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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동짓달의 폭설을 좇아

동짓달의 폭설을 좇아

음력으로 치면 동짓달이 마지막 턱걸이를 하는 찰나에 나는 서울 집을 향하는 귀가 길에 올랐다. 년말모임도 두 군데 있지만 군산요양병원에서 가료중인 누님 문병을 다녀와야 하고, 내친김에 고향(영광)의 선친산소 성묘도 다녀올 참이다. 내가 어쩌다 부산서 장기간 머물다보니 누님문병과 선친 성묘에 등한이 함이 커다란 불효의 멍에로 마음의 짐이 돼 버렸다. 서울서 1주 여일 머물 동안 누님과 선친을 찾아뵙는 여정으로 조금이라도 멍에의 굴레를 벗기를 기대해본다.

봉원사
가을과 겨울사이의 만추를 챙기는 여인

그리고 겨울옷을 챙겨 다시 부산원정길에 들참이다. 모처럼 서울 집엘 간다니까 하느님은 뜬금없이 서울과 수도권에 축설(祝雪)이 아닌 폭설을 퍼부었단다. 그래도 속 알머리 없는 나는 서울설경이 자못 기대되는 상경 길이었다. 동지그믐날 서울역사를 빠져나온 나는 다소 실망했다. 음지에 쌓인 눈이 있긴 했지만 감탄할 풍경은 어디에도 없어서였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화단의 불침번처럼 우두커니 서있던 키 큰 나무들이 폭설을 뒤집어 쓴 채 처연한 꼴로 나를 맞고 있어 그나마 설경을 탐닉할 수 있었다.

안산자락길 황토길은 비닐하우스로 피신했다

내가 귀가한 오후 1시경의 울`집은 김장이 거의 마무리 중이었다. 유니와 애니가 호들갑을 떨며 환영한다. 매년 김장때마다 와서 돕겠다고 장담만 코 깨지게 하던 애들이 내가 없으니 모처럼 효도(?)를 한 셈이다. 수육에 점심을 곁들이면서 나는 애들에게 고맙단 말을 에둘러댔다. ‘내가 없으니 니네들이 엄마에게 효도할 기회가 생겼구나.’ 라고. 김장김치에 삶은 돼지고기 쌈은 음식궁합이 좋고 거기다가 막걸리 한 잔은 찰떡궁합이라나! 뻔할 뻔자 울`집의 김장 피날레는 술판으로 비약됐다.

마지막 만추를 사냥나선 계절 낭만이스트들!

한 병에 1만원짜리(도수가 세다) 막걸리 한잔에 나는 얼큰해졌다. 궁합 좋다는 막거리도 딱 한 병 거기까지였다. 와인 잔이 부딪쳤다. 예의 본격적으로 판을 벌린 울`집의 와인파티는 늦은 밤까지 지속됐다. 식구들이란 뭔가? 한상에서 같이 밥 먹는 피붙이들이다. 밥 먹는 시간은 일상 중에 젤 행복한 식구들의 잔치다. 그 밥 먹는 잔치의 시간으로 식구들의 유대감과 애정은 돈독해 짐이다. 울`집은 유난히 식구란 텃세가 센 셈이다. 훈이나 민이나 다 정골품이 아닌 겉 다리(?) 사위들이라고,

겨울을 호흡하며 살찌우는 꽃무릇의 싱싱한 이파리!

그래 언행에 쫌은 조심스럽다고 너스레떨면서 포용하는 세 딸과 마지못한 척하는 아내다. 실은 늘 웃으며 포용하는 쪽은 훈이나 민이다. 극성스런 강씨 세 자매들한테 창시 다 까발린 그들이다. 다 까발리고 보듬어야 부부고 식구라는 이름으로 행복을 꿈꿔가는 인륜이란 걸 그들도 지네 엄마아빠로부터 인습함이라. 난 다음날- 동짓달 그믐날 동창모임에 참석했다. 상상외로 참석자가 적어 서운했다. 전적으로 내 탓인가? 싶어 맘이 쫌 씁쓸했다. 동짓달 그믐이어서 모두 바쁜 일정 땜이라고 변명(?)은 해댔지만 말이다.

오늘 서울의 날씬 좀 풀렸나? 베드민트동호인들이 신바람 났다
낙엽 뒤덮인 정자지붕-보온은 제대로 된 셈이다

향도책임이 있는 내가 반년이상 할 일을 뭉갰으니 자괴심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근데 더 문제는 앞으로 얼마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직무해이(職務解弛)(?)는 지속될 거란 점이다. 동창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양해는 한다지만---. 쇠 갈빗살로 오찬을 만끽하고 오후3시를 넘겨 귀가한 나는 불나게 안산숲길 하이킹에 나섰다. 설경이 조금이라도 유지되고 있을 때 뛰어들어야 했다. 서울의 폭설은 눈 폭탄이었던가 보다. 수많은 초목들이 압사당하고, 덩치 우람한 나무들이 꺼꾸러지거니 사지를 찢겨내고 있었다.

▲본격 겨울채비에 든 메타세콰이아 숲▼

110여년 만에 내렸다는 폭설, 더구나 11월의 변고는 다름 아닌 지구온난화 탓이라고 진단한다. 누구의 탓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분별한 이기심의 후유증이라. 어쩌든지 나는 폭설 탓에 남아있는 잔설의 설경을 탐닉 하느라 숲길을 헤치고 있었다. 아내 말따나 언제 속 차릴는지? 등산로 눈길은 얼었다 녹았다 하다 꽁꽁 얼어붙어 여간 조심해야 했다. 아내의 눈 밖에 나면 춥고 배고픈 놈은 나다. 식구란 행복의 카테고리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석양노을빛에 눈 맞춤하면서 안산설경을 빠져나왔다. 부산에 내려가면 금년겨울 설경을 어쩜 못 볼 확률일 터여서 안산설경은 더더욱 그랬다.         2024. 11. 30

▲단풍도 이젠 최후의 정착지를 찾아 들어 앙상한 나목들이 을씨년스럽다▼
도룡뇽서식지, 아직 놈들의 기척은 오리무중이다
▲낙엽쌓인 산책길을 소요하는 정취는 힐링타임의 절정이다▼
약수터의 조롱박걸이, 조롱박의 행방불명이 궁금하다
▲낙엽 수북이 쌓인 단풍길 소요를 놓친 산님들은 빨리 안산초록숲길로 오시라▼
쉼터의 체력단련장도 스산하기만 하고~
봉원사 프라스틱화분은 꽃 대신 낙엽을 띄웠다
▲봉원사 느티나무가 단풍나무 덕에 화사하게 성장을 했다▼
▲봉원사 풍경▼
안산자락길 황토길은 비닐하우속으로 피신했다
만추와 겨울의 어설픈 동거
불 붙은 단풍화기에도 끄덕없는 까치둥지
농익은 산수유가 아깝다
▲안산자락길에서 맞은 석양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