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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암, 병상병기

퇴원 - 암은 극복해야할 친구란 멍애



2010. 07. 12 월.

어제 아침에 제거했던 실밥 끝과 철심을 제거하며 오선생님은 잘 아물렀다고 했다. 오늘이 수술한지 꼭 7일째고 내일은 별일 없음 퇴원할 날짜다.

내 스스로도 수술경과가 좋다고, 개복시의 복부상처도 깔끔하게 낫고 있어 우쭐해 하는 난 속으론 신바람이 났다. 소이연은 병원에서 준 수술 전후의 환자상태를 안내한 책자에 기술된 데로 쬠의 부작용 없이 그대로 치유돼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어서였다.

사실 난 속병은 모르겠으나 겉으로 난 상처는 소독 한 두 번만으로도 깨끗하게 낫곤 한다. 거기에 평생 아프질 않아 약 복용한 적 없어 약효는 백퍼센트 발휘할 거라고 생각하는 바고, 또한 어떤 지병도 없기에 웬만한 건 자신감이 넘쳤던 까닭이다. 그 자만이 위암을 낳았지만 말이다. 근데 오후나절 들어 불안감이 서서히 도진다.

내일 퇴원예정인 환자들 대게는 퇴원후의 치료에(항암치료 여부) 대해 어떤 식으로든 얘기를 들었다는 데 나만 일체의 언질이 없었다. 궁금하여 묻자 오선생이나 수간호사님도 걱정하지 말라면서 손교수님께서 직접 오셔 자세히 얘기 할 거란다.

왜 나만 손교수님이 직접 얘기해 줘야 할 특별한 뭔가가 있고, 그건 도대체 무엇 땜인가?

예감이 좋을 리가 없다. 나보다 초조했던 아내의 불안은 늦은 오후에 회진 차 오신 손교수의 말을 듣곤 고뇌의 똬리를 틀어 안고 말았다.

손교수님의 얘긴 즉, 나의 위암은 조기위암1기가 틀림없었으며 때어낸 위에서 조직검사를 한 결과가 의외로 임파선에서 암세포 2개가 발견 돼 내과선생님과 상의해 결정을 하겠단다. 그러니까 암세포 2개의 발견은 1/3남아있는 위나 다른 장기에도 존재할 가능성을 배재할 순 없고, 그렇다고 반드시 다른 장기에 존재하고 있다고, 나아가선 존재하지 않다고확신할 수도 없어 진지한 상의를 해보자는 거였다. 그 결과는 내과선생과 상의하여 낼 얘기하자는 거였다.

안심하고 있다가 급소를 한대 얻어터진 기분보다 더 아프고 기분 잡쳤다. 제일 기분 나쁜 건 불확실성이다.

조기1기 위암환자에게 있어 10~20%정도 발견되는 임파선암세포가 하필 내게 발생함은 그간의 나의 안일한 삶에 대한 경고가 한 번의 수술론 가볍다고 생각한 신의 배려(?)인가?

그 정도는 몇 차례의 항암치료로 (예방)완치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한 수술도 거뜬히 이겨냈는데 걱정할 건 없단다. 맞는 말이다. 모든 병의 치료는 의지가 좌우한다. 손교수님 말씀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난 시무룩해진 아내를 다독거릴 소재 찾기에 골몰했다.

그간 건강의 고마움을 통감하지 못하고 살아온 건강무시 죄 값으로 담금질 기간을 좀 더 주는가싶다고 편하게 받아들이자고 말이다. 난 무쇠도 녹일 자신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민우교수를 불렀다. 아내가 이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고, 그래서 안심할 수 있음 그도 한 방편이겠다 싶어 바쁜 그를 불렀다. 한결같이똑 같은 얘기였다. 교수님을 믿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였다. 그러면 수술이전 상태의 건강을 회복할 거라고 확신한다는 격려였다. 아내도 좀은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사실 난들 달리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쁜 그의 시간을 뺏어 미안했다.

여기서 김현정 수간호사님의 얘기를 해둬야겠다. 그 분의 친절이야 기본일 테니 라고 넘겼지만 해박한 지식, 많은 환자들의 병세를 일일이 꿰뚫고 있는 총명에 감탄했다. 퇴원후의 자가 치료에 대해서의 어드바이스도 자상하고 설명도 간단명료하여 병원에 둔치인 내가 속 시원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 이였다.

사실 교수님의 회진시간은 짧아 상세한 얘길 문답하기엔 한계가 있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아니다, 몇 분의 의사를 대동하고 나타나선 환자의 상태를 일별하곤 최소한의 말 몇 마디만을 뱉고 훌훌 떠나는 회진이란 게, 환자의 입장에선 아쉬움이고 나아가선 그렇게 절제하는 행위가 마치 의사의 권위인가 싶어불편하기도 했다.

