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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우아하고 아늑한 6.6봉서 꽃핀 사연들-청량산

우아하고 아늑한 6.6봉서 꽃핀 사연들-청량산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열시 반쯤 청량산공원에 내려선 내 앞에 펼쳐진 산하는 윤석중의 <어린이날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싶을 만큼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산야는 한껏 연초록옷을 걸친 채 계곡물은 낙동강을 향해 출발하느라 속삭대고 있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오월은 우리산님들 세상이다. 지금 내가 발 내디딘 청량산은 온통 푸르디푸른 나의 세상이다.

 

응진전을 향한다. 가파른 산비탈 길엔 초록빛깔햇살이 뚝뚝 떨어져 아른댄다. 초록수풀사이로 있는 듯 없는 듯 얼굴 내민 은진전은 병풍처럼 휘두른 하얀 금탑봉속의 그림이다. 원효대사는 여기서 가부좌를 틀고 파계의 경계를 초탈했을까? 요석공주와 삼일밤낮 딍군 게 보실까? 돌담 밖에서 기웃대는 나를 보고 손사례 하는성싶다. 방해하질 말라고~.

금탑봉 밑자락을 더듬으며 바람소리에 귀 기우리다 신라 말기 최치원(857~?)이 정진한 천연 동굴 풍혈대(風穴臺)바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중국까지 문명을 떨친 대문장가였던 선생이 박식할 수 있었던 건 지금 내가 서있는 총명수(聰明水)덕도 봤을 테다. 선생이 석굴에서 정진하다 내려와 마시던 총명수 한 종지를 바위틈에서 떠먹었다.

 

청량사골짝을 훑고 온 바람은 상쾌하다. 금탑봉을 에두르며 조망하는 6.6봉과 그 봉우리꽃받침 속의 청량사는 우아한 그림이다. 언젠가 왔던 인산인해의 만추 속의 그림이 넘 아름다웠는데 푸르른 오월의 그림은 맛깔이 다르다. 어풍대에 섰다. 왼쪽에 우뚝 솟은 연화봉(蓮花峰), 그 오른쪽 능선엔 푸른 하늘에 한 자 휘갈길 듯한 탁필봉(卓筆峰)이 붓끝을 세운 채다.

그 바로 옆에 먹물을 담는 연적봉(硯滴峰), 맨 끝엔 석양빛에 붉게 물드는 자소봉(紫宵峰)이 울퉁불퉁 솟아오르며 푸른 하늘을 파먹고 있다. 그 아래 하얀 단애 암봉들이 병풍처럼 휘둘렀는데 흡사 연꽃 같다고 퇴계선생이 경탄했다. 퇴계선생이 섰던 자리에 지금 내가 서 있을 것만 같다 

 6.6봉자락 아래 아늑하게 자리한 청량사

연꽃받침 속에 천 년 고찰 청량사가 아늑하게 안겨 있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뿐이라고 청량산가(淸凉山歌)를 읊은 선생은 이 풍광에 푹 빠졌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오가(吾家)의 산이라며 기러기 빼고 혼자 두고두고 아껴 감상하겠다고 했을까.

병풍바위위 구름꽃

육육봉은 안으로 6, 밖으로 6개의 산봉우리 합쳐 12봉우리가 연꽃잎과 같고 청량사는 그 꽃술을 일컬음이다. 절 오른쪽 청량정사(淸凉精舍)는 퇴계선생이 공부하던 자리에 세운 제자들의 기념정사다. 우측 저기산등성 축융봉에서 조망하는 이 그림들은 환장하게 멋들어질 거다. 나중에 축융봉도 오르고 싶다.

김생굴

김생굴이 시커먼 구멍을 돌담위로 내 놓고 있다. 김생은 어기서 9년간 정진했는데 봉녀가 없었음 맬짱도루목 될 판이었다. 1년간 더 정진해 봉녀를 뛰어넘어 서성(書聖)이 됐던 것이다. 봉녀를 생각한다. 봉녀는 김생과 시합한 후 캄캄한 석굴에 얼마나 머물렀을까? 두 남녀는 긴 밤을 멀거니 응시만 했을까?

