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걸어가는 길 - 산행기

눈꽃세상 덕유산의 신비경

 

눈꽃세상 덕유산의 신비경속에서

 

-설천봉에서 오르는 눈꽃속의 향적봉-

 

이번 주말이 이번 겨울 들어 젤 춥다고 기상청은 겁박(?)하나 싶었지만, 그 예보는 덕유산엔 상고대가 만발할 거란 낭보이기도 해 나는 토욜 새벽부터 달떠 있었다. 겨울 들어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않았기에 눈꽃세상은 아직 이였다.

어두컴컴한 새벽산야는 덕유산을 파고들수록 희끄무레하다.

 

9시 반, 무주구천동 골짝은 하얗다. 살아있는 건 여린 물소리요 살갗을 파고드는 한파다. 물의 노래도 안간힘 쏟아 개울의 두꺼운 얼음을 뚫으며 부르는 실개울물의 뒤척거림 이였다. 옛날 9000여명의 스님들이 살았다던 구천둔(九千屯)골짝에 이젠 산님들 구천 여명이 야단법석을 떠는 구천동이 됐다.

 

깊은 구천동골짝은 삭막했다. 깔린 눈들이 산님들의 아이젠신발에 밟히며 내는 비명에 어수선할 뿐이다. 33경들이 눈에 파묻혀 팻말만 고갤 내밀고 있는 펑퍼짐한 산길4km는 백련사까지 이어진다. 그 많던 스님은 다 어딜 가고 적요한 백련사엔 정관당스님의 부도가 하얀 모자를 쓰고 우릴 맞는다.

-겨우살이군락지-

 

스님은 서산대사의 제자로 이 골짝에 선풍을 드높인 선승이다. 찬바람경내를 관통하여 삼신각 옆구리를 휘돌아 본격 산행에 들었다. 가파른 눈길은 팍팍하고 빡세다. 겨우살이가 푸른하늘에 둥지를 틀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땀이 스멀거린다. 외투를 벗었다. 가픈 숨을 멈추게 하는 건 설경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눈꽃의 세상은 점입가경을 이루고 신비경은 하늘을 향한다.

 

 

한파를 몰아가는 잿빛구름꽁무니에 햇살이 걸리고 느닷없이 해님이 얼굴을 내밀면 눈꽃세상은 현란하게 눈부시다. 저쪽 산비탈엔 다이아몬드가루를 뿌려놨는지 영롱한 빛이 수 없이 반짝 명멸한다.

그 빛의 요술경에 취하느라 빡센 계단을 잊는다. 근데 뜬금없이 무자비하게 비듬가루가 쏟아진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면 삭풍이 눈꽃을 거칠게 애무하는 거였다. 소름끼치게 차가운 비듬세례도 싫지가 않다.

 

분패 속에 나를 던지는 발걸음도 어드벤처의 스릴을 맛보게 해 신났다. 분패가 몰아쳐도 눈꽃은 살아있다. 얼음나무위에 붙은 티밥 눈가루가 한파를 타고 흩날린다.

얼음꽃 세상이라! 깨 벗은 나무는 습기로 마사지를 하다 얼고 또 얼리다 부름뜨고 째지는 상처 나기를 겨우내내 지속한다. 그렇게 피운 상고대는 피부에 멍에를 남겨 나이테를 만든다.

-쪽빛바다속의 산호초-

 

모질게 겨울을 난 놈이 나이테도 선명할 테다. 더는 봄엔 꽃도 황홀하게 피울 것이다. 나목들은 지금 눈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나이테를 만들고 있을 것 같다. 분패치는 향적봉(香積峰1614m)정상엔 울긋불긋 인파의 꽃이 피었다.

이 강추위에 떠밀리다시피 하는 인파의 행렬이라니! 주목향기가 아닌 사람냄새 씻으려 분패치는 지는지도 모른다. 대피소로 향한다.

-향적봉대피소 길-

 

바람막이 찾아 끼닐 때우기 위해서다. 허나 바람막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리 없다. 바람막이 한곳은 산님들이 이중삼중으로 서서 기갈을 해결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겨울산행 땐 걸으면서 먹는 간단한 행동식으로 끼닐 해결한다. 오늘은 L이 동행해서 대피소까지 내려왔는데 다행으로 자릴 비우는 산님과 맞닥뜨려 끼어들었다.

 

-산호초-

 

설천봉을 향한다. 상고대절정지대가 그 쪽이라 내친걸음인데 인파에 떠밀려 종종걷기질 외 자유박탈지대였다. 사진 한 장 폼 잡고 찍을 여유가 없었다.

