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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토왕성폭포 아래 단풍이 되어 글고 낙산사

토왕성폭포 아래 단풍이 글고 낙산사

 

-비룡폭포의 산님단풍-

 

한 밤중 2시 넘어 안개이불 걷어차며 설악을 향한다. 바지런 떨지 않으면 토왕성폭포구경도 못하고 단풍 아니면 비단구렁이 꼬리만 될까싶어서다.

근 반세기만에 얼굴 내민 토왕성폭포는 주말이면 탐방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한 낮엔 토왕골짝에 비단구렁이 아니면 울긋불긋한 단풍 한 이파리가 되기 마련이란 게다.

 

-권금성 저 뒷쪽에 토왕성폭포가?-

 

 

안개이불 걷어차길 5시간여, 바다를 빠져나온 태양이 회색구름과 검은 산릉선자락을 들락거리며 신흥사요람을 펼친다. (복한)(레길) 아흔 명이 비룡교를 타고 토왕골로 접어든 건 8시쯤 이였다.

어째 쌍천엔 물이 아닌 하얀 돌멩이들만 흐르고 있다. 물길 안 보이는 게 토왕성폭폰들 끗발 날리겠나 싶어도, 어제 토왕성폭폴 다녀온 어느 산님의 블로그에 엊그제 비가 왔다고 볼만한 폭포수사진까지 올려놔서 한껏 부푼 기대를 접긴 뭣했다.

-쌍천 꼬라지가 폭포를 가늠케 했지만?-

 

토왕성골짝은 아침인데도 벌써 산님들이 많다. 웅장한 산세, 울창한 숲에 눈길 빼앗겨 어슬렁대다가 문득 깨닫는바 있어 사타구니 불나게 발걸음을 땠다.

비단뱀 아님 단풍신셀 면하고 보자는 알량한 속셈 탓이었다. 골짝을 울리는 물소리가 설친 잠을 씻어내고, 청량한 서기가 일상의 누룽지를 떨궈낸다.

-육담폭포의 허공다리-

 

 

울창한 숲길마저 평탄해 사뭇 날을 것만 같다. 육담폭포엘 닿았을 땐 행둘선두에 섰지 싶기도 했다. ()는 어찌나 맑던지 깔아뭉개고 있는 돌 색깔 그대로다.

바위벼랑을 미끄럼 타는 물은 서로 올라타 엉키느라 된똥 흰 거품을 토한다. 그 짓을 여섯 번이나 하느라 성난 물길이 악쓰는 소리도 크다. 그래도 그놈에 정신 팔릴 내가 아니다.

-아직 비단구렁이 등장은 아닌가보다-

 

숫처녀 잡아먹고서야 승천했다는 이무기가 웅크린 소는 간밤에 누가 잉크를 풀어헤쳤나 시퍼렇다. 승천하는 흰 물갈퀴는 용처럼 사납게 바위를 기어오르지만 그놈의 곡예도 나는 본치만치 했다. 계단을 오른다. 오살 맞게 급경사다. 이놈도 900개라던?

험악한 골짝, 환장하게 멋 부리는 나무들, 장엄한 산릉선, 하늘화선지에 심장의 박동을 그리는 날카로운 칼바위의 그래프도 나를 붙들지는 못했다.

 

 

한 사람이라도 앞서 토왕성폭포앞에 선착해 눈알 빠지고 심장 터지도록 맞대면하고 파서였다. 다른 풍정들은 그 후에 하산 길에 쉬엄쉬엄 눈요기 해도 될 것 같아서다.

하산하다 비단뱀이나 단풍이파리로 그 자리에 붙들려 죽어도 좋다는 배짱이었다. 9시쯤 드뎌 전망대에 섰다.

-비룡폭포-

 

선점한 산님들이 제법 있었지만 좁은 전망대는 아직 여유로웠다. 근데 이건 실망이 아닐 수가 없었다. 파란하늘호수도 없을뿐더러 그 호수에서 쏟아지는 하얀 물길도, 억겁 년을 쪼그라들고 빛바래버린 토왕성바위골에 애잔하게 찔금거리고 있잖은가?

좋은날의 기억을 더듬는 듯한 물길은 폭포의 시늉을 내느라 안간힘을 쏟나싶어, 차라리 쳐다보는 내가 위로하고 팠다.

-토왕성폭포, 상상이 더 아름답다-

 

하긴 설악이 융기하고 화채산릉이 생길 때부터 여태껏 다듬고 있을 폭포를, 단 한 번 찾아와서 실체를 다 보겠다는 내 욕심이, 시건방지기 한없단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열렸다.

