자기 소나무들이 사라지고 매끈한 서어나무와 참나무과종들이 나체쇼를 벌이고 있다.

비로암고목에 산수유라니?

 

낙엽송들도 아래 홍송 못잖게 연륜으로 덕지덕지 화장한 채 천태만상이라. 돌너덜길도 사나와지고 된비알의 연속인데 놈들의 기괴한 모습에 눈 팔며 가쁜 숨을 넘긴다. 토종다람쥐가 줄곧 길 안내를 하고 있다. 필시 군걷질부스러기라도 얻을까 싶어선가? 청솔모가 안 보인다는 게 다행이다.

백운암

 

백운암(白雲庵)은 영취산8부 능선 해발750m에 있었다.

사후세계를 관장한다는 지장보살을 그린 지장탱화(地藏幀畵)가 유명하다. 19세기에 경상도사찰에서 불화를 그린 화승(畵僧)지연(智涓. 자운당慈雲堂)1801년에 그린 탱화란다.

 

 

오후2시를 훨씬 넘긴 참이라 허기증이 돋았다. 나한전 뒤에 섰다. 안무 속에 아른거리는 전망이 일품이라. 죽여주는 풍경은 공부를 않고 와서 어느 뫼인지 알 수가 없다. 요길 할 참으로 옹색한 마당에 주저 앉았다. 과일과 빵, 음료보단 죽여주는 전망이 시장기를 잊게한다.  

백운암나한전 뒷뜰에서~

 

영축산정상까진 3km, 함박등은 700m 남았는데 산행을 계속할지 갈등했다. 해운대서 산문까지 오는데 3시간 반이 소요됐는데 초행길이라 귀가길이 맘에 갱 킨 땜이다. 아까 대충 훑은 통도사경내도 맘에 걸려 빠듯한 시간을 정상행보단 사찰과 박물관구경에 보내기로 했다.

 

함박등에 올라 탁 트인 시계에서 심호흡하곤 주저 없이 하산에 들었다. 빡센 돌계단이 신경 날 서게 하지만 힘은 덜 들어 속도를 낼 수가 있다. 백운암을 막 빠져 내려오는데 저만치서 아까 그 여인이 나타났다. 참으로 한가해 보였다.

서어나무 열병을 받으며~

 

하긴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빡센 산길은 쉬엄쉬엄 행선하듯 해야 한다는 걸 도통한 여인 같았다. 고독한 산행자는 그만의 열락에 드는 경지를 습득했을지고~! 인살 했다. 험하고 빡센 산길을 두 시간쯤 홀로 고행한다는 게 보통은 아닐 터여서 입`박수를 쳤다.

 

 

잠시 동안의 대화 속에 멋쟁이기도 한 그녀는 인텔리보살이란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적막골짝에서 사람과 사람이 조우한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산님들은 안다. 초행일 땐 정보까지 공유할 수 있어 더더욱 그렇다. 더구나 그녀는 영축산에 대해 많은 걸 숙지하고 있는 듯 했다.

 

영축산 하늘금

 

그녀는 수십 년간 이 깊고 험한 백운암을 찾아 맘의 평안을 얻는 교사이면서 보살이었다. 그녀를 조우한 건 오늘의 행운이다. 그녀는 백운암을 향했고 나는 미친 듯 하산 길을 내 달렸다. 통도사에서 얼쩡거리다 6시가 됐다.

 

걷고 또 걷다가 죽어도 좋을 것 같은 솔밭을 걸으며 문득 꾀꼬리 생각이 났다. ‘내만의 꾀꼬리 찾아야할 텐데~?’ 그 많은 세월 죽이고 죽을 날이 얼만데 꾀꼬릴 찾을 수 있을까? 나 같은 속물도 꾀꼬릴 찾는다면 세상은 살만 해지겠지? 

 

통도사담벼락의 벚나무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못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못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조용필씨가 자신의 꾀꼬릴 찾으며 가왕이란 경지에 오른 건 피나는 자기 담금질에서 가능 했을 테다. 어둠이 내리깔린다. 냅다 시내버스에 올랐다. 꾀꼬리는 언제 찾을까?

2019. 03. 19

 

홍송의 어깨동무사랑

 

성보박물관

초서체만세루 현판이 발길을 붙들었다

대웅전 앞의 석탑

통도사처마끝에 매달린 영축산 원경

극락암경내

산정약수

 산수유와 목련

비로암에선 천리향까지 포흡했다

소나무가 바윌 쪼갤 때 떡갈나무도 거들었던지 옆에서 기생하고~ 

사리암에서 조망한 시계, 전나무가 일품이다

현호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