오후2시 무렵 우린 되돌아서 원점회귀 귀로에 들었다. 회색하늘이 이따금 창을 열고 푸른바다를 만든다. 푸르디푸른 하늘바다 속에 하얀 산호초가 무성하다. 토실토실한 산호 숲 어딘 가에서 금방 물고기가 헤엄쳐 나올 것만 같다.

 

 

잠수복 없이 심해를 유영하는 환각의 신비경에 빠져들었다. 푸른바다는 사뭇 쪽빛으로 물든다. 투시경에 뵌 튼실한 산호초는 뽀송뽀송한 솜털을 세우고 바르르 떨고 있다. 심해 산호 숲에서 조망하는 사위는 청명하다.

산준령들은 얼룩말이 돼 수평선속으로 사라진다. 겨울이 빚는 고산의 신비경은 죽을 둥 살 등 찾아오는 산님만을 위한 자연의 무상보시일 것이다.

 

 

고산은 일 년에 두 번 꽃 피운다. 아무산, 아무들에서 피울 수 없는 순백의 얼음꽃을 겨울고산은 무성하게 꽃피운다. 용기와 신념이 좁쌀만 해서 언제나 생각으로만 끝나는 나는 오늘처럼 고산눈꽃 밭엘 오면 하룻밤이라도 묵고 싶단 생각 간절해진다.

아! 별이 총총빛나는 고산에서 겨울밤의 또 다른 신비경을을 품에 안는 상상만하다가 늙은 꼰대가 돼 버렸다. 아쉽다고 할 때가 적기라고도 한다지만~?

 

 

젊은 청장년들은 그 어떤 일보다도 앞서 고산에서의 겨울밤을 지새워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마 밤새운 담날의 자신은 얼마나 위대(?)해 졌음을 실감할 것 같다. 얼마나 담대해지고 가슴팍 넓어질 것인가~!

자연은 품에 안으면 안을수록 고매한 사람이 될 것 같다. 인파땜에 아까 못한 향적봉인증샷을 옆치기로 후다닥하곤 하산길에 들었다. 인파에 몸살기 앓을 것 같은 향적봉이 스산하다.

 

 

지금도 올라오는 산님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형세였다. 곤돌라로 하산할 산님들일까? 곤돌라가 덕유산을 망가뜨린다. 곤돌라가 사시사철 인파를 실어 날라 산을 황폐화시킨다. 근데도 설악산을 비롯한 유명산에 곤돌라설치를 다시 쟁점화 시킨다나?

내고 이름 내기 좋아하는 지자체장들 이젠 안 뽑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개발독재향수에 젖은 구세대들은 새해부턴 물러섰으면 싶다. 지네들 자식, 손주들을 위해서라도~!

 

 

덕유산이 지금처럼 인파에 부대끼기 전에 덕유산세가 좋아 미치고 환장한(?) 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영국의 데일리매일신문사회장이었던 러더미어3세다. 그 분은 한국여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왔을 때 덕유산을 찾았었다. 그 분의 장모인 최낙순씨가 백련사의 독실한 불자여서 장모님 따라 백련사를 몇 번 찾았던 것이다.

덕유산과 구천동골짝의 풍정이 너무 좋아 죽어서라도 덕유산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했다.

 

 

백련사부도밭에 러더미어3세와 그분의 정모님인 최낙순여사의 부도가 나란히 있다. 영국의 신문사회장이 반해버린 덕유산! 사람들 소리보다 골짝물소리와 새소리가 낭창한 구천동계곡! 품 넓고 융숭해서 편히 쉴 수 있는 산! 

유치하게 지 이름석자 어디 눈에 띄는 데에 남기려 타산도 맞지 않는 관광개발을 밀어붙이는 지자체장은 러더미어3세부도 앞에서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자연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후세들을 위한 잠시동안의 위탁물일 뿐이다.


 

온몸을 쓰러뜨릴 듯 휘몰아치는 바람

우듬지로 재우고

잎을 떨어낸, 상처 난 자리에도

꽃을 피우고야 마는

나무

 

뿌리가 밀어 올리는 거한 숨, 뜨거운 열정

얼음장 같은 난로 품어야

선명한 나이테 하나 더 그려내고

둥글게 내면을 살찌운다는 거

싹둑 잘려진 나무의 밑동이 보여주고 있다”

                                     <남명숙의 ‘상고대’에서

 

-멀리 중봉,남덕유가는 능선-

 

오늘 덕유산의 신비경에 취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솜리우리산악회에 감사드린다. 글고 같이 한  L이 있어 속이 따뜻했고!

2017. 01. 14

-눈꽃터널-

-향적봉정상-

-상고대숲-

-대피소-

-백련사 뒤 겨우살이-

-덧난 연리지의 눈발치료-

-백련사일주문-

 

-정관당스님 부도-

-부도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