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은 임숙영(任叔英)을 찾아라
망망대해와 해운대백사장에 내려앉다 미끄러진 가을햇살이 창문으로 밀려드는 오전 내내, 나는 햇빛을 등받이 삼아 노트북을 더듬느라 끼니를 걸렀다. 요즘은 뉴스보기가 역겹다. 매스컴은 상대방 험담으로 편 가르느라 개 거품 뿜어대는 정객들 차지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해서 이젠 철면피얼굴이 기이하지도 않다. 얼굴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 어쩌든지 줄만 잘 서면 출세한다는 걸 숙지한 탓이다. 대통령이 솔선수범으로 거짓말하기에 앞장섰으니 졸개들이야 용비어천가만 읊조리면 된다. 그렇게 해서 핵관시리즈도 생겼다. 그들을 힐난해봤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치부해버린다.
나는 첨엔 걱정과 번민으로 우울증 걸릴까봐 관심 끊으려 했는데 부질없는 기우(杞憂)였다. 내 걱정이란 건 그들이 지 자식들 앞에서 낯짝을 들고 가장행세를 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자식들이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집안망신 시킨 거짓말쟁이 애비 아닌가 말이다. 안타까운 판이다. 하긴 누군가처럼 자식 없는 사람은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테니 맘 놓고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곳 사무실 직원들도 거짓말 달인이 되어 그럴듯하게 둘러대어 자리보전을 하는가 싶다. 때론 오야봉 심기 거슬려 대노하면 가짜뉴스 만들고 때론 입씹까지 해야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오호 통제라! 모밀국수가락으로 늦은 끼니를 때우고 반시간 거리도 안 되는 ‘해운정사’뒷산을 올랐다. 간비오산자락 군부대철조망 밖의 야산은 공인된 출입구가 없어 암암리에 몇 사람만 알고 산책하는 후미진 숲길이 있다. 인적이 뜸한 이 숲길엔 H중학교의 철조망울타리와 마주치고, 그곳에 조그만 야외광장과 무대가 있는 소공원이 있다. H중은 철조망 문을 통해 야외무대와 소공원을 사용하나 싶은데 근래엔 별로 사용하지 안했는지 상태가 부실하여 음산하다. 더구나 초목이 원시 숲처럼 우거져 있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포도시 숲길의 명맥을 유지하는 건 해운정사 스님들과 아랫마을 주민 몇 분의 산책땜일 테다.
나는 2년 전에 해운정사를 답사하다 철조망개구멍을 통해 이 숲길을 인지하고 가뭄에 콩 나듯 찾는데 고요가 넘 좋다. 고라니도 몇 마리 보였는데 그 후 두 번 다시 못 봤다. 오늘 나는 야외광장무대에서 만추(晩秋)에 빠져들다가 아까 웹상에서 접한 인천대 김철홍교수의 정년퇴임을 앞둔 시국선언이 문득 생각났다. 김철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정년퇴임에 수여되는 대통령훈장을 “(훈장을) 대한민국의 명의로 받고 싶지,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고 비판하며 거부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최고의 영예로 여길 대통령훈장을, 아니 대통령자격 없는 윤석열이 주니까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비단 김철홍 교수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교수, 연구자들 6000여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다고 어제 뉴스에 나왔다. 11월23일 성균관대학 교수와 범성균인들의 시국선언문은 정곡을 찌르는 호소문이었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극단적 혐오와 분열이다. 윤석열 정권은 세대, 지역,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다원성을 파괴하며,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혐오로 시작된 정치는 더 큰 혐오를 낳을 뿐이다. 이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의 '인지부조화'와 가족 이기주의에 있다. 민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연세대 교수 177명은 ‘당신은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윤석열 정권이 임기 절반의 기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무능력·무책임·무도한 권력의 민낯이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저지른 불의와 실정에 대해 사죄하고 하루빨리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우리나라국민 80%이상이 윤석열정부 실정을 규탄하는데 국민의 힘과 고위관료들은 동문서답으로 보신하기만 급급하다. 문득 420여 년 전에 광해군의 실정을 비판한 대책(對策)문을 써 광해를 대노케 했던 임숙영(任叔英)선비 생각이 났다.
1611년(광해3년) 임숙영은 별시문과에 응시하여 왕비 유씨와 외척 유희분(柳希奮)일파의 횡포, 간신 이이첨(李爾瞻)의 국정전횡을 공박하면서 '모든 잘못은 임금한테 있다'고 시제(試題)와는 좀 엉뚱한 답안지를 써 냈었다. 시관 심희수(沈喜壽)가 문제의 답안지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병과로 급제시켰는데 뿔따구가 난 광해가 뒤늦게 삭과(削科)하라 명했다. 임숙영의 대책문이 옳고 문장이 뛰어난지라 삼사(三司)의 간쟁과 이항복(李恒福)과 이덕형(李德馨)의 주장으로 다시 급제되었다. 광해는 마침내 “지금부터 임숙영처럼 과거 규식대로 글을 짓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 뽑지 말라.”고 명한다. 포용과 지혜의 정치를 편 현군 - 광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간신 이이첨 부류만을 기용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다. 맹자는 ‘천지신명’의 뜻을 받아 굳건한 성채를 세운다 해도, 그 안에서 민이 화합하지 않으면 무너지고 만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했다. 아무리 하늘의 뜻이 높다해도 민중의 마음을 얻어야 된다고 설파했던 것이다. 윤석열은 하루빨리 물러나는 게 애국의 길이다. 임숙영이 별시 문과에 쓴 대책문 중의 한 구절을 옮겨봤다.
‘今殿下旣有法天之責, 亦有法天之德, 然容忍乎閨房, 而天之以威克厥愛之道與殿下者.’
‘전하께서는 이미 하늘을 본받아야 하는 책무를 가지셨고, 또한 하늘을 본받아야 하는 덕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규방을 용인하심으로써 하늘이 전하에게 부여한 위엄과 사랑의 도가 이에 이르러 폐하였습니다.’ 왕(광해)이 부인과 처족들의 불법을 용인하여 나라의 법과 상식이 무너졌다고 수험생 임숙영은 시제와는 엉뚱한 답을 써냈던 것이다. 지난 번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R&D(연구개발) 예산삭감을 성토하는 졸업생을 입틀막해서 강제로 끌어낸 윤석열 대통령은 광해의 꼴마리를 붙잡고 매달리면서 치세의 정치를 배워야 한다. 여기 H중학교 야외무대는 그런 공론의 장일 것이다. 중학생들이 두렵지 않으랴!
학생들이 갈고 닦은 생각과 장기들을 스스럼없이 펼쳐 보이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소통의 장으로써 수풀속의 야외무대는 H중의 자랑일 텐데 어째선지 폐허화되고 있다. 원시림 같은 숲 골짝에 가을은 어김없이 내려와 파스텔톤 단장을 하고 있다. 야외광장 주인공들의 발길이 뜸해도 자연은 순환의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키 큰 야자수들이 파란하늘을 떠받치는 열주마냥 늠름하다. 까마귀 두 쌍이 오두방정을 떤다. 두어 시간동안 눈 맞춤이라도 한 동물은 오직 까마귀뿐이다. 눈 내린 겨울엔 궁금한 고라니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눈 내린 날 오고 싶은데 올수 있을지 모르겠다.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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