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사랑


바야흐로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3월의 햇살이 기웃댄 곳에 새싹이 돋기도 전에 꽃망울을 내미는 놈도 있다. 노란 민들레가 길섶에서 방긋 웃더니 와우산자락 달맞이 숲속에서 생강나무가 윙크를 하고, 시샘 난 개나리가 노오란 입술을 내민가 싶더니 산수유가 언덕 밭뙈기에 노란 파스텔톤 물감을 부었다. 3월은 노란빛의 세상인지 아지랑이 햇살마저 노오랗다. 밭고랑의 유채꽃도 부시시 잠에서 깬다.


산수유를 비롯한 노란 꽃잎들은 모둠 피어 떼거리를 이뤄야 매파(媒婆)가 오지싶다. 벌`나비가 귀한 시절이 아니더냐! 짧은 시간에 매파가 와야 수정이 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가을엔 누런 열매가 겨울한파에 빨갛게 멍들어 눈을 업고도 낙과할 생각을 안 한다. 눈덩이 짊어지고 겨울을 나는 빨간 열매를 따서 육즙을 맛보면 새콤 떨떠름한 맛에 얼굴 찌뿌리지만 그 오묘한 맛이 약재나 차의 원료로 애용된다.


눈 속의 빨간 산수유 열매와 마주칠 땐 김종길의 시 <성탄제>가 떠오른다.
“어두운 방 안엔 /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김종길 시인은 1926년 경북 안동 출신의 수재였다. 고려대 영문학과 영국 셰필드대학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한 모더니스트 시인이다.


나는 어릴 때 산수유가 있는 줄도 몰랐으니 ‘아버님 눈 속에 따오신 붉은 알알이’는 언감생심이지만 양약이 없던 옛날의 아버님의 자식 사랑 모습을 애틋이 공감한다. 아픈 자식을 위해 부모님은 뭔들 못 하셨을까! 산수유는 몸이 허약할 때나 허리·무릎이 시리고 통증을 느낄 때 복용하면 효과가 좋아 한약재로 각광을 받았다. 지리산자락 구례나 함안에 12만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있는데, 그중에 몇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도 보냈다고 했다.


뿐이랴. 산수유는 부부의 금실도 좋게 하는 촉진제였다. 늦가을에 수확한 산수유 열매는 씨앗을 제거하고 과육만 모아 건조해 약재로 사용했다. 구례 산동면 아낙네들은 열매에서 이빨로 씨앗을 빼내느라 이빨이 검게 물들었고, 시푸덩덩 부릅 튼 입술은 당(糖)이 베어 잠자리에서 남편이 아내의 입술을 빨다가 일판이 커지곤 했단다. 산동면 사람들의 금슬이 좋은 건 아내의 입술이 밤에 방사(房事)의 도화선이 되곤 해서다.


가을엔 빨간 산수유 열매를 많이 구입해야 할랑가 보다. 아내에게 하루 한 컵씩의 산수유 열매를 꼭꼭 씹어먹는 보약재로 선물하는 게다. 아내가 허리`무릎이 아프거나 기운이 없을 때 좋은 생약이 아닌가! 게다가 밤엔 부부금슬도 끈끈해진다니 아내에게 선물치곤 최상의 상품이라. 그래 산수유열매 먹고 부부가 건강하고 금슬도 좋으면 시인의 독백처럼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인가’라고 감사해 할지다.
2026. 0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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