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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몰라 - 천태산에서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몰라 - 천태산에서

천태산행 한지가 채 한 달도 안됐다. 더구나 난 한 번 갔던 산은 코스가 다르면 몰라도 가급적 기피한다. 그렇다고 요사이 비가 많이 내려 천태산골짝물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순전히 밧줄 잡고 바위벼랑 오르는 스릴이 쏠쏠해서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몸 망가지는 줄은 모르고 욕심을 내려한 것이다.

삼단폭포

삼신할멈바위

열 시반쯤 천태산골짝에 들어섰다. 영국사를 향한다. 웅덩이에 고인 물 말곤 골짝은 하얀밑천을 까발려 놓은 게 한 달 전이나 비슷하다. 삼신할멈바위도 갈증에 주름살이 더 늘었나 싶고, 삼단폭포는 늙은 치매할아범이 깔긴다고 깔기는 오줌소태 같다. 그래도 깊은 골짝의 신록은 풋풋하다.

구면이란 데 멍청한 난 가운데 두 여산님을 몰라 뵜다.

-탑벨류님 사진기 속에 담긴 천태산의 필자, 하필 오줌 싸는 폼을 찍다니? -

영국사를 에두른다. 햇빛 없는 솔밭이지만 신선하다. 날씨가 꾸무럭해 바윌 타다 잠깐 숨돌리면서 되돌아보는 전망이 별로일 것 같아 실망이 지피는데, 피톤치드를 짜내주는 소나무인심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더도 덜도 말고 이런 송림속만 더듬어도 좋지 싶다. 

밋밋한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달랑 밧줄 한 가닥 늘어뜨려놓곤 말이 없다. 선택은 니 알아서 하라는 투다. I는 순전히 내 호들갑에 천태산행에 나선 셈이다. 그실 다람쥐가 바위 기어오르듯 할, 험한코스를 금새 올라서서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벼랑을 오르는 지칠 줄을 모르는 깡다귀가 나를 홀딱 반하게 하곤 해 강추했던 바다.

거암 하나를 올라서면 헉헉대는 숨을 고를 대피처가 있다는 건 나 같은 암벽타기 촛자들에겐 오아시스다. 거기 오아시스엔 반드시 소나무가 있다. 놈들은 바위의 애정공세에 붙들려 눈 팔다가 평생을 헤어나오질 못하고 발버등질치느라 훼훼 굽어야 했다. 그래도 소나무는 행복하다. 자기를 끔직히도 사랑하는 바위가 있어서다. 난 그들 연애질 속에서 땀을 씻고 있는 것이다.

 

평생동안 나 만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곁에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행복한 일생일 것이다. 바위는 골수를 짜서 소나무를 건사 사랑하고 대신 소나무는 우주의 소식을  바위에게 알려준다. 그들 지고지순의 사랑은 소나무의 운명과 같이 한다. 척박한 환경속의 사랑이 더 절절하단 걸 난 이 순간만 깨닫곤 곧 잊는다.

     

밧줄 잡고 바윌 오르는 건 극기다. 의지의 실험이고 강인한 정신력 단련일 것이다. 밧줄 잡고 한 발자국씩 내딛는 발돋음은 미지를 향한 신념이며 그 과정은 행선(行禪)이다. 잡된 생각이 사라진 일념의 연속선상이기에 선정(禪定)에 든다고도 할 것 같다. 일상탈출치고 밧줄에 메단 순간만큼 오롯한 시간이 있을까 싶었다.

안개 땜에 시계가 뿌옇다. 접땐 바위에 올라서 전망하는 산능선파도가 나를 미치게끔 헤일쳤는데 오늘은 미칠 수가 없어 아쉽다. 다만 비가 내리지 않은 것 만으로 위안한다. 아까 고속도로휴게소에서 가랑비가 내려 일회용비옷을 샀던 나였다. 산행이던 여행이던 간에 준비는 항상 철저해야 한다. 충청이북지방에 약간의 비가 온다는 예보 탓만을 하기엔 난 어른(?)이다. 영동도, 천태산도 충청도라.