자소봉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두 남녀의 동굴 속 그림을 상상하며 자소봉을 오른다. 된비알 길 자소봉은 철사다리를 내 주면서 유혹하지만 끝내는 배꼽도 다 보여주질 않는다. 대신 첩첩준령들이 너울춤 추는 짙푸른 파도를 보여준다. 여기에 오른 산님들 - 우리들 세상이라 외치고 싶다. 허나 우린 손님인 걸~!

자소봉전망대가 펼친 능선파도

파도위의 파란 하늘, 파란하늘을 기어가는 한얀 구름떼 자소봉에 오른 산님만의 오월세상이다. 다시 내려서 초목을 헤치면 녹음을 뚫고 거칠게 다듬은 바위홍두깨가 불끈 솟는다. 탁필봉이다. 우듬지의 나무가지가 붓털이라 우긴다면 할 말이 없다. 

탁필봉

파란하늘에 일필휘지 하기엔 붓이 넘 거친데 신재선생은 붓이란다. 붓으로 세상을 요리하는 학자들이라 모든 게 지필묵으로만 보였던 모양이다. 내 보기엔 털 부숭부숭한 홍두깨를 거시기바구라 했어야 함이다. 바로 옆에 먹물 담긴 연적봉이 있다. 연적은 무신 얼어죽을 연적일까만 바늘과 실 격일 테다.

연적봉을 만지며 자란봉을 향한다. 가파른 내림오르막길이 급살 맞다. 하늘다릴 통과할 의례려니 생각했다. 헉헉대며 생각하니 신재선생은 요즘세상이라면 여성들한테 멋대가리 없단 소릴 듣기 딱이란 생각이 든다.

6.6봉에 이름 지으며 봉녀봉이란 이름 하나는 남겼어야 했다. 하물며 청량애찬시 80수에도 봉녀란 말은 눈 씻고 봐도 없다, 봉녀가 누군가? 청량산의 자랑인 김생을 서성(書聖)으로 만든 여성이 아니던가? 남존여비의 세상이였지만 시대를 앞선 풍류사상가인 선생의 한 점 오점이라 할 것이다.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현수교는 90m 울 나라서 젤 높단다. 하늘로 날고 싶어하는 몽상가들의 빗나간 생색에 신바람 난 여산님들의 괴성이 하늘로 솟는다. 하늘다리에서 비명이 탄성으로 둔갑하는 건  선학봉의 촛대바위들이 불꽃피우려는 듯 소나무를 붙들고 있는 그림 한 폭이다.

경탄! 그 탄성은 다리 한 중간쯤에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참으로 멋진 산수화 한폭이 펼쳐저서다. 그 그림 한 폭이 하늘다릴 더 회자되게 하고 있음이다. 장인봉(870m)도 여간 까다롭게 굴다가 정상을 내민다. 허나 그 정상은 초라하다. 젤 높다해서 젤 훌륭한 건 아니다.

하늘다리서 조우한 I & L이 산수화 앞에서~ 

눈길을 끌는 건 정상석에 새긴 丈人峯이란 글자가 김생의 글씨여서다. 청량산에 올라야 서성김생의 글체를 접하니얼마나한 기쁨인가! 근디 지하의 김생은 별로 유쾌한 표정은 아닌 그저 허탈하게 웃고있다. 김생은 결코  丈人峯’을 쓴 적이 없어서다. 누군가가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그렇담 봉녀봉(縫女)!이란 산봉우리 이름 없음을 신재선생만 탓할 일은 아니라. 봉화군지자체에서는 縫女峰이름을  헌정하면 지하의 김생은 만면에 너털웃음을 지을 것 같다. 김생의 글씨를 집자해서 말이다. 하늘다리 자란봉쪽에 주름진 하얀치마바위 연봉이 적당할 것 같단 생각을 해 봤다.

주름치마바위에 봉녀봉 이름을 명명해 줌 김생은 춤출지도 모른다

봉녀 없는 서성김생은 생각할 수 없어서다. 장인봉을 밟은 I와 나는 서둘렀다. 역산행을 하고 있는 I의 친구를 아까 선학봉에서 조우해서다. 우린 다리가 불편한 L과 동행하여 하늘다릴 다시 밟고 뒤실고개를 통해 청량사를 답사할 요량에서였다. 근디 생각보다 L은 말짱해보였다.

