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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암벽타기 스릴의 쾌재 - 천태산(天台山)

암벽타기 스릴의 쾌재 - 천태산(天台山)

아직 어스름이 어영부영 배회하는 5월의 이른 아침을 담아오는 차창의 풍정은 나들이의 설렘을 한껏 부채질 한다. 새벽안개 속의 연푸름 속에 눈꽃을 뒤집어쓰고 다가서는 이팝나무퍼레이드는 계절의 여왕이 선사하는 판타지다.

온 산야를 놈들이 점령해 5월을 설화(雪花)세상으로 펼친다면 정녕 5월은 눈꽃면사포를 두른 여왕일 테다. 어제 늦게 미친년 오줌 저리듯 뿌린 봄비 탓인지 미세먼지도 사라진 대기는 청량 신선하다. 비 온 후 갠 날의 해밀을 차용한 해밀산악회에 끼어 천태산을 향하고 있는 나는 달떠 있다.

충북영동 영국사 나들목골짝이 신록으로 풋풋하다. 청량감으로 전신맛사질 한다. 천삼백 살의 은행나무가 연초록비단을 휘감아 늘어뜨리고 마중을 나왔다. 천삼백 년을 단장한 나무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나들이는 충분히 행복하다.

거기다 훼훼 굽은 적송무리들이 퍼레이드까지 펼친 채 짐짓 살맛나게 한다.허나 그건 하늘로 치닫기 위한 천태산의 달디 단 당의정이었단 걸 곧 깨닫게 된다. 가늠할 수 없을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달랑 밧줄 하나 늘어뜨리고 어쩔래? 하고 있다. 무뚝뚝하기 바위 같은 놈이다.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바위마실은 적막이 감돈다. 물을 데도 없다. 길은 하나, 간당간당한 밧줄에 목숨 걸고 바윌 오르는 수밖엔 없다. 그야말로 발돋음 앙탈할 밖에~. 두 팔과 양 다리가 왜 내게 있는지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바위하나를 오른다. 헬 수 없을 고된 시간을 세월로 삭혀 온 굽은 소나무가 나를 붙잡아 준다.

앞 숲속이 영국사, 멀리 산 아래가 누교리 

여기 험한 세상의 유일한 동지는 소나무다. 놈한테 몸을 가누고 뒤를 돌아보면 기막힌 묵화가 펼쳐진다. 산 준령들은 안개바다 속에 파도를 치며 해일처럼 밀려온다. 천태산이 선물하는 달디 단 또 다른 당의정이다. 나는 그 당의정을 맛보기 위해 바위와의 씨름을, 밧줄과의 사투를 계속해야만 했다.

천태산바위는 부드럽다. 난 놈처럼 펑퍼짐하게 앉았다

어느 중년 커플이 내 뒤에서 실랑이다. 남자는 등벽을 포기할 요량이다. 여자가 앞으로 나선다. 먼저 오른 내가 소나무에 기대서서 훈수를 한다. 아니 조교질(?)을 했다. 밧줄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양발은 단단히 바윌 딛고 양 팔에 온힘을 쏟아 힘껏 잡아당기라고.

엉덩이는 당겨 몸을 일으켜 세운 채 뒤는 돌아보지 말라고. 나도 암벽타기 촛자다.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다. 그냥 경험 노하우(?)라면 될랑가? 그걸 모르는 사람한테 아는 챌 하긴 죽 먹기다. 여자는 그렇게 나의 씨부렁소릴 들으며 바위 한 놈을 점령하곤 활개를 폈다. 저 밑에서 뭉그적대는 남자 차례다. 아내 따라 올라오지 않을 수가 없다.

안 따라 올라오면 아내와는 결별(?)이다. 천태산 와서 아내와 헤어져 돌아서는 못난 사내라면 불알 일찍 때는 게 낫다. 그가 죽기 살기 용을 쓴다. 드뎌 그도 아내 응덩이에 코를 파묻혔다. 부창부수라. 그 짓을 세 번 치룬 부부는 내 뒤를 곧장 따르며 폐 속의 노패물들을 깡그리 쏟아 뱉는 거였다. 여자는 이젠 손을 흔들며 등반하고 있다.

세상에서 젤 어려운 것은 남의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을 훔쳐오는 짓이다. 성한 몸뚱이로는 어떤 일이든간에 성취감을 맛볼 수가 있다. 천태산은 그 스릴 후에 맛보는 쾌재를 십여차례 선사한다. 70~80º각의 암벽을 75m나 등반해야 하고 하산때도 그 사투를 외면할 수가 없어서다.

대여섯 번의 성취감보다 더 맛깔 난 건 파도처럼 너울대는 준령의 풍광에 몰입케 함인데 그건 덤이다. 능선파도자락 저 아래 산골 나들목 누교리도 아스름하다. 그 누교리을 꼬리처럼 거느린 영국사가 발아래다. 지세가 여간 푸근해 보인다. 명당은 저런데를 일컨능가?

136111월이었다. 홍건족이 다시 침입하자 공민왕은 노국공주를 데리고 개경을 빠져나와 몽진에 들어 누교리마을에 닿았다. 때마침 홍수로 골짝을 건너지 못한 왕 일행은 마을에 머물러야 했다. 뒤좇아오는 홍건족의 만행으로 초토화되는 백성들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 5경쯤 왕은 은은한 종소릴 듣는다. 

