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31의 서울설경

 

설안무 속을 헤집는 햇살에 남산타워가 솟는다

 

새벽창이 유난히 밝다. 겨울밤의 어둠은 깊고 긴 시간만큼 칠흑이 된다. 그 어둠을 밀어내려는 새벽은 힘이 부처서래도 여명이 더딜 것 같다. 어제 밤 소리소문 없이 내린 눈은 여명의 하얀 치맛자락이 돼 누리를 덮쳤다. 소복을 걸친 누리를 파고들고 싶어 날이 좀 더 밝기만을 기다렸다.

 

 

 

금년겨울 들어 눈꽃산행 한 번 해보지 못한 난 안산자락길 설경 속에라도 푹 빠져들고 싶었다. 여덟시에 집을 나섰다. 바지런한 트레킹족들의 발자국이 가볍게 포개져 족적을 남기며 눈길을 텄다. 아침운무를 비집고 뿌연 햇살이 남산타워에 걸렸다.

중앙은 인왕산, 우측 북악산 뒤로 능선을 이룬 북한산의 설경

 

소나무침엽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발이 수정 빛을 발산한다. 계단은 하얀카패트를 깔고 설국으로 안내하고 있다.

운무를 뒤집어 쓴 서울은 수줍은 새색시가 하얀 보자기를 쓰고 아침준비를 하나싶다. 뺨은시린데 시감(視感)은 푸근하여 다분히 몽환적이다.

 

안산자락길의 능안정이 보인다

 

매일 밟는 코스지만 자연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처 몰랐던 숨은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더구나 눈 내린 산야는 황홀경과 신비감을 배가시켜준다. 반시간쯤 자락길을 탐하다 봉원사를 향했다. 봉원사입구 울퉁불퉁 세월을 문신한 푸라다나스 우듬지의 까치집이 궁금하고, 설화만발했을 봉원사풍정이 상상이 안되서다.

 

 

눈덩이 얹은 어깨쭉지가 푹 처진 잣나무 숲 사이로 주름치마지붕의 선이 아름답다. 한기에 떨고 소외된 모든 것들을 치마폭에 따뜻하게 감쌀 것 같은 사찰지붕이 멋지다. 봉원사는 눈 내린 어제 밤에 절묘한 흑백의 콘트라스틀 연출하여 경외심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스님이 시누대빗자루로 사방팔방 길을 내고 있다. 잘 생긴 소나무관목을 품은 석간수가 쪼르륵또르륵 약수를 짜내고 있다. 불자들을 위해 약수는 밤새워 고드름과의 씨름에도 용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울리는 목탁소리가 청아하다. 청음이 산사골찍을 울린다.

 

숲속의 무대

 

갈지(之)자 데크로드 따라 '숲속의 무대'를 향한다. 안산자락길이 뽐내는 숲속의 쉼터-만남의 무대는 울창한 메타세콰이어숲에 둘러싸여있다. '숲속의 무대'에 자리한 모든 통나무의자와 테이블도 메타세콰이어시목(屍木)이다. 

 

 

자락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메타세콰이어숲속에서 메타세콰이어에 걸터앉아, 메타세콰이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는 자기를 확인하는 무대다. 그래 숲속의 무대는 항상 활기가 넘친다. 세상이 몽땅 '숲속의 무대'만 같아라. 얼마나 아름다운 무대냐!

 

푸른숲길의 테니스장

 

나는 어제 오후에 봉화산자락의 노인들의 쉼터인 '꽃동네 요양병원'엘 갔었다. 숲속의 무대완 전혀 다른 쉼터인 그곳에서 자형님이 요양 중이어서다. 깔끔한 병원실내에 묵직한 정적이 흐르는 건 세상과 단절한 무대이어설까? 출입문과 엘리베이터는 보안키가 부착돼 있었다. 외부인들의 방문과 치매환자들의 무단외출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씁쓸했다.   

 

 

만 1년 여만에 찾아 뵌 자형님은 '인큐베이터 속의 노인'이 됐다. 나를 알아보지 못할뿐더러 시선도 촛점을 잃고 의식도 몽롱한 상태지 싶었다. 누나가 옆에서 말을 하면 희미한 기억의 끝을 붙잡고 횡설수설하셨다. 좋아하신다는 백설기떡을 몇 번 당신 입속에 넣어주는 누나에게 '맛있다'라고 칭얼대는 의식 없는 늙은어린이었다.   

