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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개밥바라기 뜬 아름다운 밤

개밥바라기 뜬 아름다운 밤

 

 

에메랄드처럼 맑은 하늘에 솜털구름이 흐르고 산들바람이 그지없이 감미로운 하루였다. 노을빛이 옥첩당(玉牒堂)용마루에 걸린 솜털구름을 노랗게 물들인다. 우리식구들은 그 노을을 완상하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뜨락을 거닐고 있다.

 

옥첩당의 노을

 

프랑스요리식당 샤떼뉴(Chataigne,참나무란 뜻)를 향한 발걸음은 삼청로에서 다시 팔판로골목으로 들어선다. 한옥 한쪽을 식당으로 사용하는 주인 최셰프님은 파리와 런던호텔주방에서 근무한 요리사인데 레시피와 서빙을 직접 하는 입소문난 레스토랑이다. 예약한7시에 식당에 들어섰는데 아무도 없는 식당은 통째로 전세 낸 기분이 들었다.

 

 

반년 만이었지 싶다. 야채셀러드에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축하해요!”라고 약속이나 한 듯 외쳤다. 아내의 생일기념 외식을 둘째가 고집스럽게 샤떼뉴에 마련한 거였다. 코스요리가 짬짬이 테이블에 놓여진다. 요리에 따라 와인이 바뀐다. 오늘 입고 온 옷매무세를 고치며 아내가 고맙단 인사를 했다.

 

샤떼뉴레스토랑 입구

 

둘째의 선물 이였다. 친구M이 금욜에 아프리카모리셔스에 출장 간다고 한다. 비영리자선단체 프렌젠데이션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아프리카남단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 마다카르가스 옆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모리셔스얘기를 하다, 자선단체의 기부문화로 글고 유니세프로 화재가 이어졌다.

 

 

유니세프회원인 둘째가 선물에 낳은 미담 하나를 소개할 땐 세상은 살만하고 그래서 인류문화는 발전한다는 진리에 공감했다. 둘째의 지인이 거래처사장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었는데 놀랍게도 책 속에 봉투가 있었단다. 중소기업여사장이 좋아 친절 베풀었을 뿐이었는데 300이 들어있는 봉투여서 당황한 지인은 곧장 전화로 사의를 표하며 반환하자 다시 되돌아왔다.

 

 

그래서 전활 넣어 좋은 곳에 쓰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제 것이 아니니 마음 편할 대로하라더란다. 하여 지인은 그걸 유니세프에 그 여사장명의로 기부하고 영수증을 보내줬단다.

그 일후 지인과 여사장은 비즈니스를 떠난 친밀한 교우관계를 갖게 됐다는 얘기였다. 둘째의 지인은 부자도 아닌 평범한 캐리어우먼이었다.

 

오후 안산자락길서 조망한 청명한 갈 하늘의 서울

 

선물은 각박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윤활유일 것이다. 받아서 마음 편한 선물이면 말이다. 어떻든 선물은 받는 자 보단 주는 자가 즐거운 법이다. 세 번째 식단이었던가? 수증기훈제 민물장어를 얇게 썬 더덕에 곁들어먹는 식감은 여느 장어요리와는 별달랐다. 글고 이어진 푸아그라도 블랙배리를 곁들이니까 여태 먹어 본 푸아그라요리보다 별미였다.

 

 

프랑스요리전문점인 샤떼뉴는 식대가 만만찮다. 그래 울 내왼 한사코 반대했지만 결국 이 자리에 앉았다. 갈수록 손님이 뜸해지는 샤떼뉴식당에 최사장 얼굴 보기위해서라도 1년에 두어 번 찾아줘야 한다는 둘째의 심성(心誠)을 외면할 순 없어서였다. 괜찮다싶은 사람과 맺은 교우는 죽는 날까지 이어가야 한다는 울 가정의 가훈(家訓)이라면 가훈을 이어가나싶어 흐뭇하기까지 했다.

 

밤 10시를 넘긴 삼청로

 

어느덧 열시가 됐다. 세 시간 걸린 만찬이 즐겁기만 했다. 아내가 연신 행복한 표정이었다. 우린 걷기로 했다. 경복궁돌담길-삼청로를 걷다가 서쪽하늘의 별 하나를 발견했다. 서울도심 밤하늘에서 별을 마주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울 식구들 모두 신기한 듯, 아니 샛별이 떴다고 외쳤다.

