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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장산춘천의 가마소가 품은 얘기

산춘천의 가마소가 품은 얘기 

 

대천호수

 

 장산입구 대천호수에 몸을 푸는 골짝의 물살이 봄바람 맞아 조잘 된다. 우거진 수풀의 연둣빛까지 풀어 신바람 난 물길은 가장자리 갯버들을 깨워 봄내[春川]축제에 들었다. 남쪽바다 봄바람은 오륙도와 동백섬을 건들곤 해운대장산계곡으로 달려와 갯버들을 깨운다.

 

장산계곡

 

 

속살을 바르르 떨면서 뽀송뽀송한 깃털로 봄볕을 마시는 버들강아지가 양운(養雲)폭포 아래 가마소에 많이 자생한다. 그 갯버들나무는 애초에 하늘에서 떨어진 버드나무 잎이었다. 또한 버들잎이 상하면 안돼 신은 잎에 생명을 불어넣어 고기로 만들었으니 곧 '버들치'.

 

 

 

목이 마른 고려태조 왕건이 버드나무 우물가를 지나다 물긷는 낭자에게 물 한 종지를 청했다. 낭자는 종지물 위에 버들잎 하나를 띄워준다. 왕건은 그 낭자를 잊지 못하고 나중에 왕비로 맞았단다. 두 남녀에게 버들잎은 봄소식[春川]이었던 것이다.

 

양운폭포 & 가마소

 

 

가마소는 양운폭포 아래에 있다. 장산계곡과 구곡계곡의 물줄기가 합류하여 9m짜리 단애를 세 번 뛰어넘는 장관을 이루는 물 폭탄세례다. 그 물 폭탄이 바위에 부딪치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를 양운폭포라 한다. 그 폭포 소엔 팥배나무가 들어서서 함박꽃 같은 꽃술을 뭉게뭉게 솜구름처럼 띄운다.

 

 

 

그 양운폭포 아래 둘레가 15m나 되는 소()가 있는데 어찌나 깊던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바닥이 다질 않는 쪽빛가마소가 있다. 가마소엔 옛날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닐다 승천하곤 했다는 전설도 있다. 아니 가마소가 품고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는 불과 70여 년 전의 팩트일런지도 모른다.

 

 

 

해방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해 유월이었다. 망운폭포 아래 옥색 소()에 뜬금없이 두루마기 한 벌이 날려와 빠졌다. 잠시 후 일단의 남정네들이 달려오고 그 중에 한 노인이 헐레벌떡 소 가장자리에서 긴 막대기로 두루마기를 건지려 물속을 휘 저으며 안간힘을 쏟는다.

 

 

 

허나 두루마기를 발견하지 못하자 같이 달려온 마을사람들이 물속을 뒤졌지만 끝내 두루마기는 찾지를 못했다. 두루마기주인은 아내가 임신 중이었단 걸 깜박하고 아까 장산 천제단과 마고당 제의(祭儀)에 참례한 거였다. 더구나 오늘 제엔 운촌 마을노인들이 갑계(甲契)때 쓸 송아지를 도살하여 제의에 올리려던 참이었다.

 

너덜지대서 조망한 해운대

 

날씨가 몹시 더워 제관들은 모두 두루마기를 벗어 신당 옆 바위에 얹어놓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노인 것만 날아갔던 거였다. 두루마기 잃은 노인은 집에 돌아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갑계에 쓸 송아지와 임신한 아내를 둔 노인이 제에 참례하여 마고당 마고할미와 삼신(三神)의 노여움을 산 까닭이었다.

 

 

마고당

 

나는 잉크 풀어헤쳐놓은 가마소를 훑으며 삼신의 저주를 받아 비명한 노인네와 애먼 미망인과 유복자아이를 상상해 봤다. 우리의 토템사상은 지금도 면면이 이어져 주택가에 빨강깃발을 세운 무당집이 건재함을 보게 된다. 나와 아내는 오늘 마고할미를 찾아 마고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고당은 돌담집이다

 

양운폭포 물줄기를 따라 오르면 체육공원이 있고, 거기서 장산마을 가는 임도가 있는데 너덜지대를 지나 왼쪽 숲속으로 난 등산로가 입구다. 가파른 등산로는 팔부능선쯤에 안부와 억새숲을 잇는 등산로와 만나게 되는데 그 분기점에 이르기 전 너덜지대에 마고당이 있다.

 

 

 

마고할미를 모신 마고당은 장산중턱의 너덜겅 비탈에 있고, 그 우측100m쯤 산기슭의 널따란 바위위에 삼신(天神,地神,山神)을 모신 천제단이 있다. 장산마고당은 마고할미를 모시는 본당, 산신을 모시는 산신단, 제기를 보관하고 제실로 구성 돼 우리고유민속신앙제당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천제단의 3신(석물)

 

제관은 제의를 지내기 전후로 열흘 동안 부정을 가리는 금기를 행해야한다. 신에 올리는 제의는 신성하여 제물과 재관의 몸가짐이 깨끗해야 해서다. 제의는 장산 일대의 운촌, 중동, 미포, 장지, 오산, 좌동 여섯 마을에서 윤번제로 매해 음력 13일과 63일 두 차례 제의를 베풀어 왔다.