워낙 빠듯한 일정 땜에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순 없겠다 싶지만 가장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선택)주치의사와의 면담의 갈증은 환자들의 숙원일 것이다.

수간호사님은 그런 미흡함을 풀어주는 거였다. 그동안 ‘백의천사’란 낱말을 입가에 되 뇌이기만 했던 내가 간호사란 어떤 분들인가를 삼성병원에서 절감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수간호사의 인품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병원은 간호사의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에 의해 유지 된다 할 것이다. 난병원에서의 간호사의 비중이 얼마나 지대할 것인지를 상상을 절했다 하겠다. 의사가 병원의 아이콘이라면 간호사는 병원의 얼굴이라. 간호사가 미소를 잃지 않을 때 병원은 비로써 치료기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수간호사님의 언행에 감동받아 난 나의 책 한 권을 선물하여 고마움을 덜고 싶었다. 의외의 선물에 수간호사님도 반색이셨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이 결코 짧지만은 아니했다. 홀가분하지도 기쁘지도 안했다.

다음 치료수순에 대해선 완전미지인 채다.

^^* 오전 11시 강의실에서 퇴원 후 식생활에 대한 유익한 영양교육을 받았다.

^^* 퇴근 때 명오 내외가 일식초밥을 마련해 와서 직원식당에서 가족들이 흐뭇한 시간을 보냈다.

# 조식 - 흰죽(100g) * 2. (쇠고기)무우국(100cc). 우유.

가자미지짐(). 단호박조림. 계란찜(1). 물김치(국물) * 2

# 중식 - 닭죽(100g) * 흰죽(100g). 무채된장국(100cc) 삼치양념구이( ).

돈수육(1). 물김치(국물) * 2. 토마토.

# 석식 - 장국죽(100g) * 흰죽(100g). 무채된장국(100cc). 오이나물.

임연수양념구이(). 제육장산적(1). 물김치(국물) * 2. 그린비아(프로틴)

2010. 07. 13 화.


아침 일찍 오 선생님이 철심을 제거하고 흰 테잎으로 상처자국을 가려놓았다. 3일 후엔 테잎을 때고 샤워를 할 때 물이 닿아도 괜찮단다. 한 달 후엔 샤워나 탕 속에 들어가도 된단다. 오 선생의 친절과 이지적인 인상이 병상의 나를 내내 기쁘게 했었다. 고마웠다.

나는점심까지 들고 퇴원키로 했다. 근데 10시를 넘겨서야 기다리던 내과의사께서 오셔 8월10일 면담시 항암치료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하잔다. 몹씨 기다렸는데 좀 싱거웠다. 궁금사항이 넘 많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좀 바빠서겠지만)교수님들의 지극히 사무적이면서 절제된 언행은 어쩜 시니컬한 느낌이 들어 응어릴 남기기 십상인데 간호사님들이 그런 서운함까지 위무해 준다할 것이다.

손교수님도 그때 뵙는 걸로 일정이 잡혔단다. 하긴 지금 뵙고 뭘 안들 방편이 없으리라. 의사께 맡기고 최선을 기대할 수밖에 없겠다.

8월10일 오후2시에 채혈실에서 피검사 및 x-레이검사를 하고 3시에 손태성교수님 면담, 3시40분 이지연교수 면담에 이어 4시엔 영양교육을 받는다는 일정을 통보받고 퇴원을 해야 했다.

며칠에서 열흘간 동병상련을 함께했던 673호실의 환우들과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병원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없었다. 찝찔했다. 어떤 앙금 한 덩이를 미쳐 때어내지 못한 착잡한 심경으로 나서야만 한 불운을 되씹어 보았다. 아니, 7월3일 입원 시보다 더 불확실한 미제들이 퇴원을 편치 않게 하였다.

오후 1시반, 큰애의 차로 내 생애 가장 극적이고 버거웠던 시간을 보냈던 삼성병원을 나섰다.

연세대 위암전문의 노성훈교수가 그의 책에서 말했듯이 '암은 생의 친구(동반자)이기에 떨쳐버릴 수 없는 오직 극복해야할 대상일 뿐'이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이젠 나의 의지와 긍정적인 삶에의 자세로 암을 이겨가야 하는 게다. 여태처럼 자신감을 잃지 않음 된다. 열흘간의 입원 속에서도 나는 다른 분들에 비해 얼마나 강건했었던가!

두려움은 병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가족들에게 나의 그런 결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함이다.

병원생활동안 겨우 3kg의 체중감소가 나의 성공적인 투병력을 말함은 아닐지?

# 조식 - 흰죽(100g) * 2. 시레기된장국(100cc). 무나물.

쇠고기셀러리볶음(1). 연두부찜(1). 물김치(국물) * 2. 우유.

#중식 - 닭죽(100g) * 흰죽(100g). 미역국(100cc).

쇠장조림(1). 시금치나물. 칼치지짐(1). 물김치(국물) * 2.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