 

경복궁돌담길

 

오늘 낮 엄청 청명했었는데 별 반짝이는 가을밤하늘을 빚으려 하얀 솜털구름으로 종일 하늘을 씻었던가 보다. 해 진 뒤 서쪽하늘에 뜨는 별은 금성이고 개밥바라기라고도 하며, 새벽 동녘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샛별이라 한다. 새벽샛별을 보며 일터에 나간 주인이 해지도록 귀가하지 않아 배고픈 강아지는 서쪽에 뜬 금성을 쳐다보면서 빈 밥그릇을 핥다 멍멍 짖는데 그 밥그릇이 개밥바라기다.

 

건춘문 뒤로 개밥바라기가 반짝!

 

개밥바라기는 경복궁건춘문을 지나 동십자각에 닿을 때도, 은은한 조명 속에 폼 잡고 있는 광화문이 저만치일 때까지 반짝였다. 문득 수십 년 전의 스산한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아내와 내가 허기증을 달래며 개밥바라기 뜬 이 길을 걷던 때가 떠오른 거다. 난 아내에게 물었다

 

경복궁동문

 

여보, 우리 중국집에 저녁밥 먹으러 여길 걷던 기억 나?”라고.

아니, 그런 적 있어?” 아낸 시침일 때고 있었다. 아니 어쩜 오늘밤같이 즐건 날에 배고프고 막막했던 기막힌 날들을 추억하고 싶지 안했을 테다. 내가 북아현동사무소에서 방위근무를 하던 똥구녕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때였다.

 

동십자각, 개밥바라기 땐 뒤에 저층의 한국일보사옥이 돋보였는데

빌딩숲으로 도배를 해 초라해 보인다 

 

친구M이 동십자각 뒤 어느 독서실에서 중앙정보부임용시험공부를 하며 중국집에서 식권을 끊어 매식했었다. M이 합격하자 연수에 들어가면서 남은 식권50여장을 내게 줬다. 방위근무로 손가락 빨고 있는 울 내외에게 말이다. 그래서 우리내왼 저녁때면 북아현동셋방을 나서 의주로와 광화문로를 걸어 동십자각 뒤 중국집까지 식사하러 다녔던 것이다. 아내는 큰애를 등에 업은 채였다.

 

 

경기대 뒤 언덕너머 북아현달동네에서 중국식당까진 4km쯤 될 테니 왕복8km를 걸어 다녔던 셈이다. 짜장,우동,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식권을 아끼느라 울 내왼 한 그릇이상 먹질 안했다. 짜장 한 그릇 후딱 치우고 집에 오면 배가 다시 출출했지만 우린 내숭도 안했다. 그렇게 개밥바라기 행차를 근 한 달 동안 했었다. 그 비애는 아내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터였다.

 

해태상과 광화문

 

광화문을 지나 서울경찰청, 경희궁아침 앞길을 걸으며 아련한 개밥바라기 끄니 때운 추억을 곱씹었다. 정녕 오늘밤은 아름답고 멋진 밤이다. 짜장면 아닌 푸아그라를 먹고 오는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난했어도 그 시절이 더 아기자기 살가웠지 싶고, 앞날이 구만리 같아서였다. 그 서글픈 추억을 맛있게 되새김질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 흥화문을 통과 서대문사거리에 닿았다. 경기대 뒤 돈의문센트레빌아파트가 울 집인데 아파트 뒤 언덕빼기를 올라서 안산자락길입구에 서면 건너편이 북아현동이다. 아내와 난 몇 년 전에 개밥바라기시절의 셋방을 찾아 나섰지만 옛 모습은 흔적도 없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부자지만 행복을 맛보는 순간들은 그때가 더 많았지 싶다.

 

 

부자(富者)란 건 풍요한 물질 탓에 생활이 다소 편리해졌을 뿐 행복지수가 비례한 건 아님이다. 그걸 알면서도 가난해질까 두려운 건 불편을 감수할 용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욕망의 노예생활타성에 빠져 소아병적으로 유치해진 탓이리라. 유니세프회원노릇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그냥 살아가고 있다.

 

 

울 내외가 죽어 혹여 남는 돈이 있으면 자식들이 감지덕지 할까? 진정한 행복감은 자수성가 하는 삶의 과정에서 만끽한다. 사람들은 개밥바라기강아지가 짖는 소릴 들어야 아름다운 밤을 맞을 수 있으리라. ! 즐겁고 뿌듯한 아름다운 밤으로의 여정이었다.

2018. 09. 04

우측의 인왕능선에 이은 북한산영봉들이 푸른 갈 하늘과 구름속에 그림이라  

 

샤떼뉴의 쬐그만 토방에 휑 뚫린 천정으로 하늘이 기웃댄다

# 위 낮의 풍경사진들은 오후 안산자락길트레킹 중 찍은 것. 

아래 2장의 사진은 모리셔스의 사탕수수밭과 폭포는 웹상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