 

푸라다나스의 까치집

 

간병인의 도움 없인 아무것도 하질 못하는 자형님은 침대에 종일 누워있는 '인큐베이터속의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거기 입원중인 환자 대부분이 피골이 상접한 자형님과 오십보백보인 노인들로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짠한 한숨만 솟는 막막한 시간 앞에 인간의 덧 없음을, 무력함을 절감하는 시간이 면회였다.

 

봉원사찰 지붕

 

내 부모같은 자형님은 아흔한 살인데 벌써 십여 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내고 계신다. 노년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답이 묘연하다. 내 목숨을 내 스스로 끝낼 수 없단 불행이 인간의 한계다. '만물의 영장'이란 수식어는 자연 앞에 초라한 변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죽는 날을 모르기에 죽음 앞에 무방비 채일 것도 같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을 때를 알고 철저하게 대비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 앞에 초연하게 모든 걸 내려놓는다. 그 주검마저 오로시 자연에 던져 생전에 입은 은혜에 보답하는 밑거름이 된다. 성스런 자연의 순환에 기꺼이 몸바치는 거다.

 

 

헌데 사람은 병든 몸을 세상에 던져 친족과 이웃을 성가시고 힘겹게한다. 의술의 발달은 생명연장을 낳아 인큐베이터 노인은 늘어만 가고, 복지국가가 로망인 국가의 재정은 자칫 요양원에 쏟아부어야 할지 모른다. 생명연장이 이슈화되는 작금의 사회를 고민하며 등골이 휘청일 청년들을 생각해볼 시점이다. 

 

 

 

주검은 매장 아님 화장으로 지구환경을 오염시키는 애물단지로 남는다. 성스런 자연의 순환법칙에 역행하는 우리가 만물의 영장일 순 없음이라. 나의 주검이 인류에, 자연에 밑거름이 되는 길을 찾는 궁리에 올인해야 한다. 잠시동안 앉아 있는 게 힘부치다고 자형님은 침대에 웅크리고 누우신다. 살아있단 의미가 뭘까?

 

봉원사 약수터

 

자형님을 뵈면서 먹먹하듯, 나도 자형님처럼 인큐베이터속의 노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캄캄해졌다. 자형님이, 인큐베이터 노인들이 곧 내일의 내모습이였다.

'숲속의 무대'가 그냥 하해져 일어섰다. 멍하니 데크로드를 걷는다. 사람은 어쩜 젤 짜잔한 하등동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싶은 까칠한 피부의 쉬나무군락이 당당해 보인다. 독일가문비나무숲속의 길에 내린 눈을 치우는 청소부가 거인같다. 한기속에 뿜어내는 그분의 숨결이 따스해보인다. 묵묵히 길을 트는 뒷모습이 늠릅하다. 그분들이 있어 우린 안심하고 오늘을 걷는다.

 

 

까치 한쌍이 지저대서 고개를 들었더니 나목끝에 둥지가 있고, 놈들은 눈 쌓인 가지에 맨발을 디딘채다. 설한파에 끄덕없는 둥지를 만든 놈들은 겨울나기에도 빈틈없이 무장했을 터다. 까치가 길 닦는 분을 지켜보며 봄을 기다리듯 눈덮인 땅속에선 웅크린 생명이 기지개 펼 준빌 할 테다.

 

 

당단풍나무가 가을을 떨궈내지 않고 겨울소복을 했다. 붉으레한 고엽(古葉)위를 덮은 아얀 눈발이 멋진 겨울꽃을 피웠다. 생명을 다한 이파리가 낙엽 이전까지도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지를 말하나 싶다. 

허투름 없는 자연은 그래 아름답다. 

2018. 02. 01

메타세콰이어숲을 관통하는 안산자락길

 

메타세콰이어 숲속의 '숲속의 무대'

 

독일가문비나무숲 자락길 눈을 쓸어내는 청소부

박두진시인의 시비

멀리 북한산능선이~

안산자락길은 나무데크길이 많다

까치집 뒤로 눈 덮인 안산정상이 보인다

 

 

미련때문에 가을을 안고 겨울 한 복판에 선 단풍나무가 이채롭다

 

#위 사진은 안산자락길8km구간에서 촬영한 것임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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