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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깔아뭉게 망가질까 조바심난 북한산

족두리`향로`비`숭가`문수봉에 눈도장 찍다 - 북한산

오전 10시 반을 지나쳤는데도 불광역(구기터널 쪽)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북한산둘레길이나 북한산 비봉능선을 등정하려 모여든 산님들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겨울잠에서 덜 깬 회색도회지를 밝게 도배칠해 상춘(賞春)에 빠져들게 한다.

십여 분쯤 걷다 아내와 난 레미안아파트 앞에서 북한산둘레길로 들어섰다.

깔끔한 마을고샅을 빠져 북한산탐방지원센터에 이렀는데 등산로가 급경사를 이뤘다.

벌써 숨이 차오르고 산님들은 재킷을 벗어 가파른 바윗길과 이제 막 기지개 펴는 봄기운에 맞짱을 걸 매무시를 하는 거였다.

한북정맥이 도봉산을 빚고 우이령을 넘어 바위들로 웅크린 곳이 북한산이라.

족두리봉을 오르는 바위도 울퉁불퉁한 게 가파르기까지 해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게 한데 다행인 것은 소나무들의 기괴한 자태였다.

대머리바위 들만 우글거리다가 심난했던지 소나무를 키웠을 테고, 소나무는 바위에서 얻어 먹을 게 태부족이라 죽기 살기로 몸뚱이를 쥐어 짜야했으리라.

제대로 큰 놈이 없다.


비틀어진 채 사지를 꼬며 발버둥 친 소나무들을 보는 난 그 모습에 환장하여 고됨을 잊었다.

더구나 절묘한 소나무숲 사이로 얼굴 드미는 시가지를 관망하면서 고층건물 콘크리트문화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하고 감탄했다.

바위와 소나무의 이질적인 공존을 즐기면서 족두리를 오르는데 서쪽 바위등걸에 붙은 클라이머 두 사람이 개미만하다.

그 그림도 죽여줬다.

또반시간쯤 흘렀다.

족두리봉 턱 아래에 이르렀을 때 아내는 주저 없이 에두른 길로 앞장섰다.


정상을 밟는다는 건 애당초 언감생심 이였다.

헉헉대며 예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가상타.

아침에 ‘북한산둘레길에서 쬠만 더 고생하면 된다.'고 아내를 꼬여 동행한 등반길인데 아내 비위 맞추지 않고는 오늘 산행은 죽도 밥도 안 될 거란 건 작심한 바였다.

바위사이를 비집고 찌질 한 소나무에 의탁하여 벼랑을 넘자 남쪽 골짜기 바위벽에 클라이머들이 바위늘보냥 달라붙기 시작 했다.

하얀 수직바윈 하늘에 처박혀 끝이 안 보였다.

아낸 멀거니 쳐다보다가 “미쳤지!?”라고 뱉었다.

미쳤다 건 맞는 말이다.


미치지 않곤 실성한 자나 할 짓인 것이다.

허나 어떤 일에 미치지 않고선 마무리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는 법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을 클라이머들은 누구보다 잘 알 터이다.

비봉능선에 올라 족두리봉입구에 닿았으나 아낸 내와 눈 마주칠라 잽싸게 향로봉을 향해 내닫는다.

얼른 사진 한 장만을 담아 아내 꽁무니를 쫓았다.

멀리서 관망하는 족두리봉은 어쩜 요세미티공원의 하프`돔처럼 생겼단 생각이 났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클라이머들이 일생을 두고 오르고 싶어 안달한다는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미친놈들의 흰 바위덩이 산 말이다.

서울`클라이머들이 오르고 싶어 안달하는 북한산 바위가 족두리봉에도 있음이라.


비봉능선에서 조망되는 불광시가지와 멀리 아른거리는 김포까지도 엷은 안무는 수묵화로 만들었다.

한북산맥은 광활한 서울시가지 사이로 줄기를 뻗어 아름다운 도회를 만들었다.

세계의 대도시, 아니 수도가 서울만 한 아름다움으로 천혜의 자연미를 뿜어낸 곳은 드물 것이다.

서울은, 서울시민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물컥 솟았다.

다시 반시간 쯤 능선을 타다 향로봉을 오른다.

아까 탕춘대방향 푯말 앞에서 머뭇거린 아내를 얼렁뚱땅 속임수 써 이끌었는데 오르막이 급경사라 이래저래 신경이 날서야 했다.


허나 그 빡센 오름 속에서 잠깐 머뭇대다 감상하는 소나무와 바위의 부자연스런 것 같은 조화는 모든 걸 잊게 하는 거였다.

