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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묻지 마?' 남도여행 2

남도여행 둘째 날

 

죽도의 아침

 

간밤을 겉잠으로 뒤척인 건 여독 탓만은 아닐 테다. 뒤척이다 늦 새벽잠에서 눈을 뜨니 6시 반을 넘었다. 고양이세수를 하는척하고 모텔을 뛰쳐나왔다. 죽도(竹島)의 일출을 보고파서다. 7시의 동해는 희끄무레한 연막을 치고 일출을 새색시 감추듯 하고 있다.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걸까? 암튼 엷은 시스루로 가린 해님이 고마웠다.

 

 

그 해님은 죽도의 빼곡한 송림사이로 여린 빛살을 흩뿌리며 몽환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몽유도는 나의 발걸음에 따라 한 컷 한 컷 배일을 벗으며 죽도의 아침민낯을, 송정해안풍광을 파노라마 시키는 거였다. 바다에서 맞는 일출은 항상 싱그럽고 가슴 미어터지는 황홀경을 선사한다

 

 

죽도의 구부정한 소나무들이 아침햇살에 춤추는 풍광은 눈이 아릴정도다. 죽도는 옛날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부른 이름인데 언제부터선지 대나무는 싹이 마르고 소나무가 울창 빼곡한 공원이 됐다. 장산(長山)의 모래를 날라 온 송정천이 바다를 메꿔 죽도를 연결하어 뭍으로 거듭났다.

 

송정해수욕장

 

울창한 소나무숲의 얼굴을 바꿔 송정공원으로, 솔숲공원은 고운모래톱을 완만하게 펼쳐 해수욕장을 거느리니 지금의 화려한 송정시가지로 상전벽해를 이룬 명소가 됐다. 암벽위의 송일정(松日亭)은 망망대해 동해의 일출과 송정해수욕장을 품은 시가지, 그리고 구덕포와 사랑대를 조망하는 명당자리다.

 

기장앞바다서 채취한 미역을 손질하는 아낙네들

 

송일정일대의 현무암들은 해풍과 파도와 맞선 억겁의 싸움질에 기기묘묘한 형상을 이뤄 훼훼 굽은 소나무를 붙들고 있다. 죽도포구는 아낙네들의 미역손질로 아침을 연다.

유명한 기장앞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포구갓길에 늘어놓고 선별작업 하느라 바짝 다가서야 인기척을 알아챈다.

 

 

송일정

일출과 송정해수욕장과 시가지를 일별할 수 있는 뷰포인트다

 

미역줄기를 몇 가닥씩 모아 늘여놓고 햇볕을 쬐여 건조미역을 만드는데 아줌마가 미역귀를 잡아 때어 먹어보라고 건네줬다. 짭조름하고 설컹설컹한 식감이 그대로 반찬이나 술안주로도 괜찮지 싶었다. 다만 미역건조대가 도로가를 피했으면 좋으련만? 매연과 미세먼지를 뒤집어쓰며 건미역이 될 테니 말이다.

 

 

미역뿌리뭉치가 대단한데 군데군데 모닥불피우기라도 할듯 쌓아놨다. 어디에 쓰느냐?고 물었더니 전복양식으로 쓰인단다. 자연에서 얻는 자원은 버릴 게 없다지만 전복의 먹이가 된다니 놀라웠다. 판자너덜집에서 아주머니가 하품하며 나오다 어슬렁대는 나를 보고 소스라친다. 무안하여 못 본척 뺑소닐 치려다 뒤돌아보니 미소를 띈다.  한 컷 찰칵 죽도의 고달품을 담았다.

 

송도가 된 죽도에 아침햇살이 송림들의 선잠을 깨운다  

 

아침을 먹고 해동용궁사를 향했다. 수직단애위의 용궁사는 석굴과 백팔계단을 내려서야 용궁에 들어설 수가 있다. 천태만상의 바위위의 불토는 독실한 불자가 많은 부산불도들의 사랑과 믿음 속에 불토요람을 이뤘다. 푸른 동해를 한껏 품은 용궁사는 빼어난 풍광만으로도 신심을 자아내게 할 것 같았다.

 

우뚝 선 용암

 

성불을 하든 안든, 신도들 제도에 매진하든 안든 스님들은 행복할 지어다. 풍광 빼어난 자리에서 일상을 누린다는 자체만으로도 석가모니불의 자비를 듬뿍 받고 있어서다. 용궁사 백팔계단을 기어올라 우린 그리운 노짱 숨결을 느끼려 봉하마을을 향한다.

 

용궁사를 배경으로 한 필자

 

아직 상춘하긴 이른 계절의 틈새여선지 사람사는 세상봉하마을은 한가해서 좋았다. 노무현대통령님 영전에 맘 푹 놓고 재배해도 신경 쓸 주위사람 없어 좋았다. 묘역엔 그새 노무현님을 사랑하는, 그리워하는, 애석해하는 사람들의 애뜻한 기도문을 새긴 박석 일만 오천 개가 사통팔달 선의 미학을 연출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뒤로 사자바위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박석길은 묘역에서 시작해 방방곡곡으로 뻗어 오늘의, 내일의 노무현이를 낳을 테다. ‘사람사는 세상의 모든 길은 노무현의 무덤에서 시작될 성 싶었다. 좀 더디긴 했지만 지금 우리나라가 사람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9년은 사람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담금질의 시련이었다.

