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금정산 계명봉 & 범어사 암자들


작년에 나는 계명암 트레킹을 하면서 시간이 없어 계명봉등정을 다음 기회로 미뤘었다. 계명암은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금정산 부근에서 절터를 물색하던 중 한밤중에 닭 울음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암자를 세워 계명암이라 명명했단다. 닭이 울었던 산속을 탐방하고 싶었던 나는 오늘 그곳을 찾아가는 트레킹에 나섰다.



계명암입구 좌측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청련암에는 지옥(地獄) 중생(衆生)의 구제를 서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지장원이 엄청 크고 장엄하여 탐방객을 압도한다. 지장보살 아래 수많은 도반과 중생들의 흉상이 천차만별로 자리하여 사바세계를 펼치며 중생들이 사후 극락세계(極樂世界)에 드는 기도의 요람인가 싶었다.



청련암에서 우측에 산잔등을 오르는 계단은 갈지자 형태의 된비알 시멘트길이다. 앙상한 나목들이 우거진 가파른 오름길은 새소리마저 사라진 고적한 행선(行禪)에 반 시간쯤 정진해야 된다. 계단 끝 허공에 계명암 일주문이 하늘문처럼 서있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해우소다. 옹색하기 그지없는 해우소는 전망이 확 트여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해방소다.



해우소를 나와 보덕굴 앞마당의 긴 담장이 천길 벼랑을 막고 건너편 산자락 속에 범어사를 숨겨놨다. 금정산자락 능선과 부산시가지 뒤로 망망바다다. 청명한 날은 대마도가 보인다는데 끝머리 실루엣 같은 게 대마도 같기도 하다. 풍수지리에 멍청한 내가 봐도 계명암은 배산임수의 명당자리라. 계명봉은 일본에서 바라보면 장군의 투구처럼 보이고, 대마도에서 보면 닭의 형상이다.



근디 계명봉에서 대마도를 바라보면 지네의 형상이란다.계명산 봉우리의 형상이 암탉과 수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계명(鷄鳴)’이라 부르는데, 약사전 옆 5층석탑 뒤 50m쯤에 자웅석계(雌雄石鷄)가 있다. 암탉과 수탉바위을 말하는데 범어삼기(梵魚寺三奇) 중 하나다. 지금은 수탉만 남았는데 일본인들이 암탉바윌 쇠망치로 파괴한 땜이다.




청명한 날 계명봉에 오르면 대마도가 보이는데 대마도는 영판 지네형상이고, 대마도에서 계명봉을 보면 닭 볏 모양의 바위라 지네를 쪼아먹는 형국이라 일제(日帝) 때 쪼잔한 일본놈들이 닭벼슬 모양의 자웅석계를 부수고 쇠말둑을 박는 만행을 자행했다. 자웅석계는 원효석대(元曉石臺), 암상금정(巖上金井)과 더불어 범어사삼기로 전설의 아이콘이다.



계명암 오르는 길과 딴판인 동북간에서 불어오는 삭풍이 앙칼지다. 중봉에서 오늘 처음 산님을 조우했는데 생판 모르는 분과의 고지의 마주침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더구나 홀로산님이라 진정한 산꾼일 수 있다는 공감대를 이심전심하는 탓일가 싶다. 계명봉이 첫 산행이라는 내게 그는 계명봉코스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계명봉은 동네 뒷산 봉우리 같았다. 옛날엔 봉수대가 있었다는데 바위산정에 소나무와 푯말이 반색할 뿐이었다. 다만 우측 산자락에 범어사가 명료하게 다가섰고, 금정산 고명봉도 형체가 또렷하며 부산시가지와 부산컨트리클럽이 발아래 펼쳐진다. 천여년 전 의상대사도 범어사-계명봉-장군봉-고담봉코스를 소요했을 테다. 불원간 나도 이 코스의 스님행적을 좇아가고 싶다. 흐뭇한 트레킹이었다. 2025.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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