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끄나풀

아파트입구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아내가 신발을 신으며 외출하려하자 다소 의아하게 느낀 내가 물었다.

“어디 가려는데?”

“산에 가지 어딜 가” 오후엔 병원엘 가야하니 자락길 트래킹을 가나싶어 ‘1차 진료기관에서 발급한 의료급여의뢰서’를 필히 지참하라는 카톨릭대학 성모병원의 메시지 얘기를 하려던 나는 아내의 이어지는 단언

“둘째하고 가기로 했으니 신경 쓸 거 없어” 라고 뱉는 말에 말문을 닫아야했다.

하늘다리를 잇는 안산자락길

“그래, 둘째가 알아서 하겠구먼” 이라고 독백하듯 말끝을 흐리며 심드렁해진 나는 현관문 닫고 나가는 아내의 쌀쌀한 여운에 착잡해졌다. 삐져도 단단히 삐진 아내다. 그저께(토요일) 아침부터 아내는 바빴다. 염천교 아침시장에서 살게를 사다가 양념무침게장을 만들고, 영천시장에서 풋고추를 사와 멸치고추조림을 하는 통에 나도 마늘, 통고추, 양파를 다듬고 뒤치다꺼리와 청소를 하느라 덩달아 바빴다. 죽전 막내 집엘 가기위해 반찬거릴 만드느라 부산 떤 오전이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울`부부는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개장,멸치볶음,김치와 냉동된 제주옥돔 한 마리를 아이스가방에 넣어 집을 나섰다. 1박2일 묵을 간단한 소지품을 백팩에 넣어 짊어졌는데 반찬 넣은 백이 좀 무거웠다. 근데 아내는 경동시장엘 들러 새우와 단감을 사갖고 가잔다. 단감은 자기몫이고, 막내사위가 생새우(대화)를 좋아한다고 우기는 아내에게 ‘반찬과 생선 돔이 있는데 꼭 새우를 더 사야하느냐?’고 나는 반대했다.

인왕산의 북한산성

무거워질 짐 걱정에 앞서 종로역에서 환승하여 재기역하차, 경동시장을 훑고 다시 청량리역에서 탑승하여 왕십리역 환승하여 죽전역까지 가는 복잡할 지하철탑승은 결코 만만찮은 고역이 아닐 거였다. 1시간 반쯤 소요될 시간도 그렇지만 무거운 짐 갖고 세 번이나 환승해야하는 고역이 지래 짜증났던 거다. 게다가 아내는 요통으로 월요일 카톨릭대학 성모병원에서 종합검진예약을 해 놓은 처지라 장시간의 지하철탑승도 무리다.

인왕산약수터 위의 선바위

그래 나는 시장 가지 말고 그냥 가자고 우겨대자 아내는 가기 싫으면 오지 말라고 쏘아붙이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욱한 감정이 치솟아 사뭇 '오지 말라'는 소릴 기다리기라도 했단 듯이

“그래, 난 안 갈래” 라며 가방을 길에 놓고 되돌아서 귀가했다. 10월30일은 막내사위의 생일이다. 마침 토요일이라 둘째도 참석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약속한 일정인데 아내의 극성이 좀 못 마땅하여 도중에 돌아선 나의 경거망동이 오후 내내 신경 쓰이면서 불편한 마음에 안절부절 해야했다.

북한산성과 군 시설물

해도 난 나의 옹졸한 행위의 반성보다는 아내의 극성스러운 자식사랑 앞에 늘 감내해야하는 번민을 이번에 식구 모두가 되새심질해 보는 기회가 됐음 하는 자위감 속에서 애써 합리화 시켰다. 짐 없이 홀가분한 나들이 하는 노인이고 싶다. 칠십 중반의 부모가 자식한테 갈 때마다 올망졸망한 보따릴 싸갖고 가야하나? 라고 회의가 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고, 그걸 애써 고집하는 아내의 극성이 마땅찮은 거였다. 어떤 땐 아내의 자식사랑 앞에 부부간의 애정이란 눈곱만큼도 없나 싶어 울적해진다. 아내의 애정 순번 맨 꼴찌가 나나 싶다.

약수터 길

아내에게 늙은 남편은 귀찮은 존재일 테지만 그런 메마른 애정을 자식들 앞에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일 땐 서글퍼지고 그래 아내를 경원(敬遠)하게 된다. 은연 중 자식들도 배울까 두렵다. 토`일요일 이틀째 아니 지금 이 시간까지도 애들은 내게 전화 한 통 없었다. 나의 행위가 그렇게 고까웠을까? 내 스스로 자초한 탓이지만 거기에 아내의 책임은 전혀 없는 걸까? 아내는 나의 불참을 어떻게 얘기했을까? 옹졸한 아비 만들기에 입방아 찧지는 안했을까? 삐져 토라진 게 무슨 자랑거리라도 됐다는 듯이.

단풍단장하는 경복궁(중앙 숲 지대)

어제 늦은 오후에 귀가한 아내는 침실에 박혀 냉전 상태다. 마지못해 오늘 아침을 때운 아내는 오후 3시10분 카톨릭대학 성모병원 척추,관절,통증,류마티스센터 정형외과 이준석선생의 진료를 받으러 가는 데 동행하려던 나를 무참하게 거절했다. 근무 중일 둘째가 부러 짬을 내어 병원진료에 동행해야할 절박한 이유란 게 내가 식사자리를 보이콧한 탓일 테니 유구무언 해야 하는가? 앞으로는 아내가 어떤 일에 조력자가 필요하면 그때마다 자식들이 와서 도울 텐가?

약수터 위의 바위벙커

아낸 둘째의 동행을 사양했어야 옳다. 더는 둘째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어 내가 동행하도록 멘토가 돼야 한다. 부모의 소원(疏遠)해진 사이를 살갑게 하는 세심함에 신경 써야했다. 부부의 사이가 소원해지는 건 당사자는 물론 식구들 누구에게도 좋을 리가 없잖은가. 나는 지금도 토욜 식사자리에 참석 안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나의 졸렬(?)행위가 식구들 모두가 서로를 향한 배려와 보듬음으로 애정을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음 전화위복이 될 터여서다. 그나저나 민주야, 생일 축하한다. 글고 아내의 요통이 중증이 아니길 염원한다.

2021. 11. 01

# 병원에서 오후 늦게 귀가한 아내는 지금은 초기증상이라 허리에 무리하지 않도록 조신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단다. 다행이었다.

# 이 글에 삽입한 사진은 인왕산약수터 부근의 성곽길에 단풍이 내려앉은 정경이다. 

성곽길
인왕산 약수터길
단풍물드는 북악산 자락, 처와대와 감사원이 보인다
침묵
약수터의 구멍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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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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