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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운길산 - 수종사 - 물의 정원

운길산 - 수종사 - 물의 정원

운길산 원경

오늘도 하늘은 잿빛구름을 잔뜩 껴안은 채 비 뿌림에 인색하다. 열시 반, 운길산역사(驛舍)를 빠져나온다. 가을장마마저 가문 수도권의 들판은 초록물결이 넘실댄다. 운길산자락 논배미의 나락과 밭뙈기의 부추는 죄다 하얀 싸래기꽃 한 다발을 모가지 끝에 달고 춤을 춘다. 모진여름을 이겨낸 가을이 새삼 싱그럽다.

북한강변

운길산 짙은 녹음터널 속을 헤친다. 밤송이가 때깔을 갖춰가고 탐스런 도토리가 지천에 깔렸다. 영락없는 가을이라. 울`부부가 한때 도토리묵 빚어먹는 재미에 빠졌던 도토리가실산행 얘기로 빡센 산길을 더듬었다. 촘촘히 널려있는 씨알 큰 도토리에 탄성을 지르며 골짝경사로를 오른다. 오부능선부턴 멋들어진 소나무들의 춤사위까지 펼쳐진다.

▲운길산등산로의 솔춤▼

솔 춤을 완상하며 도토릴 밟는 된비알산행은 정상까지 이어져 운길산의 초가을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두 시간여 만에 정상에 섰다. 북한강과 철교, 저 너머 두물머리가 묵화마냥 펼쳐진다. 적갑산과 예봉산능선 뒤로 검단산이 갸웃거린다. 9년 전 폭설 속에 처음으로 여기 정상에 섰던 설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운길산정상은 넓은 데크마당으로 둔갑했다. □안 그림은 한창 여물고 있는 도토리

근디 그때의 바위정상은 사라지고 20평쯤 될 데크마당이 됐다. 운길산정도 지각없는 지자체 탓에 데크에 깔리는 불행한 운명에 처한 꼴이다. 운길산정은 울고 있다.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빗발과 이별해야하는 신세한탄에 언제까지 피멍들고 있어야 할까? 불쌍한 운길산정을 내려선다. 수종사를 향했다. 내리막길이 사뭇 가파르다.

운길산정상을 오르는 데크계단 뒤로 정상을 데크상자로 가뒀다

울창한 활엽수가 애초부터 솔 춤을 허락하지 안했다. 가파른 내리막은 다시 수종사를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낳아 해탈문으로 빨려든다. 세조를 홀렸던 왼쪽의 바위굴 석간수는 지금 수도꼭지로 모아져 종소리 같은 공명음은 없다. 공명음의 바위굴 위에 응진전이 들어서고 그 위에 산령각이 돌계단으로 이어졌다.

수종사 해탈문을 향하는 계단
응진전 아래 바위 밑이 약수터다

1458년, 세조가 금강산에서 오대산을 들려 환궁하다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났다. 달빛 괴괴한 새벽을 깨우는 범종소리에 잠 설친 세조는 종소리 난 곳을 찾아보도록 했다. 신하들이 운길산자락을 수색하다 발견한 바위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종소리공명이었던 것이다. 세조는 그 굴속에서 18나한상을 발견하고 이듬해 절을 크게 중창하여 수종사(水鍾寺)라 했다.

▲응진전과 산령각에서 조망한 수종사경내▼
산령각

왕실의 원찰이 된 수종사 대웅전 옆에 ‘세존사리탑’과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세존사리탑 안의 은제도금 육각 사리함엔 “태종 이방원과 의빈 권 씨의 고명딸인 정혜옹주가 요절하자 딸의 극락왕생을 위해 부처님의 사리탑을 문화류씨와 금성대군이 세종 21년(1439) 10월에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봉안됐다. 이 사리장엄은 보물 제259호로 보호받는다.

▲팔각오층석탑과 금동삼존불▼

팔각오층석탑 속엔 금동부처님이 가득 모셔져 있었는데 탑신석의 금동불함 속에서 석가모니불, 반가사유 미륵보살, 지장보살 등 금동삼존불이 발견됐다. 그리고 성종의 수명장수와 자식들이 복락을 누리길 바라는 명빈 김씨(施主 明嬪 金氏) 명문이 있고, 복장 안에는 성종의 후궁들인 숙용 홍씨, 숙용 정씨, 숙원 김씨가 1493년에 발원한 복장발원문도 나왔다.

▲세존사리탑과 팔각오층석탑 전면
약사여래삼존불(하)과 사리탑에 소장된 사리함 내함과 외함(상)

맞은편에 삼정헌(三鼎軒)이 있는데 정오엔 차를 무료 보시한다. 수종사석간수로 빚은 차는 향과 맛이 그윽하여 인구에 회자되어 명사들이 애호했다. 다산 정약용, 동다송을 짓게 한 정조의 부마 홍현주, 차의 신선 초의선사가 수종사를 자주 찾아와서 차를 즐겨 마셨던지라 삼정헌이라 했다. 삼정헌에서 조망하는 북한강일대 경치는 묵화의 극치를 이룬다.

