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의 요람 선바위골 - 인왕산

 

 

화강암으로 빚어진 인왕산은 독특한 산세만큼이나 녹녹한 스토리텔링이 많지만 무악재로 뻗은 선바위골짝은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요람일터라 인구에 회자되는 얘깃거리가 많다. 그 감칠맛 나는 입담은 아기자기한 골짝의 풍경 속에 녹아 논픽션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하철5호선독립문역3번 출구에서 왼편 여관골목에 들어서면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하는 의구심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치닫게 된다. 낡은 건물사이 골목을 차지한 여관간판은 독립문로 건너 서대문형무소가 낳은 자식들(?)이다. 면회객과 옥바라지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눅눅하게 배어있을 한 많은 애통이 아른거린다.

 

하늘다리에서 본 인왕산

 

주택지를 벗어나 언덕을 내려서면 인왕산인왕사 일주문이 콘크리트언덕빼기에 멋대가리 없이 서있다. 멋 없다기보단 뭔 뚱딴지 일주문일까? 하는 의구심이 솟는다. 또 헷갈리게 하는 건 도대체 인왕사는 어딘데? 이다. 절도 아닌 성싶은 절들이 가파른 언덕에 산동네빈민가들 마냥 서로의 꼴마리를 붙잡고 있다.

 

 

8개종파의 열대여섯 개 절집이 모여 있으니 꿍꿍이 속내를 어찌 다 짐작이나 하겠는가? 1912년경에 선바위 밑에 선암정사(禪巖精舍)가 세워지고 그 옆에 대원암(大願庵), 십년 후에는 극락전과 안일암(安逸庵)이 들어섰다. 그렇게 들어 선 각 종파의 암자는 1942년에 옛 인왕사 탯줄을 잇는 양 인왕사란 통합이름을 쓰게 됐다.

 

다닥다닥 붙은 절간 골목에 까치도 둥지를 틀고

 

글고 8개 종파들은 4년마다 총괄주지승을 뽑아 한 지붕 다가족의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단다. 절인지 부처를 팔아 생계를 연명하는 때때중인지 아리아리할 만큼 속물냄새가 날 것 같은 인왕사경내(?). 그 열대여섯 개의 절집 속에 국사당이란 세 칸짜리 겹집이 있다.

 

 

무속신(巫俗神)을 모시고 푸닥거릴 하고 있는 볼품없는 집이 국사당이라 부르게 된 건 이성계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신위를 모신 탓이다. 국사당은 애초엔 남산에 있었고 호국의 신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 하여 기우제(祈雨祭)와 기청제(祈晴祭)같은 국가의 공식행사를 지냈다(조선왕조실록).

 

 

조선조 후기에 국가적인 행사는 유야무야 됐고 별궁(別宮)의 나인들과 일반인들이 치성을 드리러 왔는데 민중전(閔中殿)도 궁중 나인들을 국사당에 보내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위에 있는 국사당이 눈엣가시처럼 여겨 이전을 강요하여 1925년에 선바위 아래로 옮겼단다.

 

  국사당

인왕산이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인데다 국사당이라는 명칭도 무학대사를 모시는 연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옮길 때 전면 3칸에 측면 2칸에 넓이가 11평인 국사당원형대로 옮겨 복원하였다고 한다. 바닥은 마루, 벽면엔 무신도가 걸려 있다. 기도터이면서 무당들이 굿판을 벌리는 무속신앙의 전당이라.

 

매바위

 

무속굿판이 1년에 100여번 치러지는 국사당은 내부에 비단바탕에 그려진 무신도(巫神圖)18점이 중요민속문화재 17호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암튼 국사당이 여기 골짝으로 옮겨오고 바로 위에 선바위가 있는 통에 골짝일대는 신령스런 기도터가 되어 암자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단다.