부엉이 바위

아랜 석간수가 흐르고 그 물은 거울호수를 이뤄 부엉이바윌 품고 있었다

 

부엉이바윌 오른다. 아니 긴가 민가 난 발자국 따라 부엉이바위 아래 당신이 영원히 눕기로 한자리를 찾아 더듬었다. 바위 틈새로 흐르는 물이 바위 밑으로 스며들며 속삭인다. 당신도 생전에 여기서 이 물길소릴 들었을 테다. 그래 영면해도 이 물 흐르는 소리- 영가(靈歌)만은 들을 수가 있겠거니 하는 또 하나의 위안으로 부엉이바위에서 승천했을 것 같단 생각을 해 봤다.

 

부엉이 바위

 

그땐 가슴미어지고 분노에 미처 환장할 것 같아 모진(?)당신이 밉다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평정심을 찾아 당신이 현명했다고 추앙하고 있다. 모든 걸 안고 떠났던 당신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남아있어 사찰을 하고, 당신과 DJ의 비리를 캐겠다고 국민혈세 10억을 탕진한 정권이 9년 동안 이어졌으니 살아계신들 봉변 어찌 다 감내했으랴 싶어서라.

 

 부엉이 바위 틈새 석간수가 만든 거울호수

 

애석하기야 한없지만도 그래 당신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세월처럼 켜켜이 늘어만 갈 테다. 부엉이바위눈물이 흘러 고인 조그만 거울못에 부엉이바위 숲이 파란하늘을 품고 있다. 미세하게 일렁이는 거울못 수면에 당신 밀짚모자 쓴 노무현이 아른댄다. 의인은 죽어서야 인구에 회자된다는 명언을 거울못 바위에 걸터앉아 되새김질해봤다.

 

 

금년봄 햇살은 사람사는 세상을 다그칠 것 같다. 버스는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달린다. 하동읍 섬진강변의 벚꽃퍼레이드에 심취하며 벚꿀 맛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섬진강변의 벚나무들은 하얀 꽃망울을 막 터뜨리며 살랑대고 있다. 강 건너 벚나무는 옥양목을 휘두르고 하염없이 열주의 릴레이를 하고 있다.

 

부엉이 바위 오르는 산길 중턱서 조망한 봉하마을 전경

 

이 따스하고 맑은 봄날에 섬진강변의 벚꽃퍼레이드는 영락없는 옥양목휘장 길이었다. 하동읍 **횟집에서 벚굴과 재첩무침으로 식욕을 돋았다. 남해바닷물과 섬진강물이 결혼함서 뒤엉킨 물바닥에서 건저올린 굴맛은 부드럽고 영양가 높아 식도락가들 발길을 붙잡는단다.

 

벚꽃담장 넘어 노대통령 생가

 

거기에 재첩회무침이라니 금상첨화라. 식도락에 빠져 하얀 벚꽃터널을 달리는 기분은 봄맞이여행의 정수였다.

성깔 급한 벚꽃 잎 하나가 유영하는 옥양목휘두른 벚나무길목을 퍼레이드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거창한 꿈을 좇고 고상한 이념을 추구하며 엄청난 부와 명예를 이뤄야만 성공한 인생이랄 순 없다.

 

하동으로 향하는 섬진강변의 벚꽃 퍼레이드

 

 그냥 회무침에 소주 한잔 마시고 버스에 몸 기댄 채 시간 내어 여행하며 어젯날들을 되돌아보는 삶의 멋도 인생을 즐기는 행복한 삶터다. 더구나 요즘 매스컴을 달구는 이명박근혜를 보면서 인생이란 게, 삶이란 게, 행복이란 게 어찌해야 하는지를 통감케 한다.

 

노대통령기념공원의 잔디 쉼터

 

버스투어나 기차여행에 끼어들어 하룻밤을 낯선 곳에서 보내면서, 낯선 얼굴들을 훔쳐보면서, 담소 속에 나를 반추해보는 시간도 즐겁다. 낯선 곳 어느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에 시간을 녹여먹는 낭만도 자못 쌉쌀하다. 천만대행인 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평범한 소시민인 내가 얼마나 자유스러운지를 그래 뿌듯한지를 옹골차게 느끼는 거다.

 

벚굴과 재첩으로 봄맛을 돋았던 식당 앞 벚꽃가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더 많이 쏘다니고, 낯선 풍경에 맘 담구며 환호하고, 낯선 이들의 유쾌한 표정을 읽으며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음은 여생을 솔찬히 즐겁게 살았다 할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다. 맘이 가난해야 그리 살 수가 있다고 지기가 충고한다.

 

 

 

오후6시반, 광주송정역사 어제출발점에 다시 섰다. 아까 광주팀이 하차했다. '밥 먹을 때만 짝이였다'고 설침(說針)놨던 '이틀짝'이 쫌은 미안했다. '폰 번홀 물을까?'로 내심 갈등 하다가 '묻지 마!'는 '묻지 마'로 손 흔들어야 할 것 같았다. '이틀짝'의 미소가 한참을 아른댔다. 집으로 향하는 KTX차푤 샀다. 땅거미가 스멀스멀 밤으로의 여정을 안내하려든다.

2018. 03. 29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남도대교

 

죽도의 해맞이

죽도항포구, 우측 송림숲 아래 해양경찰죽도분소가 있다

죽도서 조망한 송정시

 

죽도항포구

 

 

멀리 기장 앞바다의 김양식장

죽도의 동백

죽도포구의 아침, 아줌마와의 어설픈 만남?

 

장산의 모래를 날라와 죽도를 뭍에 붙인 송정천

용궁사입구의 달마상 

 

용문석굴

 

용문사전경

필자

용궁단 & 원통문

감로약수는 지하동굴 석간수다

봉하마을 뒤로 사자바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부엉이바위

부엉이바위 밑에 석간수 흐르는 소리가 靈歌마냥 들린다

기념공원 차밭 & 감나무단지

부엉이바위 아래 거울호수

묘역 노통을 추념하는 기념박석의 모자이크

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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