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후원의 겨울민낯 속에서
화사했던 초목들이 모든 걸 내려놓고 민낯으로 찬 겨울을 나는 모습은 어떨까? 구중궁궐 깊은 창덕궁후원의 겨울나는 정경은 우리가 늘 마주치는 주변풍경과는 좀은 다를 것 같기도 할 것 같았다.
지금 박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는 옛날 왕조시대의 비밀스런 신비주의보다 더한 상상의 날개 짓을 하게 하여 성탄절에 창덕궁후원을 어슬렁거려 보고팠다.
-신문고처마루로 뻗은 회화나무-
돈화문(敦化門·보물 383호)을 들어서면 이파리 하나도 없는 우람한 회화나무가 삭막한 겨울하늘에 추상화처럼 붙박여 있다. 까만 피부색은 눈 쌓인 겨울엔 대칭미가 돋보일 테다. 돈화문2층 누각엔 신문고가 있었다.
백성들이 억울한 사연이 있음 임금께 아뢰어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기 위한, 왕이 민중에 다가서기 위한 방편이었다.
-돈화문-
오늘날의 청와대정문은 삼엄한 경비 속에 출입증이 없는 시민을 얼씬도 못하는 신성불가침의 문이다. 다만 최순실과 전속미용사와 자격도 모호한 불법 비선의사 등이 출입기록도 남기지 않고 무시로 드나드는 비밀통로가 됐다. 하긴 문명의 발달로 신문고를 대신할 민원창구는 많다. 다만 그런 상징성이 문제인 것이다.
창덕궁후원탐방은 통역사의 안내를 받아 시간단위로 이뤄진다. 오후1시에 고즈넉한 왕궁돌담을 끼고도는 후원길에 들어섰다.
-후원입구 우측의 낙선재 담-
창덕궁은 1405년에 태종 때 지어진 경복궁의 별궁(금원(禁苑),비원(秘苑)으로도 불렸다)으로 9대 성종 때부터 여러 임금들이 머문 본궁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돼 광해군 때 복원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가 잘 어울린 후원과 함께 1997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인위적인 조형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존덕지 같은 연못을 만들었다.
-후원입구 좌측의 성정각-
옥류천 주변에는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등 아담한 규모의 정자들을 세워 골짝마다 아담한 정원을 만들었는데 자연과의 조화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뤘다. 하여 후원은 왕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별천지였던 것이다.
초기의 후원에서는 왕이 친림하여 활쏘기대회와 군사 훈련이 자주 실시되었고, 왕족 또는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도 베풀어졌단다. 왕과 왕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힐링처였던 셈이다.
-부용지와 주합루-
나아가 왕은 후원에 곡식을 심고 가꾸는 영농체험을 하고, 왕비는 친히 누에를 쳐서 양잠을 장려하는 백성의 일상에 다가서려 애썼던 것이다. 세종5년(1423년)의 잠실담당공문에는 ‘경복궁 안에 뽕나무 3천590주, 창덕궁 안에 뽕나무 1천여 주와 밤섬의 뽕나무 8천280주로 누에종자 2근10냥을 양잠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근데 지금의 박대통령은 5분이면 걸어가는 집무실도 출근 않고, 일 년의 절반이상을 관저에 머물며 오직 본인의 미용에만 올인 관료들이 대면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단다.
-규장각의 어수문, 중앙이 어도고 양편은 신하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문-
그런 박근혜를 원망하기 전에 그녀를 뽑은 우리들손을 장 지져야 할 판이다. 박근혜는 신성불가침의 여왕(?)이라서 어쩌다가 민정이나 군병영시찰 차 방문할 땐 혹시나 사용할까 싶어 미리 변기와 수도꼭지를 갈아치우고 행차를 했단다. 더 웃기는 건 박근혜의 외국나들이 때의 외교행랑엔 화장용조명등따위가 들어있었다니 외국의 관련인사들은 우리나라꼴을 어찌 여겼을까?
박근혜가 4년 동안 한 일은 유일하게 자신의 몸 가꾸는 일과 빚내서 경기부양 시킨다고 폼 잡은 일이었나 싶어 억장이 무너진다.
-부용지-
후원의 초목들도 어수선한 이 겨울나기가 무서운지 깊은 침잠에 빠져들었나 싶었다. 살얼음 낀 부용지의 부용정에서 망중한을 낚시질했던 정조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정조는 어진 왕이 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을 담금질 했던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를 담고 있다는 부용지는 사각형의 연못 가운데에는 원형의 인공 섬이 있다.