  

수직에 가까운 바윌 오르기 직전의 기분과 올라서서의 기분은 두려움과 환희의 변곡점이 이리도 순식간일까?라고 자문하게 된다. 나의 간사함을, 자만심이 순간 떠오르는 거였다. 그러곤 짜릿한 스릴을 다시 되새김질 하고파 눈을 감아봤다. 암벽등반가들, 극한직업을 가진 분들의 성취감을 어렵풋이 헤아릴 것 같음이다. 쾌재! 이 맛~.

지난 번(5월15)에 여기서 난생 처음 (합계)100m는 훨씬 넘길 긴 밧줄암벽타길 하면서 희열이 만만찮하여 다시 시도하는 바위오르기는 간장은 덜 하지만 다리는 더 묵쩍지근 했다.  흐린 날씨 탓에 땀법벅은 면했다. 대신 I가 신나게 등반하고 있어 지켜보는 나로썬 기분좋았다. 산에 들어서면 신이 난다는 I다. 위험한 산행엔 꼭 동행이 있어야 한다. 내가 I를 좋아하는 소이다.

681고지 삼거리에 닿았다. 산님들이 곳곳에 점심자릴 폈다. 우측길로 천태산정상을 향한다. 산행에서 먹는 재미를 제일로 치는 분들을 적잖이 봐왔다. 난 늘 김밥 아님 간편한 행동식이다. I는 나보다 한 수 위다. 소식(小食)도 정도껏 해야 함인데~?  I의 근력과 지구력은 대단하다. 산에 들어서면 나가기 싫다는 I가 부럽고, 호감이 가는 거다. 그래서 난 I와의 동반을 즐긴다. 그녀가 늘 앞장서서 나를 리더한다고 해야 옳다.

예의 삼지창굴참나무가 마중을 나왔고, 곧 바로 천태산정상석이 바위위서 거만 떤다. 인증샷 하느라 잠시 기다리는 산님들! 살짝 아래로 비켜 바위에 걸터앉아 기갈을 떼웠 다. 글고 일어나는데 왼쪽다리 무릎안쪽이 당기며 통증이 났다. 아까 바윌 타면서 힘을 되게 쏟은 게 핏줄이나 신경에 무리가 가했졌나? 내리막길이라선지 더 하잖하다. 오금 절이단 말이 이 경운가? I를 쳐다봤다.

 

다시 삼거리에서 조망바위쪽으로 직진한다. 소나무숲길은 트레킹코스다. 다리에 무릴 주지 않으려 스틱에 체중을 싣는데도 불편함은 더 심하다. 늙은 걸 실감한다. 보다는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실감 났다. 언제적부터 바위타기 맛을 안다고 촐삭대고 시건방 떨며 무리한 짓 하는가?란 생각이 지폈다. 주작산에서 쥐가 나 고심했었고 그때도 I가 옆에서 지켜봐야 했었다.

시목 뒤로 지나온 천태산이 보인다

이런 경우도 첨이다. 완만한 하산길도 왼쪽다리는 불편하다. 별 꾸꿈스런데를 찾아 눈요기하는 버릇도 꾹 참았다. 충분한 준비운동이나 긴장 없이 무턱대고 바윌 오르느라 왼쪽다리에 힘을 가한 모양이다. 이게 '오금이 절인다'라는 표현인가 보다. 늦게 배운 도둑질 여우짓 하며 적당히 했어야 함인데 내가 무리함이라. 더구나 늙은 몸으로~?  

안개가 걷힌다. 그래도 시계는 뿌옇다. 파도능선은 안개 뒤로 숨었다. 아래 영국사가 초록숲 속에 지붕을 들어내고 꼬부랑길은 뻗처 골짝을 후비고 있다. 꼬부랑길 끝이 누교리일 것이다. 누교란 말은 칡넝쿨로 새끼꼬고 얽어서 만든 출렁다리에서 연원한다. 홍수 탓에 건널 수가 없었던 공민왕을 위해 백성들과 수행원들이 만들었던 기상천외한 다리였다. 공민왕은 그 출렁다릴 건너 영국사에서 3개월 남짓 머물렀다.

