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에 대한 편린
#.
너를 만지기보다
나를 만지기에 좋다
팔을 뻗쳐봐 손을 끌어당기는 곳이 있지
미끄럽게 일그러뜨리는, 경련하며 물이 나는
장식하지 않겠다
자세를 바꿔서 나는
깊이 확장 된다 나를
후비기 쉽게 손가락엔 어떤 반지도
끼우지 않는 거다
고립을 즐기라고 스스로의 안부를 물어보라고
팔은 두께와 결과 깊이까지 적당하다
김이득의 <팔>
#.
1516년경 퇴계선생이 공조판서 발령을 받고 상경하여 한양남문에 이르자 선비들이 모여들어 고명한 유학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요새로 치자면 기자회견?)
그때 열 살쯤 돼 보이는 꼬마녀석이 꾸벅 절하곤 당돌하게 묻는다.
“선생님. 여자의 아래에 있는 소문(小門)을 ‘보지’라 하고, 남자의 양경(陽莖)을 ‘자지’라 하니 왜 그리 부르는 것입니까?”
선생은 온화한 얼굴로 근엄하게 대답한다.
“여자의 소문은 걸어 다닐 때 감춰지는 것이어서 ‘보장지(步藏之)’라고 하는데, 발음하기 쉽게 ‘장’자를 빼고 불렀고, 남자의 양경은 앉아 있을 때 감춰지는 것이어서 ‘좌장지(坐藏之)’라고 부르던 것이 ‘장’자가 빠지고 다시 변음한 것이란다.”
갸우뚱하며 듣고 있던 소년이 다시 물었다.
“그럼 선생님. 여자의 보지를 ‘씹’이라고 하고 남자의 자지를 ‘좆’이라고 하는 까닭은요?”
선생 왈,
“여자는 음기를 지녀 ‘축축할 습(濕)’의 발음을 따라 ‘습’이라고 한 것인데, 된소리를 많이 내다보니 ‘씁’이 되고 다시 변음한 것이요, 남자는 양기를 지녀 ‘마를조(燥)’의 조를 말함인데 발음하다보니 쇤소리로 변음된 것이다.” 라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선생께서 꼬마녀석의 맹랑한 질문에 스스럼없이 자세하게 답해 줬다는 사실이다.
선생은 모든 학문의 근본은 의문에서 시작되고 그 시점은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비롯됨이니 무릇 확실하게 알아야 함을 지론으로 삼는 바였다.
이향상의 <色手語筆>에서 간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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