 

 

암자가 절집카르텔을 구성해 인왕사로 거듭나면서 무당집들의 밥벌이를 일정 챙겼다고 해야 할 듯싶다. 괴상한 바위와 멋대로 휘휘 굽은 소나무와 찔끔찔끔 솟아 흐르는 바윗골석간수의 인기척은 찾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선입견 탓일까? 인적 뜸한 짙은 녹음 속의 골짝은 으스스하기도 해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선바위

 

선바위, 범바위는 어쩜 민간신앙의 메카 노릇하는지도 모르겠다. 볼 것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고 경치도 빼어난 인왕산무당골짝은 그래서 산님들 발걸음도 잦단다. 선바위는 불교와 무속까지 아우른 민간신앙의 대상이 됐다. 조선개국 때 이성계의 부탁을 받은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면서 5백년 운이 있는 길지라며 기도했데서다.

 

선바위 후면

 

그때 대사는 선바윌 도성 안으로 할 거냐? 밖으로 할 거냐?로 삼봉과 견해 차이를 드러낸 판이었다. 음력4월 어느 밤, 태조이성계가 꿈을 꿨는데 눈이 성벽처럼 쌓였는데 성벽 안의 눈은 녹았으나 선바위 밖의 눈은 쌓인 그대로였다. 하여 잠에서 깬 태조는 삼봉의 의견대로 선바윌 도성 밖에 두기로 했다.

 

 

글자 대사는 긴 한숨을 토하며 이제부턴 중들은 선비들 책 보따리 들고 따라다닐 신세가 됐구나.”라고 한탄했단다. 억불숭유의 발아였던 것이다. 태조가 눈 쌓인 곳을 따라 성을 쌓았다하여 설성(雪城) - 설울(눈 울타리)이라 부르다 후에 서울로 변음 되니 지금의 서울의 어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사는 조선의 운명이 5백 살이라 무궁을 위해 선바위에 천일기도를 드렸다. 그래서 선바위엔 태조부부상, 무학대사상, 석불님을 비롯한 여러 신앙의 상징물이 된 거였다. 오늘도 선바위영험을 갈구하는 신도들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선바위 아래 약수터기도처에서도 치성 드리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있었다.

 

해골바위서 본 선바위

 

꽹가리치며 하는 기도였지만 방해 될까싶어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스냅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복의 사내가 나를 붙잡는다.

어디에 쓸려고 그리 애써 찍느냐?” 허우대 좋은 중년의 사내를 경계해야 되나 싶어 나는

~ , 그냥 그림이 좋아서요, 미안합니다.”라며 기도터를 황망히 빠져나오려 했다.

 

선바위 아래 기도처, 한복의 중년사내 뒤로 석간수샘이 보인다

 

그럴 필요 없어요, 엇다 쓸는지 모르지만 기왕이면 잘 찍으세요. 글고 차도 한 잔 마시고요.” 라며 비닐움막집 문을 열면서 안내를 한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차 한 잔 마시고 사진 예쁘게 찍어 멋있게 소개시켜 주세요.”

취미삼아 그냥 블로그하고 있습니다.”

 

선바위 아래 기도처에서 치성드리는 사람들

 

블로그주소 알면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지요?”라고사내가 물었다.

그럼요, 시시하지만 블로그주소 드리지요사내는 커피를 내밀었다. 그새 장삼복 걸친 두 스님이 나타났다. 사내와 얘기를 나누던 스님 한 분이 저만치 바위굴로 가더니 석간수 한 바가지를 떠 마신다. 사내가 나더러 편하게 사진 찍으란다.

 

 

난 그때야 석굴이 약수터인줄 알고 스님 흉내를 내 약수를 떠먹었다. 어둡고 깊은 바위굴샘에서 길은 물은 시원,무취,무맛이었다.

글곤 몇 컷의 사진을 찍고 사내한테 목례하며 기도터를 돌아섰다.

블로그주소 줘야죠?” 사내가 내 등 뒤에다 속삭였다.

