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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서울첫눈! 창경궁 눈폭탄 속에서

 서울첫눈! 창경궁 눈폭탄 속에서

 

 

새벽녘서울에 첫눈이 좀 내린다는 예보는 했었다. 근디 그 눈발은 아침을 먹고 9시가 되도록 그치질 않고 무진장 퍼부을 태세다. 게다가 바람까지 몰아친 진눈개비 눈은 섣달그믐아침일 듯싶게 말이다.

 

함인정 앞 정원의 향나무

 

겨울에도 눈발 보기 아쉬운 서울인데 11월에 첫눈이 9cm라니! 하얀 눈밭을 강아지처럼 휘젓고 싶은데 걱정이 앞선다. 작년에 팔목골절수술 했던 철심을 재거한 재수술한지가 1주일밖에 안 돼 스틱 없이 쏘다닐 곳을 생각하다 창덕궁을 향했다.

 

금천

 

영상의 기온은 쌓인 눈을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헤픈 여인의 눈물마냥 물 범벅을 만든다. 질퍽대는 창덕궁눈밭은 서설(瑞雪)을 즐기는 상설객(賞雪客)들 차지가 됐다. 느닷없이 무거운 눈덩일 짊어진 나무들의 경련에 눈뭉치가 미끄러진다. 아깝다.

 

인정전 입구

 

무거워도 좀만 더 진득했음 멋들어진 설화수(雪花樹)로 사랑받을 텐데~! 함양문으로 들어선다. 매 시간단위로 입장하는 후원을 기다릴 순 없음이다. 곱게 쌓은 눈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시간은 결코 내편이 아니기에~!

 

200상의 향나무(우)와 담장

 

계단에 내려서자 창경궁궐팔작지붕들이 백설기가래떡을 햇볕에 널었다. 그 또한 아깝다. 고궁의 설경은 지붕위의 백설기 말고는 어째 그래서 통명전과 경춘전 옆구리 눈밭을 가로질러 설화수 우거졌을 정원으로 내달렸다.

 

 

200년을 이리 한결같았을 향나무가 노쇠한 골간에 눈을 얹고 궁궐 뜰을 지키고 있다. 그를 호위하는 눈 쌓인 담장이 멋진 수묵화가 됐다. 사진기 든 찍사들이 뷰포인트 찾느라 서성댄다. 휴대폰 들고 나도 그들 흉내를 내본다.

 

 

설화수가 오두방정 떨고 있는 내게 눈폭탄 씌우길 몇 번인가!

설화수야! 쫌만 더 참아라. 그래야 사랑 받는다.”

사랑 좋아하시네. 무거워 골병드는데~? 올 여름 그 가뭄에 물 한 방울 준적있수?”

설화수의 지청구를 못 들은 척 나는 계속 오두방정을 떨며 강아지처럼 쏘다녔다.

 

관천대와 송림

 

글다 문득 여기어디쯤에서 항상 눈물 글썽여 슬퍼 보이는 큰 눈의 낙타가 생각났다. 궁궐이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바뀌는 걸 본 마지막 왕 순종은 낙타란 동물의 눈이 참으로 슬퍼 보이지 않는가!”라며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그 보다 더 슬펐을 낙타가 그 전에도 여기서 며칠간 있었다.

 

 

1695(숙종 21) 4월에 생뚱맞은 낙타가 서울장안에 나타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청나라사신이 낙타에 짐을 싣고 오다 병이 들었던지 의주에 놔두었는데 대궐에서 일보던 누군가가 놈을 사와 장안에서 돈벌이로 나선 거였다.

 

 

참으로 괴상하게 생겨먹은 동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돈 주고 구경한다는데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떼돈 벌었단다. 그 소문이 구중궁궐의 숙종 귀를 비켜갈리 없었다. 동물애호가인 숙종이 암암리에 사람을 찍어 그 낙타를 궁안으로 모셨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보려고~.

 

창경궁 뒷마당

 

근디 신하들이 반대해서 숙종은 슬픈 눈동자로 슬픈 눈의 낙타를 궐 밖으로 내보내야했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만약 그 낙타에게 새끼가 있었고, 병든 몸에 떼돈까지 벌게 했으니까 그만 놔주었다면, 낙타는 새끼 찾아 북경까지 2천리 길을 기어코 갔을 테다.

