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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정승과 벌린 조개

정승[閤]과 벌린 조개[羅蛤]


조선조 5대 요녀(妖女)중에 순조때 양지홍(梁只洪)이란 기녀가 있었다. 그녀는 영산강 나주포구의 홍어집 외동딸 이였는데 재색 겸비한 미녀로 천민출신이란 딱지를 떼기 위해 기생이 됐다.

지홍의 나이 14세 때 그녀의 아버지는 한양으로 올라가 나주헌(羅州軒)이란 큰 술집을 차리고 영산강에서 재미 본 홍어요리와 가무까지 능한 딸을 앞세워 일약 장안의 명소로 입소문 나게 했다.

나아가선 고관대작에 연을 대 신분상승을 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다 당대의 세도가 하옥(荷屋) 김좌근 대감을 꼬시는 작전을 짜 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종4년(1838년), 하옥이 나이 41세에 정시(庭試)문과 병과에 합격하자 친구들을 불러 나주헌에서 한 턱을 쏘게 됐었다.

사실 그 때의 과거라야 부정이 만연해 세도가를 등용시키기 위한 요식행위였다. 시험생보다 보조시험 생이 많아 그들이 앞뒤좌우로 앉아 답안지를 작성해 줬다고 야사는 기록했다.

어떻든 하옥은 합격했고 나주헌을 찾자 지홍은 수작을 걸어 기회를 놓치질 않는다.

하옥은 그녀의 재색에 홀딱 빠져 아들 없단 핑계로 후처로 앉히니 장안 제일의 세도가의 마님이 된 셈이다. 하옥의 부친 김조순은 순조의 장인으로 대대로 세도를 부린 안동김씨의 정점이니 지홍의 콧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되니 사람들은 그녀를 나합(羅閤)이라 불렀다.

閤은 정승을 말함이니 나합은 지홍을 나주 정승이라 칭함이다. 그녀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아 감히 누가 시비 붙일 자 없었는데 흥선 대원군만이 그녀의 콧대를 잘 선용해 써먹었다. 그런 일화 한 토막,

“자네를 세간에서 나합이라고 무르는 것을 알고 있는가? 김합이 정승이면 그의 첩도 정승인가?” 라고 대원군이 비아냥 투로 물었다.

“나으리는 세간의 소리만 들었지 그 한자의 뜻을 살피지 않으셨구려. 羅閤이 아니라 나합(羅蛤)이라고 비웃는 소릴 겁니다. 나주정승이 아니라 짝 벌린[羅] 대합조개[蛤]라고 말이지요. 비록 첩일망정 착하게 살려고 하였으나 세상은 저를 못된 계집으로 매도하오니 억울할 뿐입니다.” 라고 지홍이 새침을 떨자 대원군은 그녀의 대담한 재색에 움찔하였다.

아무튼 대원군은 그런 나합의 세도를 이언령비언령 삼아 경복궁중건 시 상당한 비용을 받아내곤 했었다. 둘이 궁짝이 맞았던 셈이다.

요녀 나합의 진면목이 들어난 에피소드 하나,

한강에서 물고기 방생을 한답시고 앞배에 악공들, 중간 배에 물고기에 줄 밥, 끝 배엔 하인들을 실은 배 세척을 동원하였는데 밥을 강에 풀자 가난한 백성이 강물 속으로 몰래 숨어들어 그 밥을 건져 올리다 들켰다. 이때 나합은

“용왕님께 벌 받을 놈들!” 이라고 격노하면서 곤장을 때리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백성의 굶주림보다도 물고기 배채워주는 게 더 위신이 서는 한심한 세도!

요즘도 지체 높은 위정자들 몇몇은 백성들이 낸 세금을 재임 중 자기 낯내기 사업에 쓰느라 국고를 탕진하는 사례가 많다.

나합의 물고기 밥은 물고기라도 살찌우지만 불요불급한 공사는 계속 세금만 축낸다. 벌린 조개보다 못한 짧은 몽당연필 사내들이 날 뛰어 슬프다.

*조선조 5대 요녀; 연산-장녹수, 광해군-김개시, 숙종-장희빈, 명종-정난정.

2011.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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