 

범바위 매바위 원경

 

사내는 나더러 담 기회 있으면 다시 찾아주라고 당부했다. 지금껏 무속인에 대한 막연한 경원심을 갖고 있던 나로썬 의외의 신선감 이었다. 신앙이란 게 무심 청아한 사람들의 삶의 한 줄기일 테다. 나처럼 셈하기 좋아하는 약삭빠른 세속적인 사람에겐 위선의 가면이기 쉽다.

 

모자바위, 지난번에 해골바위 착각햇었다

 

욕심에서 발아한 신앙은 신앙자체마저 욕되게 할 것이다. 인왕산무속신앙이 지금도 많은 신도들을 품고 있는 건 가파른 세상살이에서도 순수무욕의 인간들이 많다는 의미일 테다. 선바위 위의 범바위 아래 기도터에도 치성드리는 신도들이 몇 분 있었다. 지난번에 바위이름푤 달았으면 좋겠다고 얘기 했던 보살님을 또 뵜다.

 

범바위, 아래도 기도처가 있다

 

오늘은 보살님에게 궁금한 해골바위터를 묻는다. 바로 아래 소나무숲속에 있단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오리무중의 해골바위가 20m쯤 아래 울창한 송림 속에 있었다. 소나무 숲에 가린 해골바위는 인적이 뜸한데다 안내판도 또렷한 길도 없어 찾기가 어려웠다.

 

 

하여 해골바윌 찾기란 미리 위치를 알고 근처에서 물어야하는 사전정보가 좀 필요하다. 그렇게 찾은 해골바위는 찾을만한 진가가 있다. 영락없는 해골모습의 바윈 기괴하고 거대하다. 여기 무속신앙골에 인연을 맺은 고인들의 혼백을 승천시킨 두개골의 집대성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골바위

 

전망도 끝나게 좋았다. 송림에 둘러싸인 해골바윈 넓은 멍석바윌 앞에 깔고 한양중심부를 조망한다. 뿐이랴, ``모자`매바윌 거느린 채 안산과 남산을 코앞에, 뒤론 인왕과 북악을 호위병처럼 휘둘러치고 있다.

 

 

이 명물 해골바윌 모르는 채 송림속에 은거시키고 있는 건 자연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다. 직선거리로 10m쯤에 한양도성길이 있어 수많은 탐방객들이 오르내리고 있어서다. 그렇더라도 해골바위주위에 가드라인을 설치해 인왕무속골짝의 자랑거리로 시민 앞에 내세웠음 싶었다.

 

 

성벽길을 따라 사직공원쪽으로 하산했다. 즐거운 두 시간의 산책길이었다. 선바위 아래 기도처의 중년사내의 작별인사가 귓가에 맴돈다.

언제든지 찾아주세요.” 내가 이 민간무속신앙골짝의 아름다운 자연이 신비스러움이 좋다고 하자 그가 한 송별사(?)였다.

한양도성

 

중년사내의 환대가 아니어도 나는 두 시간여의 트레킹코스로 인왕산무속골짝을 자주 찾을 테다. 녹음 짙은 별천지를 구석구석 안아보며 아무도 기웃대지 않는 해골바위마당에 앉아 늘어지게 한양시가지를 탐하다 어슬렁어슬렁 성벽을 탈 것이다.

 

성벽끝에 남산타워가 아른댄다

 

글고 사직공원을 산책하다 인왕산둘레길을 따라 무악재하늘다리를 건너 안산자락길로 들면 아파트입구까지 한갓진 산책길을 밟는 것이다. 인구천만 서울도심의 샹그릴라 같은 곳을 무시로 안을 수 있단 행복이라니!

2018. 05

국사당에 안치 된 이성계와 부인 강씨의 영정

인왕산 선바위에서 본 안산

무악재하늘다리와 안산봉수대

하늘디리서 본 인왕산매바위

 

인왕산둘레길의 팔각정

서대문 역사박물관( 옛 서대문형무소)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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