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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진영,진성아! 너희엄마아빤 멋쟁이야! - 도장산

진영,진성아! 너희 엄마아빤 멋쟁이야! -도장산`쌍용계곡

 

속리산자락에 허파를 깊숙이 파묻은 상주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49번 도로 갈령고개에서 도장산을 항 할 때(오전10시를 막 넘겼었다) 만해도 오늘 산행이 그렇게 팍팍하고 더욱이 미궁에 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폭염뒤끝이라 고온다습하긴 했지만 세상은 짙푸른 초록으로 넘실대고 숲은 상큼한 냄새를 뿜어내 더위에 찌든 심신을 치유하는 성싶었다. 더구나 세 시간여쯤 후 도장산정상을 밟으면 쌍용계곡으로 빠져 쪽빛 소에 몸뚱일 담그고 폭포수에서 물폭탄도 맞아보자는 꼬맹이 동심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쌍용폭포수 소리도 듣기 전에 미궁 속의 훈습한 적막에 갇혀 도깨비에 홀린 듯 눈깔 뒤집혀야 했다.

 

도장산에서 심원사 방향으로 직진했어야 했는데 선두에서 ‘방향표시쪽지’를 우축을 향해 나둬 충직하게 뒤따른 탓 이였다. 인적이 뜸한 산길은 이내 퍼즐게임 하듯 낙엽을 헤친 선두 발자취 찾기로 이어져 삼삼오오씩 뿔뿔이 헤어져야 했고 미로 찾기는 깊은 미궁으로 빠져들어 누가 먼저 기진맥진 하나였다. 설상가상으로 산님 한 분은 쥐까지 놨으니 어둠이 깔리는 7시 반쯤에야 산행이 마무리됐다.

 

산행 초에 난 우연히 남진영(고1)진성(중3)형제를 만나게 됐던바 그들은 이제 겨우 반시간이 지났는데 힘겨워했었다. 알고 보니 처음산행이라. 부모님권유로 따라나섰다는데 벌써 후회하는 성싶었다. 첫 산행이 다섯 시간이상을 해야 한다면 무리는 당연지사라 내심 걱정이 앞섰고, 그 불안은 내가 지독한 퍼즐게임을 끝낼 쯤 떠오르는 것 이였다.

 

그런데 내가 여섯시쯤 버스에 올랐을 때 그들 형제는 이미 버스좌석에 녹초가 된 채 파묻혀있어 한숨을 돌렸었다. 나중에 형제아빠에게 정황을 들었는데 운 좋게도 그 가족은 일찍 미궁을 탈출했었단다.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 그 형제가 경험했을 첫 산행에 대한 감회가 어떠했을지 상상이 돼 감히 어쭙잖은 글로 소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고 싶어 (산행기 대신)편지를 쓰기로 했다.

 

진영, 진성아!

오늘 혼났지? 그렇더라도 너흰 대단하다. 산이 뭔지도 모른 너희가 단순하게 엄마아빠만 믿고 진종일을 산행이라는 대모험을 무사하게 끝맺음할 수 있어서 말이다.

 

너희가 장한 건 나는 너희 만 때 산행이란 단어도 몰랐고, 또한 요즘 너희들 또래에 짬이 난들 집에서 편하게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울 텐데 부모님간청이라지만 따라나선 그 용기가 말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값진 경험은 혹독한 고행 후에 많이 터득한다고 하드구나. 오늘의 고행은 너희들 평생에 쉬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게야.

 

그것만으로도 엄마아빠를 따랐던 산행은 값진 스펙 쌓기라 생각된다.

인고의 시간이 너희의 가슴을 담대하게 만들고 용기를 배가시켜 자신감을 심어준 건 빼먹어도 말이다.

 

앞으론 (각 지방마다 훌륭한 올레길, 둘레길이 조성되어)그런 산행길 걷기 스펙 쌓기가 입시나 취업에 필수가 될게야. 언제 어디서 며칠간 어느 둘레`올레길을 걸었는지 리포터를 쓴 글이나, 인증샷이 사회를 입문하는데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면 너흰 누구보다 먼저 그 길에 입문한 거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 산(자연)은 우리에게 겸손해 질 것을 가르친다.경거망동한다든지 만용을 부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됨을 곧바로 터득케 해준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들이 뿔뿔이 헤어져 미궁 속을 헤매며 고생 혀 빠지게 했던 건 선두(리더)가 ‘방향안내쪽지’ 한 장을 신중하게 놔두지 못했기 때문 아니겠니?

