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낌~ 그 여적

선바위 쉼터에 철없는 왕이!

선바위 쉼터에 철없는 왕이!

선바위 쉼터에서 조망한 해운대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 이기대, 영도, 다대포

선바위 앞 방석바위는 쉼터로 명당이란 걸 알만한 산님들만의 브이아이피석이다. 장산 9부 능선 골짝 숲속에서 해운대와 광안대교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하는 남향받이 배산임해자리다. 내가 지난번에 숲속의 뾰쪽 바위를 보고 찾아들었다 어느 산님이 혼자 점심자릴 펴고 있어 물러난 선바위쉼터다. 오늘 금년 들어 젤 추운 찬바람인데 아늑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부산의 가을단풍이 장산정상에서 하강하나 싶게 울긋불긋 번지고 있다. 기갈을 해소하려고 배낭을 풀었다. 어쩌다 가랑잎 흔들리는 가을소리만 들린다.

바다가 일구는 금빛윤슬에 타임머신여행길 올라 철종을 그려봤다

참나무군락 갈색이파리들의 몸부림이다. 금년이 달포쯤 남았다. 세월 참 무지하게 빠르다. 그래 세상은 더더욱 예측불허인가? 오늘밤엔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다. 내일은 윤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단다. 서민들이 평안하게 세상살이에 전념할 수 있는 참신한 국정발표를 했으면 좋겠다. 바다가 느닷없이 금빛윤슬을 일으켜 수평선으로 번진다. 구름사이를 비집은 햇빛 프리즘 현상일 테다. 뜬금없는 상상의 날갯짓이 강화도까지 뻗쳐 본적도 없는 180여 년 전의 10대 농촌총각 이원범이 떠올랐다.

▲선바위▼

14살(1844년)의 그는 위리안치 된 아버지 따라 아웃사이더 왕족으로 강화도에서 어영부영 유배생활을 5년째 하던 어느 날(1849년), 관가의 호위병들에 납치(?)되다시피 하여 왕위에 오르니 철종(哲宗)이다. 이원범 총각은 청천하늘에 날벼락 맞는 줄 알았을 것이다. 생경한 궁궐생활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을 테고, 어처구니없는 임금노릇은 그리운 양순이 생각으로 시간 때우기를 하고 있었지 싶다. 결혼약속까지 한 첫사랑 양순이를 보지도 못하고 생이별이라니? 왕이란 보위에 오른 그가 양순이를 곧장 궁궐에 불러들일 수도 있을 텐데 무지(?)한 원범이는 언감생심이었다.

천민출신인 양순이를 불러 궁녀로 삼은 후 승은(동침)을 내리면 됐지만 포도시 천자문만 읽은, 왕권이 뭔지도 모르는 허수아비 철종에겐 불가능했었다.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도 무수리 천민 궁녀 출신이 아니었던가. 암튼 조정일은 재미도 없고, 오직 양순이에 대한 상사병(?)으로 괴로워하는 철종이 그녀를 탐문했을 땐 양순은 이미 병사한 후였다. 실의한 철종은 이때부터 방탕해졌다.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양순이가 보고 싶다’며 궁궐을 나가려다가 병사들이 가로막자 담을 넘으려던 철종이 생각난다.

▲선비위 조망권의 해운대와 수영만 & 광안대교▼

월담하려는 철종을 내관들은 지존인 왕의 몸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서 그저 말로만 ‘아니 되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양순이의 죽음은 철종이 삶의 의욕을 잃고 방탕에 빠져든다. 철종은 병들어 죽기직전에 안동 김씨에게 비웃듯이 ‘과인이 죽으면 참 당황하겠지?’라고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듯 말한다. 그런 철종은 모주(막걸리)를 너무 그리워해서 왕비인 철인왕후 김씨가 친정에 부탁해 막걸리를 진상했다는 야사가 있다. 어느 날엔 파주에 사는 염종수가 족보를 위조하여 철종의 외숙부가 된다고 거짓 상소를 올렸다.

