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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꼰대들의 소풍 - 늦바람날라? (기백산`용추계곡)

꼰대들의 소풍 - 늦바람날라? (기백산`용추계곡)

<善化公主主隱 / 他密只嫁良置古 / 薯童房之 / 夜矣卵乙抱遺去如

선화공주님은/ 남몰래얼려두고/ 맛둥서방님을/ 밤에몰래품으러가네 >

-삼국유사 ‘서동요’에서-

 

서동이 누구던가? 한물 간 백제의 왕족 이였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다. 이웃

신라 선화공주의 미색이 출중하단 소문에 삼태기에 마(麻) 몇 뿌리를 넣어

짊어지고 작업을 시도했는데 공주는 홀딱 넘어가 보따리를 쌌다. 후에 백

제무왕커플이 된 그 후예 - 산꾼들이 오늘 기백산`용추계곡으로 소풍을 간

다하여 따라나섰다.

 

오전 9시 반, 용추사 일주문 앞에서 놀 자리를 물색할 때 난 슬그머니 꼬리

를 뺐다. 꼰대 중에도 상꼰대인 내가 팔팔한 꼰대들 틈에서 눈총 맞을 바엔

기백산이나 더듬다 오후에 끼어들잔 속셈 이였다. 일주문 뒤편에서 나 혼

자 우측으로 난 수풀 속 등산로를 파고들었다.

 

 7년여를 내공들인 매미가 청아한 목소리로 한 곡을 뽑자 너도나도 열창을

해대니 청고(淸高)한 코러스는 숲을 일깨우는 거였다. 거기에 산새도 목청

을 뽑아 들었다. 반시간도 채 안 걸렸을 테다. 물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그 물의 울음은 골이 가까이오자 합창으로 풀벌레의 노래를 압도하여 장중

하게 골짜기를 흔들어댔다. 대자연의 교향악이 쩡쩡 흐르는 거였다.

흰나비와 호랑나비가 춤사위를 벌리고 녹색활엽수 톱날에 잘린 햇살도 숲

바닥에서 실루엣을 보듬고 더덩실 춤춘다. 벌 한 마리가 윙윙대며 ‘왕벌의

파반느’를 연출한다.

 

물의 노래가 아득해지면 이윽고 벌레들의 울음이 간들어진다. 상큼한 숲의

나라에서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빠지다보니 빡센 오름길도 잊게 된

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취했나!

잣나무 쭉쭉 뻗은 상록수림에 들자 바람의 합창이 시작됐다. 침엽에 찔린

푸른 하늘이 아팠던지 몸서릴 치고 그 파장은 파도로 숲에 이르자 바람의

노래를 불러댄다.

 

 

소슬바람의 시원함에 폭염에 찌든 애간장은 사르르 무너진다. 아~! 누가

골드문트가 소리의 명기라고 수억 원을 퍼주며 구매한단 말인가? 일전에

문 닫은 어느 저축은행회장은 50억 원을 주고 오디오를 사서 창고에 은닉

했다 발각 됐었다. 산에 와서 자연의 음원에 몰두했다면 그 큰돈 아껴 서민

들 피눈물 짜게 하진 않았을 테다.

 

 

산등성 숲길을 밟으며 체감하는 바람의 노래와 상쾌함에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가고 기백산이 바위덩이 몇 개를 이고 우듬지(1330m)를 내밀었다(11

시 반).

땡볕이 산정을 볶아대고 그 열기는 금원, 거망, 황석산을 싸돌아 자못 신비

경을 연출한다.

곧장 반대편 금원산쪽 하산길에 접어들었는데 앉은뱅이 떡갈나무 숲에서 ‘

에~헤엥’하는 울음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표범처럼 숲속을 향하는데 기미

챘던지 새까만 물체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급비탈을 내려간다. 산양이라!

 

 

일천한 산행이력이지만 산양울음을 듣고 희미한 자태 일망정 목격한다는

건 행운이라. 산양을 비롯한 보다 큰 짐승들이 잘 번식하여 그들도 대자연

의 오케스트라 일원이 되면 좋겠단 생각에 빠져들었다. 용추계곡을 향하는

갈림길은 반시간쯤 걸렸다. 용추골은 치닫는 급경사로는 너덜지대이기도

해 신경 쓰였다. 조심조심 반시간을 내려오니 다시 매미와 물의 합창으로

제2막이 시작됐다.

