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임금이라면 '장자연사건'을 어찌 했을꼬? 

 

2009년 경찰수사에서, 배우 장자연은 어머니 기일에도 회사비용으로 미용실에서 머리손질을 하고 술자리에 불려 나갔다는 진술이 나왔다. 개인적 참석이 아닌 회사비용으로 이뤄진 술자리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소속사인 장자연 동료배우가 소속사 대표의 폭행이 두려워 술자리에 나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동료배우는 당시 장자연과 함께한 술자리 자리배치까지 기억하며 참석자들이 장씨에게 가한 불미스러운 정황에 대해 진술을 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장자연과 동료배우 진술을 혐의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여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조사 중인 2009년 불거진장자연리스트사건 재조사마감기일이 금년 말이던가?

근디 아직까지 안개속이다. 더욱이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10년으로 지난 8월 초로 만료됐단다. 해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홍종희 부장검사)는 고 장자연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조선일보기자출신 A씨를 급히 불구속 기소했다. A씨와 같이 술자리한 사람들도 공범자범죄로 공소시효가 연장되는 땜이다.

 

허나 A씨와 함께한 인물이 아닌 경우 강제추행 등을 했어도 시효가 끝나 장자연리스트에 오른 자가 실제 성추행을 했다 해도 처벌이 불가하다란 게 법조계의 중론이란다. 그럼 장자연사건은 꼬리자르기로 종결할 건가? 세종대왕이라면 재삼재사 수사를 하명하여 진실을 밝혀냈을 것이다.

1427820, 피골이 상접한 젊은 여인이 아사직전에 거리에 쓰러져있자 의금부관리가 형조에 알려 인계한다. 그 여인이 집현전응교(4) 권채의 여종으로 이름이 덕금이며, 주인의 학대를 못 견뎌 도망 나왔음을 인지한 형조판서 노한은 곧장 세종임금께 아뢴다. 노비학대유기사건 피의자가 27살의 집현전관리로 세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선비여서다.

세종은 상세한 전말을 조사하라고 하명했다. 그니까 9개월(1426.12.11.)전에 격무로 시달릴 것 같은 권채,신석경,남수문 등을 뽑아 사가독서(賜暇讀書;왕명으로 휴가를 줘 사가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게 한 제도) 첫 시혜자로 휴가를 보냈던 걸 세종은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4일간의 형조수사결과는 사실 이였다.

권채는 여종 덕금을 첩으로 삼았다. 덕금이 병든 할머니가 있어 문병가려고 휴가를 청했던바 권채의 부인 정씨가 거절하자 그녀는 허락 없이 할머니병문안을 갔었다. 이를 안 권채의 부인이 앙금을 품고 남편에게 침소붕대 고자질을 한다. "덕금이 요년이 바람이 나 딴 남자를 만나러 도망갔다",

대노한 권채는 덕금을 잡아들여 그녀의 머리까락을 자르고 뭇매질을 하며 왼발에 쇠고랑을 채워 독방에 가뒀다. 부인정씨는 눈엣가시였던 덕금이를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고 온갖 고통을 주면서 밥 대신 똥오줌을 먹게끔 했다. 구더기가 발생한 똥오줌을 먹지 않자 정씨는 덕금의 항문에 침을 쑤셔 넣는 등 온갖 체형을 가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덕금이 구더기똥오줌을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고 진술했다. 세종은 이 보고를 받고 미심쩍어 의금부에서 다시 국문하라고 하명한다. 의금부는 재수사에서 노비 덕금이 딴 놈과 바람피운 탓에 부인정씨가 권채의 허락 없이 덕금을 학대했으며, 권채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라고 부인정씨의 죄만 진술한 거짓보고서를 올렸다.