근방에 절이 있단 소릴 들었는데 종소리가 참 은은하여 좋구나.듣고 있던 신하가 아뢴다.신라 때 원각국사가 처음 세웠을 땐 만월사라 하였는데 후에 대각국사가 주지스님으로 주재하며 국청사라 개칭했다고 합니다.”공민왕이 내심 놀란다. "정녕 대각국사가 틀림 없으렸다"

대각국사(의천)는 고려문종의 아들로 천태종의 시조였기에 국사의 영기를 받아 국태민안을 기도해 보고팠다. 왕의 뜻을 눈치 챈 신하들이 백성들과 칡넝쿨로 새끼를 꼬아 엮어서 구름다릴 만들었다. 왕은 칡넝쿨구름다릴 밟고 건너가  국청사에서 밤낮으로 사흘간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하여 나중에 국청사는 나라()를 평안()하게란 뜻의 영국사라 불렀다. 글고 그 칡넝쿨다리는 누교(縷橋) 마을이름은 누교리(縷橋里)라 함이다나도 아까 그 누교를 통해 들어왔을 테다. 공민왕의 심난했던 몽진풍정을 상상해 봤다. 공민왕은 현군 이였다. 650여년 전의 정황을 그려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원나라에 인질로 있을 때 강혼한 노국공주를 끔찍이도 사랑했고 공주 또한 열애했다. 찰떡궁합 이였던 공민왕부부는 석 달포 동안 영국사를 비롯한 이 근방에서 피난생활을 했다. 왕과 공주의 기도 덕 이였던지 홍건적은 물러갔다. 더구나 공주는 결혼14년 만에 그토록 염원하던 수태까지 했다.

근데 산고(産苦)로 공주가 운명한다. 왕은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실의에 빠지고 고려도 석양빛이 들었던 거다. 안개바다의 파노능선 속에 공민왕부부의 애뜻한 러브스토리와 우국충정이 너울대고 있는 성 싶다. 나는 노국공주를 더 사모한다. 공주는 왕과 고려를 끔직히 사랑했었다. 

천태산은 참으로 멋지다. 천태산바위는 공민왕부부의 간절함 탓인지 뾰족뾰쪽 모난놈이 없다. 다 두루뭉술 반들반들 하다. 아름다운 공주품인 듯 게서 놀고프다. 그 바위한테도 애인은 있다. 멋진 소나무다. 그 그늘에서 마냥 쉬고싶은 나다. 오늘은 시간도 충분하다.

천태산정상을 밟고 584고지까지는 완만한 소나무능선길이고, 파란하늘엔 구름 한 떼가 바람을 일으켜 5월여왕의 숨길을 체감케 한다. 등산하기 이처럼 좋은 날씨도 복이다. 백두대간이 플어헤친 능선파도는 하염없이 하늘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눈 시리도록 감상한다.

여왕개미등바위

D코스를 밟는 하산길도 아기자기한 바위마실은 감칠 맛을 안겨준다. 영국사경내를 훑고 연초록가사 걸친 은행나무가슴팍을 훔처봤다. 천삼백년을 품은 가슴팍은 가늠이 안됐다. 용문사 놈보다 키는 작은데 더 우람하고 융숭하나 싶다. 천삼백년을 살아온 놈과 맞짱을 선 자체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망탑,상어바위,삼층탑을 더듬는 하산길은 깊은골짝으로 이어졌다. 짙푸르름이 물길대신 골을 덮쳤다. 물길이 살았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그래도 웅덩이에서 족욕하는 산님들은 웃음꽃을 피운다. 진주폭포가 정말 진주알 하나씩 떨어뜨리고 있다. 그 진주알이 녹아 든 물 속에 파란하늘이 내려 비취색이 됐다.

상어대가리에 올라탄 겁 없는 여산님

해밀산악회는 젊다. 하여나(박천용.박식하고 젊은 그를 오늘 인사 나눴다)님이 나이 든 축에 끼나보여서다. 해밀은 젊어서 좋았다. 해밀,'비 갠 뒤 하늘'이라서 첨인데도 좋았을까! 영동의 설악이라는 천태산이 설악도 배풀지 않는 암벽타기 스릴을 만끽케 함도 '해밀산악회'가 준 선물 이어설거다.  2017.05.14 

   

가면마스크 바위, 오페라의 유령 펜이란 여산님

영국사대웅전, 만세루, 삼층석탑

1300살의 은행나무

 

삼신할매바위

삼단폭포

 

 

신랑은 엉거주춤이라 난 '아주머니 힘 내세요'라고 훈수하고-

남편 앞서 시범(?) 보이는 아주머니께 '밧줄을 가랑이 사이로 끼우시고~'라고 주문하고-

2회전 사투하고 심각한 갈등에 싸인-?  한숨 돌리고 다시 도전했다

주제파악 못한 필자는 조교나 된듯 악쓰고- 

동아줄 잡기 전에 심호흡을~

아주머니의 세 번째 도전~!

어쩐디야, 또 갈등? 신랑은 밑에서 망부석으로 남을까 고민하고?

드뎌  갈등 커플 암벽중간에서 해후 회포를 풀고~! 

 

 

 

 

되돌아 본 천태산

 

상어비위

진주폭포 상단

하늘을 담은 진주폭포 비취웅덩이

상기 사진 중의 필자사진은 고상준님 제공

 

대각국사가 먹다 남은 햄버거

붉은 점이 오늘의 산행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