-부용지-
그 섬 옆에 두 발을 못에 담근 십자형팔작지붕의 부용정에서 낚시하던 정조가 물고기를 낚으면 음악이 울리고, 그렇게 낚시질한 물고기는 다시 방생하는 정경을 상상해보는 게다. 뿐인가.
건너편 몇 계단위에 2층으로 된 큰 건물이 우뚝한데 1층은 왕실도서관인 규장각, 2층은 누마루로 열람실 겸 휴게공간이었다는 주합루이다. 참으로 멋진 별궁이라.
-영화당 앞 마당(과거시험장 또는 군사훈련장으로 쓰였다-
정조의 어필인 영화당현판이 걸린 건물 앞의 꾀 넓은 마당은 과거 시험장이기도 했단다. 조선조엔 세 단계의 과거가 시행 됐는데 이곳에서 시험은 왕이 친람하는 마지막 단계였다. 또한 여기 마당에서 활쏘기와 군사훈련이 자주 있었다니 군신들의 소통과 풍류의 멋을 짐작케 한다.
박근혜는 '대면을 꼭 해야만 하느냐?'고 각료들에게 뻔뻔스럽게 반문한 혼밥쟁이였으니 자연 옹졸함으로 치닫아 불통의 지존(?)이 되기 마련이렸다.
-애련지와 정자-
춘향전의 이몽룡이 여기서 장원급제하고, 다산선생이 말 타기 꼴찌를 도맡다시피 한 선조들의 소통의 정사가, 화기애애한 정경이 새삼 그립다.
마당의 훼 굽은 소나무들도 그런 정황들을 엿보느라 허리 굽은 거 아닐까?하고 상상해 봤다.
숙종 때(1692년)만든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에 닿았다. 연경당 앞을 흘러온 개울물이 폭포처럼 애련지에 떨어지는데 맑고 굳은 지조를 상징하는 연꽃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정자를 애련정이라 명명했다.
-애련지-
정자의 네 기둥 중 두 기둥은 연못 속 주춧돌위에 세웠는데 살얼음 풀린 호반에 실루엣이 고혹적이다. 아마 숙종은 당파싸움에 진절머릴 느껴 장희빈과 여기서 킬링타임에 들곤 했는지 모른다.
거대한 통 돌을 깎아 세운 불로문(不老門)을 들어서 연경당을 향하면 효명세자(1809∼1830)가 독서실로 애용했던 기오헌(寄傲軒)과 의두합(倚斗閤)이라는 이름의 소박하고 단출한 전각이 북향하고 있다.
-기호원과 의두합-
얉으막한 야산절개지 가파른 언덕에 햇볕이 들지 않는 전각들은 효명세자의 독서실인데 단명한 원인이라고도 했다.
암튼 효명세자는 할아버지정조의 개혁의지를 계승하여 안동김씨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굳건히 하면서 부왕순조께 효성이 지극한 효자였다.
파아란 겨울하늘 속의 깨 벗은 나목들이 애련지에 깊이 드리워진 채 살얼음에 어른거리는 정경은 미궁속의 현 시국을 관통하나싶기도 했다.
-존덕정일원의 자연조경은 탄성을 연발케 한다-
애련지를 뒤로하고 민낯의 나목들이 반도지(半島池)를 에워싼 존덕정을 향하면 부채꼴 선형(扇形)의 기와지붕을 한 관람정(觀纜亭)이 6개의 원주(圓柱) 중 일부가 물 속에 있어 물위에 떠 있는 멋부림이다.
그 위에 존덕정(尊德亭)이 있는데 이중구조의 육각지붕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로 인조(仁祖,1644년)22년에 지어 육면정이라고 불렀단다.
24개의 기둥에 천정은 화려한 장식의 우물정자모형에 황룡과 청룡이 여의주를 노려보고 있다.
-존덕정-
천정북쪽에는 정조의 어필로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세상의 모든 시냇물이 품고 있는 밝은 달의 주인공)'라고 쓰인 나무판이 걸려있다. 개혁정치를 위해 왕권강화를 도모했던 정조의 혜안을 읽게 한다.