 

 

천제단의 석간수

 

천제단은 23백 년 전부터 산신에게 제천의식을 올리던 곳이다. 천제단은 돌로 만든 제당으로 마고당에서 북쪽으로 100m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제단 뒤쪽의 바위에는 천제단에 모신 신격의 입석 3기가 세워져 있는데,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신선바위 뒤에 바위 제단을 한 단 더 높게 쌓은 형태이다.

 

 

마고당 안내비

 

옛날부터 내려오는 장산국 제의는 마을공동체사람들이 무병장수와 일체감,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일 년에 두 번 천신`천제당, 마고당에서 행해젔다. 서기1741년부터 동하면민이 장산에서 기우제를 지낸 이후부터 마고할미를 모신 제당을 세워 정월과 유월 제의를 올렸단다.

 

 

마고당신전

 

제의방식은 천제당산신단제석당에서는 삼배, 마고당에는 구배를 올린다. 제의 뒤에는 제석당에서 제관들이 음복한 다음 당일 진시(辰時)를 경과한 후 마을로 하산 주민들과 경로당에서 제수음식으로 음복한다. 마고당 일곽은 너덜지대자연석으로 높이 24쯤 쌓은 돌담으로 토테미즘을 물씬 풍기는 거였다.

 

 

 

마고할미를 모시는 마고본당을 중심으로 산신을 모시는 산신단과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장만하는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마고본당은 청기와 맞배지붕 형태로 용마루우측에 치두, 좌측은 치미로 장식하여 창방 위에 상산마고당(上山麻姑堂)이런 현판을 걸었다. 산신단 아래 너덜갱바위 밑에 석간수가 흐르는데 제수용정화수로 쓰이나 싶었다.

 

 

마고당제실

 

사다리꼴 모양의 돌담으로 둘러싼 마고당은 정한수 그릇과 불 꺼진 촛대와 빗자루나부랭이가 누군가가 기도를 올린 태가 나는데 왠지 의시시한 서늘함이 들었다. 울창한 숲속에서 돌담 쌓은 청기와 재실에 토속신앙을 맞닥뜨린 건 난생 처음이라. 말로만 듣던 토템폴은 산신이나 마고할미 존재를 실감케 했다. 마고당경내외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토테미즘이란 토속신앙이 우리의 영혼을 지배했을 만하다고 생각됐다.

 

  사다리꼴의 돌담

 

하여 1980년대부터는 여섯 마을의 동장들이 합의하여 좌동마을에서 제의하였던바 1996년까지 마을주민을 대신해 폭포사의 주지스님이 망제형식의 제의를 대행했단다. 좌동주민들이 마고당과 천제단의 전통 민속문화발전 계승방안을 모색하여 장산신당보존관리위원회(2010610장산향토문화보존사업회로 개칭)’를 결성하고 1997년부터 제의를 주관하여 모시고 있단다.

 

 

 

마을사람들이 위안하고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결코 무속행위로 치부할 순 없으리라. 아니 향토문화로 튼실하게 계승해야 옳다. 맑은 영혼으로의 씻김굿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아낸 빨리 자릴 뜨잔다. 등산복차림의 장년 한 분이 홀연히 나타나 제단 앞에 무릎 꿇은 채 묵념하곤 사라졌다. 촛대가 세워진 바위굴 밑을 가리키며 여기 물은 드시면 안 됩니다. 오염 됐어요.”라고 주의를 던지면서였다.

 

마고당의 너덜지대

 

 

왜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을 베풀었을까? 너덜지대의 깊숙한 석간수가 오염이라? 아닐 것이다. 제의 정한수로만 사용할 물에 혹여 부정이 탈까를 염려한 탓일 터였다. 여기 오기 전의 우리부부에게 어떤 오점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터여서리라. 불현 듯 두루마기 잃은 노인 생각이 났다.

 

 

 

장산은 여느 산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높지 않으면서 유달리 많은 너덜지대에 규모의 방대함이나 돌무더기의 크기가 상상을 절한다. 또한 장산은 조선시대봉산(封山)으로 나라에서 육림벌채한 송림으로 유명하다. 그 누구도 무단 간벌했다간 혹독한 벌을 받아야했다.

 

 

 

깊지 않은 산세치곤 물이 마르지 않고 온천수맥을 품고 있어 토테미즘이 활성 했지 싶다. 장산의 울창한 숲과 수려함은 그런 특이한 산록에서 비롯됐지 싶었다. 부산시민은 장산덕으로 행복할 테다.

2018. 05

대천호수

마고당석굴 속의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