등정이 수반하는 행복 중에서도 북한산바위와 소나무가 주는 감탄은 별나다.

그건 탄성이 한숨이 될 판 이여서다.

향로봉은 밧줄로 휘둘러 금지선을 쳤다.

비봉을 향하는데 군데군데 산님들이 점심자릴 폈고 금지선은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였다.

북한산이 바위산이기망정이지 흙산이었다면 망신창이가 됐을 테다.

우리도 비봉이 발가벗고 눈앞까지 다가선 벼랑바위에 자릴 폈다.

점심이래야 빵과 우유뿐이라.

아침에 예까지 등산하겠다 했음 아낸 아예 따라나설 위인이 아니기에 둘레길 적당히 걷다오자고 나선 길이었으니 비봉배꼽까지 온 것만으로도 점심은 사치라 생각하자고 해 웃었다.

두 시간을 못 이긴 척 묵묵히 따라준 아내의 양보가, 고투가 고맙다.

보다는 힘든 만큼 맛보는 희열에 감탄하는 아내의 등산에의 길 눈뜸이 난 더 흐뭇해지는 거였다.


비봉 뒤로 사모바윈가 싶고 숭가봉과 문수봉`보현봉이 하늘 금을 그으며 우리가 앉은 바윌 향해 오그라들며 다가서고, 저 아래선 한 떼의 산님들이 산골짝이 좁다는 듯 왁자지껄 살판 났다.

경고판을 무시하고 금지선을 월경 침범한 범법이 숱하게 자행되고 있었지만 (바위와 소나무가 있고 원경이 죽여주는)전망 좋은 자리 잡아 잠시 쉬겠다는데 범법 좀 했대서 경찰이 잡아가겠는가!?

기소청탁 해놓은 걸 까발리자시침이 때며 마누라이름으로 고소까지 하자 상대가 역고소하여 피고소인 된법의 수호자인판사님께서 경찰부름에 법깔아뭉게는 판에 아니다, 마지못해 몇 줄 답변서 깔겨 제출하면 무혐의처리 하느라 또 법깔아뭉게는 경찰인데, 고깟 금지선 넘었다고 웬놈이 부르면 답변서 써 주면 될 테니 양심만 잠깐, 정말 잠깐 눈감으면 된다.

이래저래 북한산은, 전국의 모든 산하는 더 빨리 망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산님들이 법깔아뭉겐데서시비걸 자 없겠다싶고, 더는 고발당한단들 답변서 몇마디 끄적거려 주면 되니말이다.

우리도 양심 잠깐 저당하고 있는데 네댓 명의 산님들이 옆에 다가와 얼쩡대 자릴 털고 일어섰다.

충분히 휴식했으니 비봉으로 해서 숭가`문수봉까지 한 시간 반이면 가능하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내로부터의 대답은 불꽃 튀는 눈총 이였다.

되돌아섰다.

아까 지나쳤던향로봉에서 탕춘대능선을 타고 하산하면 둘레길에 이르게 된다.

근데 내리막 바윗길은 여간 위험하여 고생길이라.

아낸 바위와 스킨십 하기에 반시간쯤 열중이다.

드디어 비봉탐방지원센터에 닿았고 거기서부턴 산보하기 좋은 둘레길이였다.

탕춘대성곽을 따라 난 둘레길은 예의 멋들어진, 좀 더 덩치가 큰 소나무와 역사의 때가 켜켜이 묻은 성(城)과 부서진 바위의 마사토가 산책의 행복에 푹 빠져들게 했다.

깔끔한 마사토길은 나의 발아래서 사가사각 속삭이고 그 경쾌한 소리에 귀 기우리다보면 일념에 들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험준한 북한산등정을 마친 산님들이 하산하며 한 시간 정도 평탄한 마사토길을 걷는다는 행복은 서울산님들의 행운이겠다.

거기에 소나무 숲 사이로 그림처럼 다가서는 비봉능선의 준령들과 시가지들 - 구기`홍은`녹번`불광동은 결코 지겹지 않게 숨바꼭질의 상대역을 잘도 해 내고 있었다.

둘레길은 장미공원에서 몸을 풀었다.

여덟 개의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지하수는 북한산석간수이려니!


그 시원한 물맛은 인근시민의 생명수일 것 같다.

정기적으로 하는 수질검사표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불광전철역까진 10분이면 족했다.

오후 3시였다. 아내가 여간 고마웠다.

해서 입 봉할 순 도저히 없었다.

“여보! 오늘 당신 대단했어. 북한산 다람쥐들이 당신 앞에 얼씬도 안했잖아!?"

2012. 0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