L은 나와도 낯익은 처지다. 내가 오늘 그녀에게 쬠 미안타고 여긴 건 내가 강추하여 청량산행 시작 전에 2코스로 바뀐 점이다. 수술후유중이 있는 L은 그 탓에 좀 더 힘든 산행을 포기하고 역산행을 시도했을 거다고 I가 귀띔해줘서다. 그래 우린 청량사답사를 동행키로 했다.

청량사를 향하는 하산길은 지겨울 만큼 계단이라 더 조심스러웠지만 거뜬했다. 청량사는 바위벼랑에 세워진 사찰이라 절 마당에서 처다 볼 때 절로 탄성이 나온다. 6.6봉들이 병풍처럼 휘두른 단애 밑에 저윽히 고즈넉하게 자리해서다. 참으로 기막힌 풍정의 파노라마다.

절과 육육봉우리의 조화가 빚은 그림들은 절간 어디에서 감상하던지 간에 탄복할 수밖에 없는 탁월한 조화를 이뤘다. 그 사찰 중에서도 밋밋하지만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1년여를 머문 유리보전을 사랑한다. 아니 거기에 왕과 같이 머문 노국공주를 사모한다.

외침을 피한 몽진이었지만 여기서의 공민왕부부의 1년은 어쩜 젤 행복한 시간 이였는지도 모르기에 더 그렇다. 홍건적이 물러가고 귀경한 공민왕부부는 공주가 산통으로 세상을 뜨자 왕은 실의하였고 고려왕정은 석양길로 접어 몰락한다.

공민왕의 친필이라는 琉璃寶殿을 찬찬히 살폈다. 왕은 명석하여 진정으로 백성들과 공주를 사랑했다. 공민왕이 동성애자였고 낯 뜨건 치정의 최후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가 들어서는 승자의 편협한 기록일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유리보전을 뒤로한다. 6.6봉우리 속을 빠져나온다. 짙푸른 초록 숲은 한참 후에 일주문을 내 놓았다. 신록의 청량산을 오고 싶었다. 푸릇푸릇한 연초록빛깔로 단장한 6.6봉 속의 청량사도 더듬고 싶었다. 청량산이 품은 청량산을 사랑한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생애를, 이야기의 현장을 보고팠다.

그 기회를 산마루산악회가 선사했다. 더구나 코스까지 바꿔가며 청량산품에 푹 빠지게 한 탑마루산악집행부에 다시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김회장 옆에서 엄지손가락 치켜들고 미소 지은 푸잔님이 아른댄다. 내가 젤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산님이다.

여태 한 번도 동행한 적은 없지만~

 “오월은 푸르고나---우리들 세상을 콧노래 흥얼거리며 행복한 하루를 추억창고에 담는다. 낙동강물길이 긴 여정을 떠나면서 함께 코러스한다. 

2017. 05. 27

         _______★★★_______

은진전을 감싼 금탑봉 깎아지른 단애

연화봉

어풍대

김생굴입구

축융봉

 

넘 사랑해 한 번으론 아쉬웠던 꼬아배기 연리목

자소봉

연둣빛치마를 두른 자소봉

자소봉이 품고 있는 奇巖과 奇木

연적봉

탁필봉

 

 먹물 마른 연적봉이라서 탁필봉털이 봉두난발인가?

연화봉, 향로봉 연봉

축융봉이 아스름하다

 

 

 

 

유리보전 편액은 공민왕친필

유리보전 불전과 탱화는 은진전과 천년세월을 버텨 온 청량사의 아이콘 

 

몇 백년을 지킴이 한 소나무도 보호수로 지정 됐다

 

약수정에서 본 자소봉

바위속의 청량수 흐르는 소리가 귀까지 트이게 한다

위 필자의 단체사진5매는 탑마루산님 제공

주홍점선이 오늘 산행궤적(청량폭포-입석-은진전-자소봉-하늘다리-장인봉-하늘다리-뒷실고개-청량사-선학정-청량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