 

 

슬픈 눈을 가진 낙타가 추운눈밭에 살아나 남을까?

춘당지에 섰다. 백설의 세계에 갇힌 검푸른 호수는 차가운 정적을 깔은 채 주위의 무거운 풍정을 안고 있었다. 얼어붙었나 싶은데 소나무가 장난을 친다. 이고 있던 눈덩일 살짝 떨어뜨리는 거였다.

 

 

춘당지

 

놀란 수면이 찡그렸다. 놀람이 파문이 되고 파문은 또 파문을 만들어 그 파장은 여울이 된다. 풍정이 일그러진다. 일그러진 풍정 속에 하늘도 춤을 춘다. 상반신만 담근 나도 사라졌다. 그 떨림이 좋았던지 소나무는 호수가 잔잔해질만하면 눈뭉치를 떨구는 거였다.

 

 

멍 하니 그걸 쳐다보다 눈폭탄에 소스라친다. 글곤 일제(日帝)가 호수로 만든 건 잘했단 생각을 했다. 그실 여긴 왕이 벼농사를 지었던 논이었고, 위의 작은 호수가 방죽이었던 거였다. 흰 눈밭에 누운 단풍잎이 비단자락이 됐다. 섬세한 자연의 신비다.

 

 

그 꽃비단을 밟는다. 물컹거리는 비단길에 내 발자국을 남긴다는 짓궂음을 사랑한다. 아무도 없는 비단길에서 그 짓궂음을 즐기며 관덕정에 올랐다. 대도시 서울도심에서 나 홀로 꽃비단자락을 깔고 설경에 취한다는 정취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자생화단

 

마루에 걸터앉아 물과 육포와 비스켓을 꺼내 배창시를 달랬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기어오더니 주저 않고 냉큼 마루로 올라서는 게 아닌가?

창경궁궐내에선 음식물 반입이 안 되는디~?’ 하는 투로 나를 노려본다.

 

 

난 얼른 육포 한 조각을 뇌물로 던졌다. 놈이 잽싸게 씹어 삼킨다. 뇌물 준 놈이나 받아 처먹은 놈이나 공범이라.

난 맘 푹 놓고 배창시 달랬다. 얄밉긴 해도 놈의 눈빛이 처량해 보여 육포조각을 던졌는데 아뿔사 얻어먹는 주제에 비스켓은 란다.

 

관덕정에서 고양아와~!~?

 

글다가 이놈이 소리소문 없이 슬그머니 토방으로 내려서 아장아장 눈밭으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육포를 던져줘도 놈은 힐끔 나를 쳐다보곤 말이다. 사연이 무지 궁금했다. 냉정한 놈?이란 생각은 잠시, 그 의문이 단박에 풀렸다.

 

 

똑 같이 생겨먹은 고양이가 내 등 뒤 마루로 올라오고 있었던 거였다. 덩치로 봐서 지어미쯤 될 성싶었다. 철저하게 서열과 영역을 지키는 놈들의 세계와 삶을 엿보며 장희빈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봤다. 자기를 보듬어주며 비에 오르게 한 민비를 모략 음해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악녀였다.

 

대온실

 

사약을 받고 취선당에서 압살당한 희대의 악녀보다는 고양이가 이쁘지 않는가!

나도 자리를 떴다. 장희빈이 사약도 거절하다가 문판(門板)으로 압사(壓死)당한 취선당이나 들여다볼까?

 

동명전후원

 

나무들도 눈꽃 짊어지고 있기가 그리도 싫은가? 눈덩일 쏟아버린 나무들이 홀가분한 포정이다. 눈길도 녹아 물탕 길로 변했다. 시간은 내 편일 수 없다. 그 시간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함이다. 첫눈마지를 이렇게 싱그럽게 할 줄이야!

2018. 11. 24

 

대온실정원

돈화문

인정전

희정당,선정전 앞

양화당 앞

금천교의 四季

금천

명정전

양화당후원

함양문입구계단

자경전터

성종태실비

칠층석탑

관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