 

 

 

길이 워낙 거칠어 코러스만 낭창하게 들릴 뿐 눈은 발끝

에 붙어 숲 감상할 여유를 잃었다. 녹음은 아까보다 더 짙고 물길도 세차

웅장한 합창은 골짜기를 흔들어댔다. 이제는 그 음의 파장이 바람을 일으

켜 폭풍으로 변해 간담을 서늘케 하는 거였다. 한 시간을 폭풍우뢰 소리에

몸을 맡겨 시장기(소풍간다고 도시락을 안 쌌다)를 달래느라 발걸음을 최

촉했다.

 

 

일주문 아래 서동꼰대들이 질펀하게 편 놀이마당에 닿았을 댄 오후 2시가

다 됐었다.

8.6km의 산행을 네 시간동안 오직 홀로 완주했다. 교향곡을 혼자 듣기엔

아까운 거였지만 서동산님들은 보다 더 신명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산님들은 네 팀으로 갈라져 각종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빼빼로를 물고

양파링 과자 끼어 나르기, 풍선 목에 끼고 달리다 배 맞춰 터뜨리기 등을

남녀가 끼어서 오두방정을 떨어대니  늦바람이라도 안 날런가? 갸우뚱-. 

그 신명난 바람에 모두가 하얀 밀가루분칠로 변장까지

하여 삐에로가 됐으니 서라벌전탑(殿搭)돌이 생각이 문득 아니 날 수가 없

었다.

 

매년 2월, 흥륜사에선 남녀가 모여 전탑을 도는 복회(福會)란 행사가 야밤

중까지 지속됐는데 거기서 눈 맞은 남녀의 바람은 상상을 절했다고 삼국유

사 금현감호(金現感虎)편에 기록됐다.

유명한 김유신도 부친 서현이 길에서 마주친 만명(萬明;진흫왕 동생의 딸)

과 눈 맞고 배 맞춰 충북진천태수로 부임하면서 꿰차고 줄행랑쳐 낳은 아

들이 아니던가!

 

 

꼰대세대에 들어선 산님들이야 언감생심일뿐,  나의 어림 서푼어치도 안되

는 기우일 테고, 팍팍한 삶에 찌든 꼰대들이 오늘 같이 하루를 심산유곡에

서 미친 척 스트레스 날리는 소풍은 권장할 만하다. 더구나 오늘이 그들의

모임을 만든 네 번째 생일날이기에 자축한답시고 먹거리와 선물보따리를

1톤 탑차에 가득 싣고 와 벌린 난장무대였다. 난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자신감이, 넓은 포용심이, 가없는 친절이 몸에 뱄다. 맨땅 익산에

백제의 부흥을 일으켰던 서동과 선화의 후예답게 그들은 기백이 찼다.

로에서 정 회장은 아프리카여행 소회를 짧게 일갈한다. “물질의 풍요는

신의 풍요가 주는 행복을 따르지 못한다.”고.

가난한 아프리카 토착민들의 삶에서, 그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은 건강한 마음에서 오는 거라고 절감한 탓이려니 생각됐다. 그의 말

따나 우리는 금수강산에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민족이고~!

 

정 회장의 소회를 듣다보니 이달-8월(1883.8.6~1983.8.24)에 낳아 딱 100

년을 살다가 8월에 자진해 소풍 끝낸 자연주의자 스콧`헬렌 니어링 부부 생

이 났다.

1932년 대공황때 뉴욕대 교수직을 떠나 버몬트 숲에 삶의 둥지를 튼 스콧

니어링은 ‘자급자족의 삶’과 ‘건강 지키기’, ‘사회를 생각하는 생활’을 실천

하다가 인근에 스키장이 생겨 번잡해지자, 20년의 터울을 떠나 메인주 한

적한 바닷가로 옮겨 철저한 자연주의 삶을 26년간 더 살다가 100살 되던

해 몸이 쇠해 더 이상 자급할 수가 없자 스스로 단식하여 생을 마감한 일생

이였다.

 

 

그는 “죽음이 삶의 여정을 끝내는 게 아니라 육체가 끝날 뿐이라.”고 했다.

그 육체는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극히 유기적인 순회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

산을 사랑하는 서동요꼰대들!

용추계곡에 미진한 찌꺼기 몽땅 날렸던지 밝고 힘이 넘쳐보였다.

방해꾼 노릇만 했을 이 몸, 상 꼰대에게도 선물을 두 개나 줘 황송했다. 더

욱 감탄한 건 1년 도 훨씬 더 지난 설악산산행 때 동행했었는데 그 때 산행

CD를 보관했다 오늘 주는 정성에 탄복했다. 가뭄에 콩 나듯 끼어드는 나

를-상 꼰대에게 베푸는 친절과 집행부의 세심한 마음 씀이 오늘의 활기찬

서동요를 만듦이라 생각됐다.

서동요산악회 화이팅!

                                    2012. 0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