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길 금정산 & 이쁜 가사 걸친 범어사
-범어사입구-
초행길인 나는 해운대역에서 범어사역까지 세 번 전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쯤 걸려 범어사역 앞에서 길을 묻는다.
나를 빤히 처다 보던 학생은 머뭇거리다 ‘걸어가시게요?’ 라며 방향을 일러줬다. 11시 반이 안됐었다.
주택가를 두 블록쯤 걷다 삼거리에서 만난 어떤 분은 ‘범어사입구’라고 써진 커다란 입석 앞까지 나를 안내해 주기도 했다.
-불지피는 범어사-
야트막한 야산을 휘도는 포도(鋪道)는 차만 뻔질나게 다닐 뿐 인적이 없어 좀은 괴이하다 여겼다. 산행지도도 없는(실은 범어사역사 관광안내소엔 비치됐겠지 하는 기대를 했었지만) 금정산행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고작 부산시내일 텐데 하는 단순생각으로 임도를 오르고 있었다.
반시간여 걸었을 테다.
-여기까지 반시간 이상 포도를 따라 범어사를 향했었다-
<→성불사,원효사>표지판이 있는 우측 산길 저만치에 산님 한 분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분을 뒤좇아 뛰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금정산을 가려는데 첨 길입니다. 일로가도 됩니까?”
“그럼요. 다소 돌기는 해도 ‘금정산숲속 둘레길’이라 해서 아는 사람은 즐겨 찾는 길입니다”
“저는 오늘 금정산엘 올랐다가 범어사를 들려 하산하고 싶은데요?”
-숲속둘레길을 안내한 말쑤 적은 산님-
“그래요, 이 둘레길로 계속직진하면 장군봉과 고담봉을 거처 북문을 통해 범어사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근데 시간이 좀 걸릴 텐데요”
“서너 시간이면 됩니까?”
“충분합니다. 그나 어디서 오셨는데?”
그렇게 하여 금정산예찬 꾼을 만나 동행이 되는 행운을 안아 산행을 즐기게 됐다.
-재선충시목 포장뭉치들일 터?-
그분은 장군봉과 고담봉 범어사갈림길목까지 나를 안내하곤 되돌아섰다. 깊은 골의 단풍은 아직 화장을 안지운채 군데군데 커다란 초록 보자기로 싼 시목둥치를 곁에 두고 있다. 아마 불태우기 전엔 어찌하질 못한다는 소나무재선충일 테다. 아픈 시간의 생채기를 곁에 두고 겨울을 나야할 초목들의 트라우마를 상상해본다.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생과사의 윤회가 우주의 섭리일진데 자연스럽게 맞아야함인데 나 같은 졸개는 그냥 헛 염불인 것이다.
고담봉을 향하는 임도에 편백숲이 그럴싸했는데 잔챙이 낙엽목들이 홀라당 옷 벗고 만추의 햇살에 일광욕하느라 시간을 죽이고 있다.
아까 그분이 자꾸 눈에 밟힌다.
훤칠한 키에 미남인데다 친절이 밴 호남이라 헤어지면서 ‘담에 뵙고 싶다’고 인사를 하자, 암말 없이 미소만 띠며 손만 내밀곤 되돌아서는 거였다. 얼굴이 좀 하얗었다.
완만한 들레길인데도 자꾸 쉬곤 했었다. 뒤따르던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곤 했다. 내가 점심으로 가져온 알량한 김밥 한 덩이도 생각 없다며 사양했다.
근데 초콜릿은 받아 먹는 거였다. 썩 자연스럽다거나 활기차 보이질 않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그렇담 오늘 그분은 무리한 건 아닌가 걱정이 지핀다. 한 시간 반을 되짚어 가야했으니 말이다. 어패가 있지만 그분은 참 착한 분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뜬금없는 바위동네가 길을 막는다. 바위미로를 한참 헤치고 고담봉정상에 서자 맘이 확 트였다.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함서 바윈 다 여기다 모아놨나?
반질반질한 놈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양산시가지가 발아래 깔리고 보이질 않는 범어사는 저 아래 도성이 있는 곳의 북문을 통과하면 된단다.
