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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마니산 참성단에서 새해의 기(氣)를~!

마니산 참성단에서 새해의 기()~!

 

 참성단

 

어둠이 스멀스멀 벗겨지는 기해년새벽에 강화도를 향한다. 마니산참성단에 서고 싶어서다. 한민족시조인 단군이 재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성지에서 기해년을 맞고 싶어 한숲산악꽁무니에 끼었다. 한강을 건널 때 동녘하늘은 서광으로 아름다운 아침을 열고 있었다.

 

새해의 마니산참성단을 촬영하는 kbs헬기

 

그 서광은 줄곧 나를 따라 강화섬 함어동천골짝의 새해아침도 밝히고 있다. 깨 벗은 나목들을 감싼 엷은 안무를 헤치는 나의 발길은 깊은 잠의 낙엽까지 깨워 새해를 알리나 싶었고~. 선잠 깬 바위들이 마중을 나왔다. 산을 오를수록 놈들은 갖가지 모습을 한 채 떼거리로 나와서 곡예를 부린다 

 

그 곡예를 넘는 나의 등적삼은 땀으로 홍건 해진다. 바위능선에 올라서자 바다는 해무를 잔뜩 뒤집어쓰고 해무 속을 탈출하려는 석모도의 꿈틀대는 안간힘이 역력해 보인다.

기해년을 여는 산님들은 바지런도 하다. 어디서들 올라섰는지 바위능선곡예가 장난이 아닌데도 줄서기가 계속된다.

 

금년에 당할 어려움을 새해첫날 한꺼번에 감당하고 편하고 순탄한 한해를 맞으려는 산님들의 각오와 기원의 엑서더스일까? 해무를 뚫는 서광이 바다에 깔리고 석모도는 얼굴 하나씩을 내보인다. 아직 교동도는 기척도 없다. 십여년전에 참성단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땐 오늘 같은 바위곡예 타기는 없었지 싶다.

 

석모도가 해무를 벗고~

 

아마 전등사 쪽에서 올랐던 듯하다. 바위는 소나무와 동거할 때 폼이 난다. 특히 겨울암송은, 바다나 강을 휘두른 놈들의 환상적인 모습은 값으로 셈할 수 없는 묵화다. 마니산은 그게 쬠 아쉽다. 어쩌다 소나무와 동거하는 바윈 어째 어설프다. 기막힌 강화섬역사 속에서 소나무남벌도 비켜서질 못한 탓일 터다.

 

 360바위고지를 넘어서자 하얀 마니산정상이 눈앞에 다가서고 교동도가 어슴푸레 얼굴을 내민다. 언제 저 섬엘 한 번 가봐야 한다. 그 섬엔 자유를 향한 한 청춘의 처절한 몸부림과 좌절과 분노가 서려있어서다. 부귀영화가 약속된 20대의 청춘부부는 어느 날 느닷없이 포졸들에게 붙잡혀 끌려와 가시울타리 친 민가에 갇히는 영어의 몸이 된다 

 

젊은 커플에겐 죄가 없었다. 아니 애당초 가해자가 죄인일 것이다. 이 지와 부인 박씨의 죄몫은 세자부부란 게 전부였다. 그들 커플은 갑질한 적도 없었다. 삼촌(인조)한테 큰 기침한 적도 없는 이지는 영문도 모르게 끌려와 위리안치 된 처지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암릉길은 이어지고

 

그 커플은 가시울타릴 벗어나 맘대로 활보할 수 있는 자유, 새장에 갇힌 새가 자유를 찾아 탈출하려는 원초적인 욕망 이외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아니 그럴 수도, 짬도 없었다. 마니산정상(469m)은 산님들로 뒤덮였다. 울긋불긋 만장을 펼친 듯 하다. 마니산표지목이 짝사랑하는 산님들 등살에 언제 꼬꾸라질지 간당간당하고~!

 

통천문을 통과하는 애플트리님

 

해무는 아직도 바다와 섬들을 감싼 채다. 마치 새해는 이렇게 신비스럽고 꿈결같이 다가서야한다. 라고 말하듯 말이다. 멀리 바위능선 끝의 참성단이 사람꽃을 피웠다. 새해축제의 향연이라도 여나 싶다. 그 축제의 향연을 향하는데 산릉을 이은 인파는 속 타게 느려터진다.

 

자유를 갈망하는 이지에게 어느 날 한양지인으로부터 가위와 인두를 선물받자마자 불현 듯 스치는 영감이 있었다. ‘탈출이었다. 방 한쪽 구들을 들어내고 미친 듯 가위와 인두로 굴을 파기시작 했다. 아내는 파낸 흙을 치마에 담아 방바닥에 깔았다. 가시울타리 밖의 포졸들은 담배피우며 할일 없응게 울타리에 오줌 누는 게 일과였다.

마니산이 하늘을 딛고 있는 버선바위

 

그렇게 26일간에 21m를 파나갔다. 자유의 공기가 얼마나 신선한가를 땅위로 솟아 심호흡할 굴 밖의 숲이 보였다.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달랬다.

참성단을 향하는 암릉 길을 걷는다는 건 위험한 만치 스릴만점이다. 그 위험과 스릴은 참성단까지 빡세게 이어진다.

 

오직 참성단에 올라 기해년의 간절한 기도를 해보자는 단순한 욕망 땜이다. 참성단을 오르는 길목부터 인산인해를 이뤄, 참성단입구의 노거수소사나무 앞에 서기까진 더디고 더뎠다. 합장기도 하는 산님들 틈에 나도 끼어들었다. 그냥 무사하길 빌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안락함이 이어지길 염원했다.

