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매8경 잇는 환상적인 등산로- 관매도 속살보기
새벽 짙은 농무를 헤치고 버스와 여객선에 몸을 맡겨 정오가 돼서야 나타난 매화섬. 관매도는 매화꽃 아닌 빨강과 파랑의 커다란 보자기 카드섹션으로 바다를 달래며 침묵하는 고도의 모습이 섬의 민낯인가 싶게 한적해 보였다. 여객선에서 수백 명의 외지인들이 쏟아져 나와 울긋불긋 왁자지껄하기 전까진 말이다.
빨강과 파랑의 보자기는 납작 엎드린 민가의 지붕이고, 그 무작위의 색깔 속엔 상상도 못할 질서와 약속이 있다는 거였다. 강씨는 빨강, 박씨는 파랑, 이장은 검정색지붕을 이고 살기에 얼핏 편 가르기 같지만 문이 없이 낮은 돌담만으로 속살을 부비며 숨결을 느끼는 사통오달로 안착해 왔단다.
나는 일행 세분과 동네 한 가운데서 어떤 아주머닐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 이곳 특산품인 미역을 사러 한참을 흥정했지만 헛수고였다. 한 가닥에 5천 원 하는 값을 각기 2만원어칠 사도 단 한 푼도 할인해 줄 수가 없다는 거였다. 같은 값이면 짐 안 되게 선착장에서 사겠다고 엄포(?)를 놔도 소용없었다.
(비밀로 하겠다고 꼬셨지만)한 가닥에 5천원은 관호마을의 약속이고 신뢰란 불문율이란 게다. 그 약속이 욕심에 훼손되고 신뢰가 무너지면 섬이 무너지기라도 하는지 거절하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우린 미역 몇 가닥씩을 들고 관호마을을 나왔다. 동네 한 가운데서 수백 년을 수호신하는 팽나무는 누가 신뢰를 허무는 짓을 하는지 빤히 보고 있을 것 같았다.
하늘장사손바닥자국이 선명하다. 관매3경-꽁돌과 돌묘를 훑고 4경- 할미중도깨비굴과 5경-하늘다리에서 아찔한 바다를 내려다보다 왔던 길 되짚다 배고파 왼쪽 우뚝 선 바위벼랑을 올랐다. 점심자릴 찾는다는 게 긴가민가한 산로가 이어짐을 알았다. 바윌 휘돌다 바위 밑에 자릴 폈다.
느긋하게 즐기는데 오후 1시가 되도록 인기척이 없다. 그 미답(?)의 산로를 따라갈까 하다가 용기가 없어 길도 없는 숲을 헤치며 아까 왔던 길에 내려섰다. 그때 하늘다릴 향하는 정남국선생, 달봉님과 만났다. 내 얘기에 정선생은 다시 그길로 들어서 앞서 가란다. 자기네도 뒤따르겠다고.
난 다시 숲을 헤치고 그 산로에 들어서 전진했다. 빼곡한 상록수림이라 서늘하긴 했지만 워낙 가팔라서 땀 훔치느라 손수건이 물수건이 됐다. 또 다른 거대한 쌍바위 능선에 올라서자 사방이 조망돼 안도감이 들었다. 꽁돌 앞 바다의 풍광이 또 다른 풍경으로, 왼편엔 7경-다리여와 8경- 하늘담이 선명하게 쪽빛 바다를 거느리고 다가서고 있잖은가!
그래도 불안하여 정선생께 전활 넣었지만 불통. 하는 수 없이 외로운 홀로산행을 이어갈 수밖에. 고독한 산행엔 이골이 난 샘이고 내 위치파악이 되 즐기면 되는 거였다. 내 발밑 절벽엔 6경-서들바굴폭포가 있을 테다. 벼락에 짤린 바위가 앞 바다에 길게 눠있어 그 크기를 상상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무시로 다가서는 거암들의 위용, 상록수림이 내뿜는 피톤치드, 여왕5월을 단장하는 꽃들, 상쾌한 바닷바람, 아지랑이 해무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다도해, 해안절벽에서 주름살 펴는 잔잔한 파도를 내 미미한 안광과 좁은 가슴으로 안으려 오감을 날 새우느라 부~ㅇ 떠있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내가 천국을 경험할 때는 항상 혼자서 자연을 마주대하고 있을 때였다.”라고 고백하며 <걷기예찬>을 했었다. 고독한 행보 속에서 자연에 빠져들 때 오감은 살아나고 도취지수는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해 준다. 자연에서 천국을 맛보고 싶으면 때론 홀로산행을 시도해 볼일이다.
오늘 어쩌다가 이 미답(?)의 산로에 빠져들었던지! 정선생과 달봉님의 후원이 있어서였다. 귀로선상에서 달봉님은 나 땜에 그 산길에 들어서 화이파이브를 몇 번이나 외쳤다고, 담에 관매도를 다시 오면 산악대장이 돼 그 길을 안내하겠다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거였다.
오후3시경에 1경-관매해수욕장 곰솔밭에 들어섰다. 모랫바람 막겠다고 심은 곰솔이 세월만큼 울창한 군락을 이뤄 관매도의 아이콘이 됐다. 검정갑옷을 입고 나를 겹겹이 호위하는 놈들을 사열하며 세모래 길을 걷는 기분은 또 다른 천국으로의 관능을 일깨움 이였다.
갑옷의 병정들 사이로 밀려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맛과 멋은 짧았지만 독특한 거였다. 독립문바위 못미처 검정채석장옆에서 보리똥을 채취하는 부부를 만나 달뜨름한 5월의 자연맛을 봤다. 보랏빛빨간 살에 흰점박일 한 육즙은 달았지만 약된다는 씨는 씹을수록 쌉싸름했다.
근데 한 가지 거슬리는 건 남편께서 보리똥나무를 낫으로 마구 잘라낸다는 점이다. 더구나 원추리는 나물한다고 뿌리 체 파냈었다. 얻어먹은 죄로 입 봉할까하다 ‘가지 그렇게 잘라내면 명년엔 못 딸게 아니냐?’고 참견을 했다. 이 마을출신으로 목포에서 살고 있는데 해마다 이맘땐 보리똥을 따는데 가지처서 못 따진 않는단다.
망망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안는 드넓은 사해(沙海)는 세모래가 얼마나 다져졌던지 발자국도 남기질 않는다. 그 사해를 밟다가 단신 한 점으로 서서 햇볕을 이고 은비늘 반짝거리며 끝없이 달려오는 파도에 파묻혔다. 파도는 말이 없다. 온 몸을 뒤척일 뿐이다. 바다가 안는 고통만큼 신음하며 몸살 앓는다.
그 몸살기를 보고 어부는 출어를 한다. 파도의 언어는 어부만이 알아챈다. 파도는 그 몸살기를 해안가에 알게 모르게 기록할 뿐이다. 난 그 사해에 파도가 남긴 몸살기의 흔적을 보며 그들 무언의 언어를 알고 싶어 했다. 모래파도의 몸짓은 무얼 말함이련가!
적어도 오후 3시 반께 넓은 관매사해엔 나 혼자 한 점으로 서있었다. 바다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관능에로의 오감을 열었던 것이다. 오늘 나를 여기에 대려다 준 만수산악에 감사드린다. 변회장, 최 전회장, 김선생님, 정선생님, 달봉님의 따뜻한 보듬에 맘 편한 하루였다. 2013. 05. 05
<바로 위 두장의 그림은 달봉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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