신라 원각국사가 창건했을 땐 만월사라 했는데 후에 대각국사가 주지스님으로 주재하며 국청사라 개칭했다. 대각국사는 고려문종의 아들로 천태종의 시조다. 홍건족침입으로 몽진공민왕은 대각국사의 영험을 빌어 홍건족의 난을 수습하길 부처님 전에서 기원하고 싶었던 거였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지성으로 기도 드렸다. 홍건족이 물러간 후에 국청사는 나라()를 평안()하게란 뜻의 영국사라 불렀다.칡넝쿨다리도 누교(縷橋)라 부르고 마을이름을 누교리(縷橋里)라 한다650여년 전의 일이다. 영국사터가 여기서 보니 바위산을 병풍처럼 휘두른 명당요새다. 외부에서 낌새도 모를 레이더권밖일 것 같다.

 

 

병풍처럼 휘두른 산들이 모두 바위산이다. 영국사를 향하는 골짝의 부도밭은 지난 번엔 그냥 지나쳤다. 대각국사 부도와 비각을 찾아들었는데 정작 눈길을 사로잡은 건 소나무연리지다. 두 소나무가 5m쯤의 높이에서 다릴 놨다. 서로 주고받을 것이 그리 많았음인가? 사랑의 다릴까!

가면바위에서

소나무연리지

소나무도 나란히 자라면서 사랑의 에너지를 주받고 싶었을 테다. 공민왕이 칡넝쿨다릴 만드는걸 보고 한 자도 안될 사이에 애정의 가교를 만들기로 했던거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대각국사가 아래서 가슴터지도록 훈수 했을 터다. 아마 소나무는 사랑의 가교를 놓는데 백년은 걸렸음직 하다. 

원각(대각)국사비는 거북받침돌에 정편암 한 장으로 됐는데 6.25때 무수한 총탄을 맞아 판독이 더 어렵게 됐단다. 1180년(명종)에 한문준이 비문을 짓고 세웠다. 국사는 9살에 승려가 되어 55살에 입적한 고려의 왕사다 

영국사 한 편엔 불사가 한창이다. 공민왕이 기도 드린 곳은 대웅전일까, 극락보전일까? 만세루용마루끝에서 올려다보는 천태산이 한 폭의 그림이다. 아래 1300년 된 은행나무는 영국사의 아이콘이다. 이 은행나무와 쌍벽을 이루는 용문사의 놈은 장성걸대처럼 키가 큰 게 숫놈이고, 요놈은 펑퍼짐한 게 암놈일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용마루끝이 가리키는 산이 천태산정상

 1300살의 은행나무

망탑을 향했다. 물길 끊긴 비좁은 골짝웅덩이로 푸른 숲과 하늘이 밀려들고 있다상어바위도 가뭄에 아가리만 벌린 채 하늘을 보고있다. 삼층석탑도 부슬부슬 바스러질 것만 같다. 흔들바윈 갈라진 바위틈에 처박혀 개명해야 할 판이다. 가뭄은 모든 걸 힘들 게 한다. 여길 오면서 1회용 비옷도 샀는데~?

삼층석탑

상어바위

바위가 짜낸 눈물로 시늉 내고 있는 진주폭포

폭포도 오금이 절일 것이다. 바위가 저렇게 눈물 짤 정도면 하늘 원망케나 하고 있을 테다. 내 왼쪽다리 오금 절이는 것은 순전히 늦게 배운 도둑질 맛에 과욕부린 탓이다. 난 누굴 원망할 핑계거리도 없다. 안병진 모인산악회장한테 물파스세례를 받았다. 산님은 늘 상비약도 준비해야 한다.

망탑에서 천태산주차장이 보인다

안회장을 비롯한 몇 분은 용케도 나를 단 번에 알아봤다. 3년 전(2015.4.13) 위도행에서 인살 나눴을 뿐인데~. 넘 살갑게 해주셔 민망했다. 귀로 버스 속, 모인재무님이 집에서 직접 시루에 기른 콩나물 한 봉지를 샀다. 봉사활동 바자회수익을 도모함인데 3년 전 그날도 동사무소2층 뒤풀이장서 한 봉질 산 추억이 풋풋한 즐거움으로 떠오르는 거였다.

까맣게 잊은 콩나물봉지가 새록새록 기억을 일깨워 콩나물 요리맛보다 추억 꺼내 씹는 맛이 더 좋은 거 같다. 한결 같은 모인산님들 마음이 콩나물봉지에 담겨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만 빼고 산님들은 참 푸지고 후하다. 글고 친절하고-. 배푸는 것이나, 늦게 배워 날 샐 것이 뻔한데 욕심까지 많은 내가 언제 철 들랑가~?                2017. 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