 

참성단 수호수인 소사나무

 

글고 그간 접었던 책 출간에 대한 욕심을 지펴볼까? 라는 생각을 입질해보았다. 정오쯤 됐을 테다. 참성대 오르는, 새해의 꿈을 다지는 산행의 헐떡거림은 2시간여 만에 이룬 셈이다. 그니까 이지의 땅굴파기 위험과 조바심과 간절함 내지 절박한 자유를 향한 의지완 천양지간일 터지만 말이다.

이지도 헬리콥터처럼 창공을 날으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을 터

 

드뎌 이지커플은 땅 속에서 솟아 숲에 섰다. 새벽자유의 공기는 신선했다. 허나 곧 불안이 새벽이슬인냥 엄습한다.

사전에 나룻배 한 척을 마련키로 약속한 어부가 있는 곳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낯선 섬에서 숨소리까지 숨기며 길을 찾는 그에게 쪼그만 섬은 약속된 자유가 아닌 두려움의 땅이었다.

 

약속한 어부가 나룻배를 찾지 못해 낭패였지만 어쩌랴. 어부의 손가락을 좇아 어스름히 보이는 마니산을 방향타로 내달렸다. 마니산자락에 닿으면 도와줄 누군가를 만나던지 아님, 산속에라도 잠시 숨어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단 생각에서였다.

그때 포졸들은 벌써 그를 뒤쫓고 있었다.

 

그의 탈출을 알게 된 조정은 발칵 뒤집혀 긴급체포령이 내린 까닭이다. 이지는 허망하게 마니산자락에서 체포된다. 그 소식을 들은 아내 박씨가 자결했다. 향년 26세로 동갑내기였다. 자유를 찾아 탈출했던 이지는 감방에 갇혔고, 그의 목숨마저 인목대비와 인조의 말 몇 마디 설왕설래로 끝낼 판이 됐다. 인목대비는 복수의 혈안이 돼 있었다(인조실록1,1623.6.25.).

 

마니산정상, 용케 짝사랑하는 산님들을 따돌렸을 때

 

육신의 자유는 체념의 쓰라림으로 삭혀야 했다. 이지는 끌려오면서 허무를 읊는다. 모든 걸 내려놓을 때 평안의 자유를 얻었을 테다.

티끌속의 뒤범벅이 물결 같구나(塵幻飜覆似狂爛)

걱정한들 무엇하리 마음 스스로 평안하다(何必憂愁心自憪)

26년은 참으로 한바탕 꿈이라(二十六年一夢)

흰 구름 사이로 돌아가리(好須白雲間)“

 

 

참성단에서 단군로를 따라 하산하다 바위벼랑의 양지바른 바위에 걸터앉아 기갈을 때운다. 석모도와의 사이 바다가 제법 또렷하고 멀리 교동섬도 실체가 가늠된다. 지금은 교동도와 석모도를 잇는 다리가 개통돼 강화둘레길코스가 열려 트레킹답사가 성황이란다. 이지를 즉결처분하라는 어머니 인목대비의 복수심 앞에 고뇌하는 인조는 할 수 없이 사약을 내린다.

 

인조반정의 한 구실이 조카를 죽였다는 거였고, 그런 반정세력의 등살에 업혀  허수아비용상에 오른 인조는 자신도 조카(이 지)를 죽여야 된다는 이율배반에 주저주저했던 거였다. 그런 인조는 나약한 임금이었고 공신들한테 휘둘리다보니 죽기보다 못한 꼴을 당하게 된다. 사약 들고 온 금부도사에게 이지가 말한다.

참성단에서 본 건너편의 마니산정상은 사람꽃

 

진작 자결했어야 함을 알면서도 여태 산 것은 부모의 안부를 알고 싶어서였고 땅굴을 판 까닭도 그거였다.”

말을 마친 이지가 손발톱 깎고 목욕 재개 후 사약 받겠다고 했으나 금부도사는 그마져 거절했다. 그는 의관재제하고 부왕의 배소(配所)가 있는 서쪽을 향해 네 번 절한 뒤 밧줄에 목을 맨다. 근디 그게 끊어졌다. 이지는 다시 질긴 명주실밧줄에 목매 절명한다. 이지의 부왕은 광해였다.

 

 

이곳 강화도는 광해와 연산군이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질곡의 트라우마섬이다. 미치광이 왕 연산과는 달리 광해는 순전히 당파싸움의 희생물이었다. 광해부자를 강화도에 내쫓은 인조는 이듬해 오랑캐에 쫓겨 강화도에 자신도 피신 온다.

정묘`병자호란을 겪으며 인조와 대신들은 광해의 혜안을 알아채지만 뉘 하나 모른척 해야한 등신들이었다.

 

그런 강화도 마니산은 백두천지와 한라백록의 한 중간에 있는 단군의 성역이라 기가 세다했다. 그 성스런 기를 채 받으려 산님들은 새해 참성단을 오르는가 싶다. 오늘의 정치인들도 참성단에 올라 진보`보수싸움질 끝냈으면 싶다. 누가 뭔 짓을 했는지를 역사는 기록하고, 후세는 눈 부릅뜨고 있단 걸 알아야 한다. 하산 길의 겨울바람은 살을 애였다. 강치 후라야 봄이 반가운 법일 테니~!

2019. 01. 01

기해년 해돋일 한강을 건너면서 맞다

중앙에 솟은 바위산이 마니산정상

하산할 단군로 산능

참성단정상 직전에 성깔 급한  누군가가 제사를~

150살의 소사나무는 참성단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산길목에 소화기와 방화수가 뛰엄뛰엄~ 경고 치곤 100점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