-양산시가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산정에 바위가 있어 높이가 3자가량이다. 그 밑에 둘레가 10여 척, 깊이는 7촌쯤 되는 우물이 있다. 물이 항상 가득 차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엔 한 마리 금빛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에 하강, 우물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빛우물[金井]이라 하였고, 산 이름도 금정이라 했다’ 라고 기록됐다.
금정우물터는 넓고 쉼터도 충분했다. 느닷없는 억새가 머릴 풀고 파란하늘을 유혹한다. 속없는 하늘이 구름 한 떼를 밀어내고 있다. 억새는 구름을 봤다.
그들은 어디 뫼서 보듬을까? 금정에서 물 한바가지를 꿀컥꿀컥 마셨다. 아까 남긴 김밥도 마저 먹었다. 옛날 이 분지에서 화랑훈련이 있었다나? 북문을 통과한다.
-금정샘 쉼터의 억새들-
금정산성이 거대한 구렁이가 되어 고담봉을 오르고 있다. 이 흰 능구렁이를 동래산성으로도 불렀는데 성곽은 임란 때 제 몫을 다 못했다. 산성에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키는 성주가 짜잔해서였다.
겁쟁이 성주는 도망치기 바빴다. 세월호선장 스승뻘 될 것이다. 자고로 물건을 임자를 잘 만나야 빛이 난다.
-금정산성, 하얀 능구렁이 같다-
패선을 모아 수선하여 만든 거북선으로 이순신장군은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 않았던가! 우리도 지금부턴 붓뚜겅 잘 찍어야 잘살게 된다. 텅 빈 머리통을 값싼 인정으로 감싸 대통령을 만들어 놓으니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부끄러운 꼰대짓은 이제 그만 하자.
범어사로 내려오는 골짝은 만추가 절정이었다.
불타는 나무들은 화톳불처럼 이글거리고 바위와 돌길을 덮은 퇴락한 낙엽들은 갈 곳을 몰라 우루루 몰려다니고 있다. 고색창연한 범어사는 만추의 가피를 입고 사찰 같지 않게 이쁘게 의시대고 있는 성도 싶었다. 하긴 절도 한때나마 고운 옷으로 단장해야 중생들의 관심을 살 것이다.
-범어사 앞산에 불붙은 단풍-
중생발걸음 끊긴 사찰은 요즘 왕따 당한 청와대꼴 되지 마란 법 없을 것이다. 근디 머리통 빈 청와대는 촛불 번질까봐, 화상 입을까싶어 차벽부터 쌓는다.
지아무리 문 걸고 동면하고 싶어도 봄날은 오는 법이다.
범어사단풍나무가 노란 가사를 걸치고 청와대를 보고 있는성싶다.
-중국처녀관광객들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주자 그녀들이 나도 한 컷 담아줬다.
손발짓하며 온 몸으로~!-
때 되면 미련 없이 옷 벗는 나무보다 못한 박대통령을 자비의 눈으로 지켜보기도 지쳤을 은행나무가 처연하다.
범어사는 아름다웠다. 마음을 그지없이 다독여주는 거였다. 상처난 시민들이 몰려드는 건 단풍 때문만은 아닐 것 같았다. 며칠을 머물고 싶단 생각이 뭉클했다.
네 시간 반쯤의 산행이 즐겁기만 했다. 사찰 앞서 범어사역까지 마을버스가 있었다.
2016. 11. 15
-금정산정 & 필자-
-북문을 향한 하산길-
-북문-
-범어사의 아이콘 하나인 은행나무-
-나를 단풍불꽃에 담아 준 중국처녀-
-부도밭-
'걸어가는 길 -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덕궁후원의 겨울민낯 속에서 (0) | 2016.12.28 |
---|---|
서설(瑞雪)로 화장한 만추의 금오산 (1) | 2016.11.28 |
부산해파랑길 (오륙도스카이웨이-동생말-APEC하우스) (0) | 2016.11.18 |
부산 갈맷길 (해운대해수욕장~ 동백섬 ~ 센텀시티) (0) | 2016.11.18 |
꼭두새벽에 걷는 해운대달맞이길 (0) | 2016.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