존덕정 옆의 폄우사(砭愚榭)는 효명세자의 독서실로 ‘폄우(砭愚)’는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박근혜대통령은 티브이드라마 보다는 독서를 가까이 했어야 했다. 티브이시청이나 미용에 쏟는 시간을 효명세자처럼 책을 가까이 했으면 이런 나라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폄우사-
관람정 맞은편에 사모지붕의 날렵한 정자인 승재정(勝在亭)은 숲 속 언덕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반도지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리한 4개의 정자는 자연미의 극치를 이뤄 선조들의 심미안과 호연지기에 절로 감탄케 한다.
왕과 신료들은 후원을 사랑하며 애민사상과 치세의 도를 터득했을 터다. 자연을 사랑한 자만이 인본주의에 다가 설 수가 있다. 박근혜와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권세만을 좇는 아류들이 펌우사와 승재정을 자주 찾아야 함이다.
-승재정-
연경당을 지은 효명세자는 19세에 등극 당파싸움으로 조종의 실세가 된 안동김씨 김유근과 김교근을 유배 보내며 비리와 부정을 혁파하고, 재임 3년간에 50회의 과거제를 시행하여 새로운 인재를 등용 사회를 혁신시키려 했다.
환갑을 훨씬 넘긴 박근혜가 4년동안 한 일이라곤 비선실세들과 국정을 농락하며 나라채무만 산더미처럼 누적시키고, 자신의 외모를 예쁘게 꾸미는데 허송세월 한 것 같아 열불이 난다. 어쩌면 그리도 칠푼이짓거리만 골라가며 할 수가 있을까?
-애련지에서 존덕정을 향하는 산책로-
연경당(演慶堂)은 1828년 효명세자가 순조에게 존호(尊號)와 경례(敬禮)을 올리는 의식을 거행할 곳으로 건축했는데 연경(演慶)이란 당호는 경사(慶事)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란다. 남자의 공간인 사랑채로 서재인 선행재와 농수정이라는 멋진 정자가 어필한다.
박근혜가 심혈을 기우린 정사(政事)는 부친 박정희의 신격화였을까? 국정교과서까지 밀어붙인 효심은 되려 박정희란 가공의 신화까지 무너뜨리는 불효자식의 길로 치닫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관람정-
인물의 공과는 민중의 총의로 장구한 역사 속에 자연스럽게 기록된다. 일시적인 권세로 우격다짐하듯 미화되는 게 아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삶을 산 성실인물이 될때 본인은 물론 선조까지도 숭앙을 받게 된다.
박정희가 지하에서 통탄하고 있을 테다. 혈세 쏟아 부어 고인의 삶을 겉치장하는 못된 짓은 원성만 사는 꼴이다. 그렇게 세워지는 동상과 기념물은 사상누각이기 딱이다. 홀라당 깨 벗은 나목들이 빼곡한 산책로를 밟으며 궐내각사에 들어 일별하고 다시 돈화문에 섰다.
-연경당-
거목회화나무들이 도열한 채 파란겨울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겨울답지 않은 푸근한 햇살에 많은 행락객들이 경내를 메꿨다. 창덕궁에 연초록 새순이 돋을 무렵이면 우리나라도 전혀 새로운 혁신의기풍이 만연 축복의 봄이 올 것이다.
년말엔 함박눈이 내려 누더기 된 구각사회를 말끔히 씻어내고 하얀 소복으로 단장한 채 새세상의 신년을 맞기를 기원해 본다.
2016. 12. 25
-연경당 일원-
-연경당의 서향건물은 오후의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려 별채의 지붕을 만들었다-
-연경당의 계곡물은 다시 애련지로 향한다-
-연경당에서 선원전으로 통하는 고갯길-
-부용지에서 정조는 망중한을 즐겼다-
-우물-
-규장각 건물-
-영화당과 내부, 왕이 친림한 가운데 각종 연회가 열렸다-
-숙종이 장희빈보다 더 사랑한 애련지-
-존덕정을 향하는 산책길-
-존덕정일원-
-관람정 건너편이 승재정-
-2층지붕의 정자와 천정의 정조어필 현판-
-관람정-
-존덕정호수는 우리나라지형-
-효명세자의 서재-
-연경당에서 궐내각사로 통하는 산책길-
-750살의 향나무-
-인정전 입구-
-성정각-
-선원전 앞의 귀목연리지-
-돈화문과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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