이른바 꼬리자르기식 축소수사가 이때도 있었던 것이다. 미심쩍은 세종은 의금부에 재삼 재사의 수사를 다그친다.궁지에 몰린 권채부부는 모든 허물을 형조에 떠넘기려하자 사람들은 '글은 알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세종이 단죄를 하며 천고에 남을 명언을 남긴다.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진실로 차별 없이 만물을 다스려야할 임금이 어찌 양민(良民)과 천인(賤人)을 구별해서 다스릴 수 있겠는가" 세종은 권채를 해임하고 유배형을 내렸다. 젊은 관리가 임금의 허락 없이 노비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흉악무도함을 일벌백계로 다스렸던 것이다.<세종실록1427.8.29>

장자연은 드라마꽃보다 남자로 스타의 길에 들어선 신인배우였다. 200937일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이 되었는데 자살하기 직전 총230페이지가 넘는 편지를 남겼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었다. 또한 그녀의 주민등록번호와 지장이 찍힌 문건(장자연리스트)이 발견이 됐는데 편지글엔 복수를 해달라는 비장한 구절도 있었다.

장자연리스트엔 ‘31명의 남자들에게 100여 차례의 술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를 받았다고도 했는데,그들은 권세를 누리는 대기업,방송사.언론사.금융.증권,감독,pd에 자신의 기획사 대표도 있었다.                                                   200710월 신인배우였던 장씨가 조선일보 방상훈사장 아들 방정오 TV조선 전무와 유흥주점에서 술자릴 같이 했고, 2008년 가을에는 방상훈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사장과 박문덕(68) 하이트진로 회장과 권재진(65) 전 법무부장관(당시 대검차장)이 동석한 술자리에 불려갔었다는 참석자들의 증언을 확보했다.

특히 장씨의 로드매니저였던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20081028(장씨모친기일) 김종승대표(장자연 소속기획사)가 주선한 이 술자리의 술값 200만원을 김 대표가 결재했다. 고 증언했다. 그리하여 경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5명을 불구속 입건해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던바, 검찰은 무혐의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짓고 김종승과 매니저만 송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미투운동이 활발한 금년 2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장자연씨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지난달 28일 종료된 이 청원에는 무려 235796명이 서명에 참여하는 등 국민적관심이 높았다. 하여 검찰과거사진상조사위가 장자연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데 그 진상조사기간이 이달 말까지다.

 

이미 구속기소 된 A씨와 공범자로써 공소시효연장을 꾀해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어 파렴치한 권세가들을 의법 조치 할까? 검찰의 신뢰와 명예가 장자연사건 처리에 달렸다 할 것이다. 덕금이나 장자연씨는 권세가의 성노리개로 희생된 억울한 죽음이다. 사랑하는 집현전선비 권채 보단 그의 노비 덕금을 더 헤아려 억울함을 씻어주려 했던 세종의 위민정치가 한 없이 그리운 현실이.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역시 하늘이 낸 백성이다. 그런데 신하된 자가 하늘이 낸 백성(천민)을 노비로 부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인데 어찌 제 멋대로 형벌을 행하여 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1442.7.24. 세종26. 세종실록>

"내가 일찍이(1430. 10. 19) 산달(産月)의 여노비와 산후 100일내에 있는 여노비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남편이 쉴 수가 없어 산모를 간호할 수 없으면 혹 누군가 목숨을 잃을 경우가 생겨 안타깝지 않는가. 하여 산모남편에게도 만30일간의 휴가를 주워 부부가 서로 구원하게 하라"<세종실록; 1343.4.26.>

얼마나 백성을 사랑한 세종임금인지를 절감케 하는 어명이다. 그런 세종의 위민정치 이후 690년이 흐른 지금 우리네 위정자와 권세가들은 어디서 뭘 배우고 어떻게 자랐기에 똥구녕에 침 맞을 짓을 하고 있을까? 조선일보 방씨일가(숙질간)의 협의가 사실이라면 똥침 맞는 것도 아깝다. 권력에 빌붙어 쌓은 파염치 사이비언론인은 도태되야 한다. 

죽은 자는 말할 수 없다고 증인들이 진술한 진상을 뭉개버리고 꼬리자르기로 일관, 무협의 처리한자들과 그 비리를 눈 감고 시침이 땐 자들을 끝까지 추적 발본색원해야 한다. 오늘날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다는 걸 밝히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되고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것 아닌가?

2018. 12. 21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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