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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행주산성을 찾아서

행주산성(幸州山城)을 찾아서

부산에서 한 달 남짓 뭉개고 온 나더러 깨복쟁이 친구C가 전화에다 대고 ‘부산에 살러 간줄 알았는데 왔네.’라고 비틀더니 ‘행주산성 가봤어?’라고 아픈 데를 쑤셨다. 쏴다니기 좋아한데다 얘깃거리 켜켜이 묻힌 곳은 더 좋아하는 내가 여태 행주산성을 가 보질 못한 걸 어찌 알았는가? 싶어 좀은 멀춤했다. 우린 곧장 트레킹 날짜를 잡았다.

충장사

그렇게 하여 방화역에서 내린 우린 자동차전용도로를 무단횡단하면서 어찌어찌하여 서울개화동과 경기고양시를 잇는 왕복6차선 자동차전용다리 - 행주대교2.52km를 전쟁 터 같은 우레소음 속을 뚫고 한강을 건넜다. 리어카도 못 다닐 좁은 인도에서 바이커들에게 길 터주면서 도강을 하는 스릴(?)은 엉뚱한 재미였다. 바이커들 말고 걷는 사람은 울 둘뿐이었고.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과 한강, 산정에 행주대첩비가 보인다

 20대 때 한강대교(그땐 중간에 노들섬이 있는 1km남짓의 인도교를 도보로 도강하는 게 일상화 됐었다)를 건넜던 기억을 차환해 타임머신여행까지 했다. 그렇게 한 시간정도 한강유역을 걸어 덕양산에 닿아 행주산성에 입문했다. 대첩문을 들어서면 권율 장군동상과 마주한다. 늠름하기가 광화문 이순신 장군동상 같았다.

행주대교, 자동차전용이라 폭1m도 안 되는 인도는 바이커족차지 - 소음 탓에 뒤에서 악을 써야 비켜주곤 했다

권율(權慄, 1537~1599)의 행주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회자되는 구국의 쾌거였다. 장군은 46세에 늦깍기 등극  임난 땐 전라도도절제사가 된다. 동복현감 황진(黃進)의 조선군1,500명을 휘하에 거느리고 일본군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별군의 전주침입을 막아 전라도가 후방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했다. 이 싸움이 이치전투(梨峙戰鬪)로 황진이 전사하였다.

개화산

행주대첩은 1593년 2월 12일 조방장 조경(趙儆)과 승장(僧將) 처영(處英)의 승병 1천명이 합류 조선군 수천 명이 왜군 우키타(宇喜多秀家)의 지휘하의 3만 여명의 왜병과 혈전을 벌린 전투다. 조선군은 활·칼·창 같은 무기와 화포와 석포(石砲, 돌을 날려 보내는 대포)로 싸우다 병참이 바닥이 나서 전세가 기울자 권율은 사생 즉 필생을 외치며 조선군을 독려 반격한다.

방화대교 아래 임시 선착장과 행주나룻길 안내도

부녀자들도 긴 치마를 짧게 잘라 돌을 운반해 투석전을 펼친 끝에 마침내 왜장 우키다와 이시다가 집중 포격을 당해 부상을 입고 퇴각했다. 이때의 '행주치마의 돌멩이'가 ‘행주대첩’이란 승전의 유래가 된다. 권율은 행주대첩의 공로로 도원수(都元帥)에 올랐다. 선조 때 권신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은 다재다능한 해학(諧謔)가였다. 그가 권율의 사위가 되어 조정에 같이 등청하면서 남긴 일화가 많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행주산성 입구 - 대첩문

장인과 사위인 그들은 맏형과 막내사이 같은 절친 이기도 했다. 권율이 소변을 볼라치면 장난기가 농후한 이항복이 대뜸 고개를 빼들고 장인의 물건을 훔쳐보곤 했다. 한번은 권율이 이항복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가리키며

“이것 또한 자네의 장인일세. 어찌 감히 무례하게 훔쳐보나?” 라고 한 말씀 쏘았다. 그러고 난 담날 권율이 소변을 다 보고 돌아서자 이항복은 느닷없이 권율의 싸대기를 한 대 갈겼다.

자유로와 한강, 방화대교와 마곡대교 뒤로 여의도빌딩숲이 보인다

깜짝 놀래 어안이 벙벙 황당해진 권율이 쳐다보자 “지금 어르신께서 제 장인의 목을 잡고 위아래로 흔드시니 사위인 제가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라고 조아렸다. 권율이 되받아 친다.

“네놈은 정말로 내 ‘물건’의 사위 - ‘ㅈ사위’라고 불러도 되는 놈이구나!”라며 껄껄 웃자 사위 이항복도 배꼽잡고 파안대소 했단다.

행주대첩비각

행주산성에 오르면 사위가 뻥 뚫리고 한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어 얕은 토성으로도 방어 가능한 요충지란 직감이 든다. 덕양산의 울창한 숲을 둘러싼 거미줄 같이 얽힌 도로망들을 조망하다보면 권율은 행주산성이란 훌륭한 힐링`처를 후세에 선물하기도 한 어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도대체 뭣 땜에 하는가? 땅 따먹으려고? 백년도 채 못사는 주제에 여차하면 파리목숨 되는 짓거리인데? 아니 얼마나 많은 죽음과 폐허에 가위눌림 당하는 삶을 살아야 함인데! 

대첩박물관, 코로나19로 임시휴관

전쟁애찬논자들은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을 얘기하며 음침한 권력욕망을 캄푸라치 시키려든다. 똥구멍이 구린 정치인일수록 민중의 시선을 딴 곳에 쏠리게 하려는 수단이다. 이순신, 권율, 김시민이 위대한 인물임은 권력욕에서 초연해서다. 이 글을 쓰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행주대교 보다 최단코스로 건너기 좋은 방화대교가 있었는데 에둘러가며 안내한 친구C가 고맙다. 걷는 걸 썩 즐기는 편도 아닌 샌님인 그가 행주대교를 도강하는 길잡이를 했으니 말이다.       2021. 06. 01

충의정과 권율장군(그림 장선환)
대첩기념관은 코로나19로 임시 휴관
방화대교
행주산성-토성
행주나룻길과 보리똥, 내 어릴적엔 환장했던 먹거리였는데~! 
충훈정
선인장-백년초의 꽃
자유로의 자전거전용도로
고양시 공동묘역과 정자
▲보성 선(寶城  宣)씨 중 다섯분의 충신 위패를 모신 오충사▼
고양전철차고지 뒤로 고양산 능선
▲식당에서 울 가족 저녁식사 삼겹살&감자탕 ▼
권율 장군 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소재(박스 그림)
필자가 도강한 행주대교(상)와 한강대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