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사랑이라
사람의 일생이란 누군가와의 만남의 연속이 아니겠는가.삶의 향기와 그 빛깔도 만남 속에서 피어나고, 결실이란 것도 만남의 지속에서 비롯되는 것일 진데 만남이란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만남에서, 때론 자기의 삶에 상당한 영향(긍정적인 경우기 많다)을 끼쳤을 때의 만남을 운명적이고 우연이라는 수사를 하나 더 붙인다.
오웅진 신부가 박귀동 할아버지를 만나지 안 했다면 ‘사랑의 꽃동네’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장담하지 못했듯이, 오 신부는 걸인 할아버지를 만남으로 ‘구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란 고귀한 삶의 의미를 발견했을 것 같다.
항상 나보다 못한 이웃을 관조하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됨으로 자족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베푸는 삶은 진정으로 행복한 생활이다.
오 신부는 참으로 행복한 - 축복받는 일생을 살아가고 있음이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흔적들이기에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그 순간을 진솔하게 임해야 함이다.
만남이 기쁨과 보람에 이어 때론 실망과 분노로 결과 된다하더라도 성심을 쏟는 걸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소이가 그것이 곧 자기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 했는데도 기대하지 않은 결과로 끝나게 됐다면 그것으로 감내하고 상대를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망의 마음은 더욱 자신을 아프게만 할뿐 그렇다고 결과가 바뀔 확률은 극미하기에 말이다.
‘운명적인 만남’이나 ‘우연스런 만남’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결과론이기 십상이고, 다분히 만남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사일지 모른다.
만남에서, 그 만남이 지속되기 위해선 서로의 노력이 있어야하고, 그 만남이 진행형이거나 아님 종착점에서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우연이나 운명적인 만남도 서로의 노력 없이 일방적으론 지속 될 수 없음 아닌가.
너와 내가 무언가를 이루어 내기 위한 지극한 노력이 있을 때에 우연이나 운명적인 만남도 존속하게 되고 아름답게 결실을 맺을 수가 있을 것이다.
삶(만남)은 서로를 포용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고 기다리는 자세로 이해하고 나를 내 줌으로 해서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만남은 사랑이다.
애정이 없는 만남은 지속될 수가 없다.
만남은, 사랑은 아침이슬방울 같기도 하다.
그 영롱한 아침이슬은 잠시 반짝이다 햇살 속에 사라져 내일 새벽을 기약한다.
사랑은 아침이슬을 대하는 마음으로 아끼고 기다리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함이다.
만남 속에서, 좋은 만남이라고 생각되는 인연이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없었다면 그 까닭을 우선 자신한테서 찾을 일이다.
만남은 사랑을 전제함 속에서 운명적일 수 있을 것이다.
199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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