친척 하나 없어 항상 외로움을 느끼던 철종은 염종수 부자를 대궐로 불러들여 잘 대접하고 벼슬도 주었다. 가짜외숙 염종수가 한참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진짜 외숙부인 염보길(廉輔吉)이 그 사실을 소명하여 염종수는 기군망상죄로 처형되고 그의 아들은 노비로 전락했다. ‘어리버리한 듣보잡 방계 왕족’이 느닷없이 왕이 된 철종은 능력과 제반조건이 너무 부족해서 실의에 빠지고 정치에 뜻을 잃게 된다. 정치란 무릇 백성들을 통치하는 종합예술이다. 권력이란 오직 백성을 위해 사용해야 할 절제된 행위다.

▲상어이빨바위▼
쌍둥이 바위

문득 '철없고 바보 같은 오빠'란 회자(膾炙) 말이 생각난다. 윤석열도 범죄혐의자 색출에 20여년 살아온 범죄자감별 담당자였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야당(국힘)의 정치꾼들에게 이끌려 옹립된 대통령 - 청천하늘에 날벼락 맞듯 엉겁결에 권자에 오른 사람이다. 생판 정치판에 문외한 이었던, 이심전심할 정치꾼이 없던 그에게 나이 50줄에 가정을 안겨준 아내의 조언과 어드바이스는 지존의 계시(?)로 여겼지 싶다. ‘철없고 바보 같은 사람’을 대통령에 오르게 한 아내를 마땅잖다고 매정하게 내칠 수 없었으리라. 그의 출세의 화두인 '공정과 상식'도 아내한텐 구멍 난 신발이었지 싶다.

장석바위

철종에게 가짜외숙 염종수가 나타나 꼼수정치를 부추겼듯이 김건희 앞에 천공이나 명태균이 빌붙어 국정에 간섭한다. 철종이 양순이를 사랑함이나 윤석열이 김건희를 사랑함은 자못 옷깃 여미게 한다. 다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잘못을 매정하게 내칠 땐 주저하지 않아야 하고, 누군가가 진심으로 충고하면 포용하여 대안을 찾을 때 그 사랑은 혁신이란 유의미한 내일을 담보한다. 나랏일은 가정사가 아니다. 천자문만 뗀 10대의 철종과 최고학부 졸업에 검사생활 20여년 한 50대의 윤석열과는 비교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통천 삼각문▼
▲삼각문 앞의 덕석바위▼

그리하여 윤대통령의 내일 있을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 희망이 있다는 게다. 정치는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종합예술이라 했다. 비우호적이고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마음을 열고 삼고초려하면 정치예술은 꽃 피울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정치환경이 튼실한 대한민국 아닌가! 내일부턴 ‘철없고 바보 같은 오빠’소리 묻혀버리기 염원한다. 아침엔 쌀쌀했는데 선바위 쉼터에서 따뜻한 가을햇살에 일상을 내려놓으니 그지없이 평안하다. 누런 떡갈나무 이파리가 가지에서 떨어져 여행을 떠난다. 여행 끝이 부엽토란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의 여행 끝은 어딜까? 그걸 알면 겸손해 질것이다.     

배낭을 챙겨 선바위 쉼터 방석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포즈를 달리하는 매력 있는 바위다. 게다가 좀만 떨어져 뒤돌아보면 떡갈나무 단풍잎을 악세서리로 치장하고 있어 멋진 사생화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시시각각 거길 찾는 이에게만 감동을 준다. 엊그제까지 성불사와 정상을 잇는 등산길에, 아니 살짝 비켜선 숲속에 기암괴석의 바위동내가 숨어있는 줄을 몰랐다. 바위동네에선 한껏 상상의 날갯짓을 펴며 희열의 시간에 들 수가 있다. 산이 주는 기쁨이다.

나는 그 희열 맛보기에 반해서 산행을 한다. 기막힌 풍광에 매료되어 잠시 동안 나를 내려놓는 가벼움을 앙팡지게 간직하려고 홀로산행을 고집한다. 바위가 마련해준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펼쳐지는 온 누리와 온갖 소리까지 다 품을 수 있는 열락은 그때 그 시간뿐이다. 내일은 또 다른 일깨움으로 자연은 나를 맞는다. 자연은 항상 새로운 분위기로 나를 맞는다. 그래 나는 그 시간 그곳의 브이아이피(VIP)가 된다. 아무 조건 없이 반겨주는 산은 내 삶의 여정이다. 사진으로 담아온 아까의 공감대를 지금 아끼고 있음이라.                     2024. 11. 06

▲장군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