 

진영, 진성아!    '원형선회(Circular Mill)현상'이란 말 들어봤니?

미국 과학자 윌리엄 비브는 1921년 기아나정글에서 병정개미의 떼죽음을

목격했던바, 선두개미의 페르몬을 따라 개미들의 행렬을 이어지고 그 길은

무려 400m의 원형을 이뤄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 반이나 소요됐으며, 그

렇게 이틀동안 빙빙 돌다가  지쳐 죽고마는 '죽음의 행진'을 했다는구나.

선두의 잘못된 길 선택이 무리 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현상을 원형선

회현상이라고 한다지. 산행에서뿐 아니라 우리모두의 리더들이 가슴새겨

야 할 말이겠지.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거짓 없이 우리를 맞는데 우린 그들을 하대하고

더는 개발이란 이름으로 까뭉개 폭풍우땐 재앙을 초래한다. 산(숲)을 사랑

하면 그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우린 숨쉬기를 상큼하게 할 수 있잖니?

그들이 곧 우리의 허파이니까!

 

 

오늘같이 산행이 힘겨울 땐 조금은 그 순간을 잊으며 걸을 수가 있단다. 숲

을 은근히 바라보는 게야.

키 재기하듯 하늘을 향해 뻗은 수목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고 그 기이한 몸매는 살아남기 위해 한 올의 햇빛을 탐했던 시간의 처절한 연륜이 아니겠니?

그들의 아픈 일생을 유추해 보는 게야. 또한 오늘 원추리와 도라지꽃이 유난하더라.

 

노랑과 보랏빛꽃잎은 그들의 옷일 테고, 향기는 언어일 테다. 꽃들이 각기 다른 색깔을 띄우고 향이 다른 건 고유의 유전자를 보호 지속시키려는 욕망땜일거야. 그게 가능 한 건 중매쟁이 충매들이 각자 선호색이 있어 보라색만 좋아하는 놈, 노랑만 좋아하는 놈이 있어 그렇게 일차 관문이 통과되면 암술은 충매가 묻혀온 향(언어)을 구별해 수정여부를 결정한다는 게야.

그 신비를 생각하며 잠시 들꽃을 들여다보라. 팍팍하고 지겨운 고행의 순간을 잊을 수가 있다. 요컨대 숲으로 돌아가 내 스스로 그 숲이 돼보는 게야.

 

너희 형제는 행운아야!

엄마아빠가 산을 좋아하기 망정이지 아님, 어린 나이에 산에 오를 생각이나 했겠니?

어른들의 시행착오도 도처에서 생길 수 있고, 비록 그 예기치 못한 일이 고생을 수반했다 해도 그 고역은 인내심의 담금질로, 오래도록 남을 추억으로 남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담에 산행하자고 하면 도망갈 거야.”라고 말했다고 너희엄마가 아빠께 고자질(?)하더구나.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우리 모두 긍정한다. 오늘 너희를 사지로 안내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아빠나, 그 누구도 부러 하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잖니?

그 점이 부담됐던지 너희 아빤 약주가 좀 과했었지. 솔직히 맨 정신으로 너희에게 뭐라 말하기 뭣했던 거야. 그런 아빠 헤아리려 신경 쓰는 모습, 점심 때 너희가 덜어 준 반찬에서 너희엄마가 밤새 만들었을 듬뿍 담긴 정성을 보면서 너희가정처럼 오붓하기도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해봤단다.

 

너희집, 참 좋은 가정이야!

오늘은 진한 추억으로 간직해라. 대신 이담에 산에 가자고 엄마아빠가 꼬시면(?) 딱 세 시간 내로 끝내는 산행을 하자고 주문해라.

점차 시간과 횟수를 늘리다보면 엄마아빠처럼 산 마니아가 될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내 입바른 소릴 하나 더 보태자면 너흰 어찌해서든 산행을 생활화해야 된다는 점이다.

미안하지만 너희들 벌써 비만징조가 보이여서 하는 말이다. 비만치료엔 산행만한 게 없다.

쓰잘대기 없는 소릴 두서없이 늘어놨는지 모르겠다. 거스른데 있음 양해해다오.

잘 있어. 언제 우리 산에서 다시 만나자, 파이팅!

2012. 0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