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건 여름을 위한 헌화(獻花)


엊그제도 남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졌다는데 서울엔 ‘호랑이 장가가는 날’ 기미도 없습니다. 폭서를 피한답시고 여명에 안산초록숲길을 소요하는 나는 이틀이 멀다하고 천년고찰 봉원사 경내를 얼쩡댑니다. 여명 속에 피어나는 연꽃과 백일홍이 한껏 짙은 화장을 하고 인사를 해섭니다. 새벽의 신선한 공기에 화사한 꽃무리의 인사는 뜨건 하루를 보내는데 감로수 같은 청정에너지가 됩니다. 극한폭염 속의 봉원사의 여름꽃 - 연꽃과 백일홍(배롱나무)은 짙은 연지곤지 화장하느라 개화삼매(開花三昧)에 들었습니다.



연꽃의 생명력은 1000년 묵은 씨앗에서도 발아(發芽)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비의 꽃이지요. 연꽃씨앗은 얼마나 단단하던지 인공재배하려고 씨앗을 망치로 때려 부수거나 불로 지져대도 멀쩡하답니다. 쇠줄 톱으로 껍질을 잘라서 까내야 합니다. 그런 연꽃은 발아와 동시에 성장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습지 전체를 덮어 경탄케 합니다. 연꽃은 새벽에 활짝 만개하고 대낮엔 꽃잎이 닫히거나 시들어 버립니다. 부처 꽃이라고도 부르는 화사한 연꽃이 봉원사 여름을 깜박 잊게 합니다. 우리나라 연꽃방죽의 시원은 시흥 관곡지(官谷池)입니다.



조선조 세조(1463)때 학자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이 39세 때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가 되어 명나라 사신으로 남경을 방문하여 그곳 ‘전당지’라는 연못의 연꽃 씨앗을 선물 받아 귀국합니다. 강희맹은 시흥 자기 집 옆 늪지 - 관곡지(官谷池)에 연씨를 심고 시험 재배하여 발아에 성공합니다. 그래 시흥에선 연꽃테마파크를 조성하여 매년 ‘연꽃축제’를 열고 있는데 몇 년 전 지기(知己) C의 안내로 답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연꽃뿐 아니라 식물과 곤충의 생명은 1회성이 아닌 다년생임을 뽐냅니다. 죽어 사라진 곳에 이듬해 새싹이 솟습니다.



“남쪽 창 앞에 종일 앉아 세상 일 잊었노라.
정원에는 사람 없고 새는 날기 배우네.
부드러운 풀의 그윽한 향기를 찾기 어려운 곳인데
맑은 안개와 지는 해에 보슬비가 내리네.” - 사숙제의 시 <앓고 나서 읊음(病餘吟成)> -


사숙제의 시 <앓고 나서 읊음(病餘吟成)>은 자연현상에 대한 경이를 환후(患候)의 시각으로 붙잡은 독백입니다. 어쩜 관곡지연방죽의 안개비를 응시하며 자연의 신비에 천착한 경지일까 싶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풀꽃들의 자생력이 우리들보다 더 발달한 유전자를 소유했지 싶지요. 100년도 채 못 사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거만 떠는 걸 그들은 콧방귀쯤으로 여길지 모릅니다. 인간의 우월성은 단 하나 생각하는 동물이란 점이지요. 생각을 글로 적어 천만년을 인구에 회자시켜 읊으니 말입니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그의 연시(戀詩) <자미화를 읊다(詠紫薇花)>에서 세대를 초월한 사랑의 질투와 시샘을 노래합니다. 송강 선생이 전라도 남원에 관찰사 머물던 1582년, 남원관아 연못에 섬 세 개를 만들어 배롱나무, 대나무, 연꽃을 심고 정자를 세웠습니다. 그때 나이 어린 기생 진옥(眞玉)이 찾아와 평소에 송강의 글을 읽고 사모해 왔노라 하며 즉석에서 시문을 읊조립니다. 송강은 그녀의 샘솟는 기지와 담대함과 비상한 가야금선율에 고적한 마음을 달래고 우울함을 잊었습니다.


그렇게 48세의 송강과 십대의 진옥은 연정을 키워 사랑에 몰입합니다. 영계를 품안에 안은 송강은 진옥의 머릴 얹어주고 이름도 자미(紫薇)라 불렀습니다. 송강은 도승지가 되어 한양으로 떠나면서 자미에게 시 한수로 석별의 정을 나눕니다. 자미(眞玉, 紫薇)에게 홀딱 빠진 송강의 연정과 질투심이 홍건이 묻어나는 시입니다. 배롱나무를 의인화시켜 연심을 읊은 송강의 흉중(胸中)은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함을 실토함이지요.



“一園春色紫薇花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피었는데
纔看佳人勝玉釵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 망루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지 말거라
滿街爭是戀芳華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다투어 네 모습 사랑할지니.” -<자미화를 읊다(詠紫薇花)>-


시 <자미화를 읊다(詠紫薇花)>는 송강이 진옥에게 베갯머리 속삭임으로 다짐받고 싶은 이별가이기도 합니다. ‘진옥아! 행여 문밖출입으로 저잣거리 어느 누구 앞에도 나서질 말거라’ 라면서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있으라는 흉금을 표현한 투정이고 당부였습니다. 50대의 노인이 30여살 연하의 애인이 바람피울까 봐 심려했는데 그 절절한 연심을 배롱나무를 통해 지금까지 간절하게 읊어지고 있습니다. 봉원사경내 연꽃과 자미화를 탐닉하며 유난히 뜨건 여름피서에 나를 잊곤 합니다. 불광불급 (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이라 했습니다. 2025.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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