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액 2000ℓ가 머리에 한 가득?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라”(Call me Ishmael)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입니다. 소설 ‘모비딕’의 서문이지요. 명작 중 명작이라고 꼽히는 이 책은 거대한 향유고래와 이를 잡으려는 포경선 선장 에이허브의 투쟁을 그립니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욕망과 충동을 온전히 담았기에 미국 문학의 대명사로 통했지요. 최근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소개로 국내에서 다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향유고래는 그 거대한 크기 탓에 이야기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였습니다. 푸른 바다에서 분수처럼 뿜어내는 분기의 아우라에 압도된 것이었지요.
거대한 향유고래
시간이 지날수록 포경의 중요성은 그 의미를 더해갑니다. 19세기 초중반 미국은 포경의 나라였습니다. 고래잡이가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면서였습니다. ‘고래기름’이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기 때문이지요.
고래의 상업적 활용을 묘사한 19세기 그림
1800년대 초 미국의 한 포경선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6m, 45t이 넘는 숫놈 고래 사냥에 성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향유고래’였습니다. 그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보관을 위해 분해를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대가리를 분해하자 하얗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왈칵 쏟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1900ℓ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지요.
“저 놈 머리에 정액이 가득하대” 17세기 네덜란드 해양화가 아브라함 스톡의 ‘스피츠베르겐 인근에서 고래잡이를 하는 어부들’
머릿속에서 발견된 정액은 그야말로 초대박 상품이었습니다. 일반 고래기름에 비해 점도가 낮고 안전성이 확보된 제품이라서 윤할유로 주목받았습니다. 수많은 포경선이 ‘향유고래’ 사냥에 나서게 된 배경이지요. ‘머릿속 정액’은 당시 뱃사람들의 보물섬과 같았습니다.
포경박물관(미국 매사추세츠)에 전시되어 있는 경뇌유 병과 캔. 이름에 정액이라는 의미의 ‘Sperm’이 새겨져 있다. [사진출처=Raphael D. Mazor]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 새하얀 이 녀석은 특별한 외모만큼이나 그 포악함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만큼 뱃사람의 도전욕을 자극했지요. 놈을 잡으면 부와 명성이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원피스’였다고나 할까요. 포경선들이 모카딕에 도전한 것만 해도 100여차례. 승리는 항상 모카딕의 몫이었습니다.
“덤벼라 모비딕”. 1902년판 모비딕에 수록된 삽화.
“저놈의 정액을 빼야한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행해진 포경을 묘사한 그림. 1860년 작품.
‘경뇌유’는 고래의 정액만큼이나 중요한 물질입니다. 향유고래의 거대한 무게를 지탱하는 무게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바닷물을 들이마셔 경뇌유가 냉각되면 그만큼 무거워지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자연은 참 위대한 신비로 가득합니다.
“이제 머리에 든 게 그게 아니란 걸 알겠나, 인간들” 네덜란드 예술가가 재현한 사냥당한 향유고래. [사진출처=Julian Ilcheff Borissoff]
1820년에는 향유고래의 2번에 걸친 박치기를 받은 범선 에식스가 침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장 24m, 238t급의 거대한 배가 나룻배마냥 으스러진 것이었지요. 단순히 머릿속 정액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포경선, 그까이꺼 다 부숴버리지~” 노르웨이 베스테롤렌 제도의 작은 마을인 안데네스 해안에서 찍은 사진. [사진출처=buiobuione]
어미 향유고래와 새끼. [사진출처=Gabriel Barathieu]
딕은 오히려 ‘톰’처럼 평범한 남성 이름의 대명사여서, 그 당시에는 딕을 말할 때 아무도 킥킥대지 않았을 테지요. 딕이 성기를 뜻하게 된 건 20세기 초반이 지나서였습니다. 오히려 모비딕의 출간 이후 그 제목을 성기 속어로 사용했다고 보는 게 논리적인 추론이겠지요(모비 역시 집필 당시에는 ‘거물’이란 뜻이 없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 정도 크기는 다 되지 않나? 촤하하~” 사회활동 중인 향유고래 무리. [사진출처=Will Falcon]
“야~ 석유가 발견됐대, 이제 살았다” 향유고래가 새로운 유정의 발견을 축하하는 모습을 그린 만화. 석유의 개발로 고래 기름 수요가 줄어든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눈을 깜빡거리는 향유고래를 근접 촬영한 비디오. [사진출처=David Trescot]
1) 향유고래의 영어이름은 ‘스펌웨일’, 직역하면 정액고래다. 2)그들을 사냥하던 19세기 초 머릿 속에 가득한 하얀 액체를 보고 정액이라 착각한 탓이다. 3)하얀액체는 경뇌유로, 액체에서 고체로 자유롭게 변환이 가능해 향유고래 박치기의 원동력이었다. 이는 소설 ‘모비딕’에 영감을 줬다.
<참고문헌> Whitehead Hal, Sperm whales : social evolution in the ocea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 세계 최고 3대 향수 원료 ;
*사향(麝香 Musk) ; 수컷 사향노루의 복부에 있는 향낭(사향 샘)에서 얻은 분비물. 영묘향과 함께 동물성 향료 중 하나로 사용됨. 몽환적이고 포근한 향을 낸다.
*용연향(龍延香;Ambergris))은 용분(龍糞)으로 수컷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를 먹고 번식기에 미처 소화되지 않은 배설물을 바다에 쏟아놓은 고형분이다. 바닷물이 스며들고 햇빛을 받아 화학작용을 하여 단단하게 변하며 해변가로 떠밀려온 용연은 썩은 똥냄새가 나지만 술(알콜)에 녹이면 최고급 향료로 변신한다. 또한 다른 향의 보향제로 혼합하여 향의 지속시간을 오래 가도록 하였다.
*영묘향(靈猫香 Civet);사향고양이의 향선낭 분비물
현존 최고급향료가 똥냄새라니, 그것도 엣 중국 황제들이 고래의 배설물을 용의 침(용연)이라고 명명하고 즐겼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 기름 외에도 내장 안에 덩어리처럼 몰려있는 분(糞)은 용연향(龍延香)이라고 불리며,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쌀 정도로 아주 귀하게 취급되는 향수의 원료다. 용연향은 주로 위장 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남은 대왕오징어의 주둥이 등 찌꺼기가 뭉친 것이라고 하며, 최대 1,000파운드에 달하는 큰 덩어리가 발견된 적이 있다. 이 용연향 때문에 향유고래를 말향고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 향유고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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