▲삼정헌 툇마루에서 산님들이 휴식. 우측 모서리에 약수터가 보인다
삼정헌 옆 전망대에서 조망한 두물머리 풍경

꽃과 신록과 단풍과 설경이 사계의 아름다움을, 두물머리에 비추는 일출`일몰`운해는 선경을 빚는다. 하여 서거정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극찬했고, 초의선사 등 수많은 한량들이 찾아와서 차를 음미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시에 녹여냈다. 삼정원에서 찻잔을 들고 커다란 창을 통해 두물머리를 관망하다보면 절로 시인이 될 성싶었다.

삼정헌-정오에 셀프차를 음용하며 창으로 밀려드는 북한강풍경에 빠져들면 시인이 될듯 싶다
대웅전

두물머리쪽 북한강변에 살던 다산정약용은 수종사의 특별한 삼락(三樂)은 “동남쪽 봉우리에 붉게 물드는 석양을 보는 즐거움, 강 위에 비추는 햇빛의 반짝 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프리즘의 즐거움, 한밤중 휘영청 밝은 달빛 속에 은근한 주변을 보는 즐거움”이라 했다. 수종사 삼정원 옆 전망대에 서면 다산선생의 삼락을 공감할 듯싶었다.

대웅전불단
범종각과 500여살 된 은행나무의 위용

세조가 수종사 중창과 동시에 심었다는 500여살 된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높이 35m, 둘레 6.5m로 우람한 자태에 혀를 차게 한다. 품안에 보듬은 종각의 아우름은 북한강의 두물머리 풍경까지 끌어들여 순례자들에게 최상의 치유처가 된다. 벤치에 앉아 북한강을 어루만진 강바람에 나를 맡기다보면 시간도 나도 잊는다.

송촌리 이덕형별서터를 향한다. 울창한 활엽수터널 조붓한 숲길은 여간 가파르다. 알사탕만한 도토리가 수북히 널렸는데 멍청한 멧돼지는 땅을 마구 헤집어 놨다. 놈은 지금 어디 후미진 아지트에서 폭식한 도토리 소화시키느라 할딱거릴 테다. 도토리로 빵빵 채워진 배낭과 손가방을 든 노파 한 분이 거북이처럼 하산하고 있다. 도토리천국을 독식하는 노파는 멧돼지 못잖게 세상에서 젤 행복할 것 같다.

은행나무 쉼터에서 조망한 두물머리와 북한강철교

1613년 영의정 한음 이덕형(42세)은 영창대군 처형과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 반대하다 삼사(三司)의 불가상소를 받았다. 광해군은 그의 관직을 삭탈하고 한음은 용진(龍津,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으로 귀향해 병사했다. 송촌리 사제(莎堤)마을의 별서(別墅, 별장)는 선생이 45세 때 부친을 봉양하고 여생을 보내려 지은 ‘대아당(大雅堂)’이라. 선비정신의 귀감처이기도 하다.

▲한음 이덕형의 별서▼

벗들과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 고터 - 대아당엔 시고목(屍古木) 두 그루가 헤쳐 온 풍상을 대변하나 싶다. 성역은 잡초가 무성하고 건물은 쇠락했다. 운길산정상을 데크마당 만든 돈으로 한음선생의 별서를 단장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운길산정상은 데크상자에 갖혀 숨통 막혀 울고, 별서-대아당은 헐벗어 통곡한다.

별서 마당의 시목이 돼가는 은행나무고목

‘물의 정원’을 향한다. 북한강변을 산책로와 자전거길로 단장하면서 자연친화적 공원을 조성했는데 난 여태껏 벼르다가 오늘 아내와 트레킹에 나선 셈이다. 녹색초지와 푸른 강물을 가르는 산책은 한량 짓의 멋과 맛에 취해 모처럼 나를 발견케 된다. 축 늘어선 수양버들이 강바람 타고 벌리는 퍼포먼스는 수면 위에 신비경을 일군다. 아! 물의 정원에서의 몰입경이라니!  밴치에 앉아 강물에 나를 띄워라, 글고 눈 지긋이 감고 나를 찾아보라!             2021. 08. 30

▲마음정원 산책로▼
자전거전용길과 인도
▲물의 정원과 산책길▼
우측 산릉에 예봉산 양수리강우량측적 레이다기지가 보인다
▲물의 정원▼
▲물의 정원▼
물의 정원의 연지
부추꽃밭
▲하 많은 세월을 내공들여 익힌 기똥 찬 솔춤은 등산초입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운길산정상을 뒤덮은 데크마당 일부
정상서 조망한 두물머리
적갑산능선
▲놈들의 멋진 춤사위에 빠지다보면 빡센 산행도 힘겹질 않다▼
운길산정상 턱밑의 평상쉼터
잣나무군락지 쉼터에서
참나무에  막 피어난 버섯, 약용으로 채취하려다가 아내의 반대로 포기했다
버섯보다 탐 나는 건 지천으로 깔린 왕도토리였다
▲마음정원의 쉼터에서 북한강을 가슴 터지게 안을 여인이 다분히 낭만적이다▼
▲머물고 싶은 곳, 걷고 싶은 곳, 느끼고 싶은 곳, 품고 싶은 곳 - '물의 정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