토왕성(土旺城)폭포는 선광(禪光)폭포라 부르기도 한단다. 외설악 화채봉(1320m)에서 시작한 물이 칠성봉(1077m)을 끼고돌아 암갈색암벽에 긴 연폭포를 만들었다.

-암송의 연애질을 못 본채 할 순 없고-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의 장장 320m의 연폭(連瀑)의 물길은 토왕골을 지나면서 비룡폭포와 여섯 개의 폭포와 담()을 이은 육담폭폴 만들곤 쌍천(雙川)을 흐르다 동해로 합수한다.

햇빛의 사선 탓에 11시안에 와야 선명한 모습뵌다는 얘길 들은 것도 발바닥 불났던 소이이기도 했다.

-삼둥이-

 

검튀튀한 바위주름골에 멋들어진 소나무들이 춤을 추며 별을 따는 소년들이니솜다리 추억이니경원대 길하며, 노적봉이니 칠성봉이니 선녀봉이니 접선봉이니 하는 영봉들로 그럴듯한 묵화를 처서 내 앞에 파노라마 치는 게 아닌가!

파란하늘호수가 아닌 회색하늘이어 묵화는 더 멋있고, 암갈색바위벼랑에 희끄므레한 실날물살이어 더 오묘한 깊이가 있어 보인다.

 

 

320m삼단폭포도 심안을 뜨고 봐야 해 우리들의 혜안을 넓힌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내가 천국을 경험할 때는 항상 혼자서 자연을 마주대하고 있을 때였다.”라고 고백한다.

토왕성폭포가 나의 관능의 세계에 펼쳐지고 감탄할 수가 있는 것은 자연에 심취하려는 겸허함일 때일 것이다.

-토왕성폭포를 안은 연봉은 '시적인 이름길'로 이어진단다-

 

산님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자릴 비껴줄 차례다. 토왕성폭포를 등졌다. 이젠 토왕골의 깊이를 가늠하며 눈의 호사를 위해, 마음의 해갈을 위해 해찰의 묘미에 빠져 하산할 참이다.

오르고 내리는 외줄서기도 버거운 계단은 하강 쪽은 아직 얼마든지 뭉그적댈 수가 있었다. 설악은 어느 골짝, 어느 연봉이나 할 것 없이 자연의 극치미를 안고 있다.

 

 

계단에서 그 풍광에 빠졌다가 뒤따르는 산님한테 장해물이 되기를 얼마였던가? 비룡폭포에 하강했다.

쪽빛소에서 잿빛바위를 타고 오르는 비룡물살은 장관이다. 그 장관이 때 이른 단풍으로 쪽빛소를 꽃피웠다.

울긋불긋 산님들이 들러릴 서서 비룡의 승천을 응원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육담폭포 위를 밟는다. 산님들이 머리와 꼬리가 안 보이는 비단구렁이가 됐다. 실로 구렁이보다 더 굼뜨다.

 

 

토왕골을 기어오르는 구렁이의 재미도 옹골찬가보다. 모두가 싱글벙글 신바람이 났다. 사람들이 얼마나 순진무구할 수 있는지를, 자연에 동화되면 얼마쯤은 다 내려놓고 겸허해진다.

질서와 예의가 넘치는 비단구렁이 실체 속에 자신도 기꺼이 포함됐단 사실에 흥겨워한다. 누구하나 줄을 이탈하여 골짝에 발 디딜 생각조차도 않는다. 다시 비룡교에 왔다.

-숫처녈 잡순 비룡소와 폭포-

 

명상의 숲길, 사색의 공간에 들어섰다. 10시 반쯤이니 한 시간 반을 사색의 숲속에서 어슬렁대도 무방해서다. 빼곡 찬 수림사이를 넘실대는 피톤치드 마시며 숲의 영험에 빠져본다.

반시간쯤 무위에 발길 놓다가 문득 행둘님들 그림자 하나 없단 사실과 명상의 숲길 저쪽이 신흥사로 빠지는지? 조급해졌다.

진초록산세 위로 하얀울산바위가 평정심을 가져다준다.

 

바위가 저리 깨 홀딱 벗고 순수를 보여주기도 하는구나! 불안은 늘 자신을 갉아먹는 해충이기도 하다.

이때 나타난 커플이 행둘꼬리푤 달은 오흥권님 부부였다. 진정한 산님 커플이란 걸 동행하면서 금방 감지했는데 뜻밖에 알뜰한 친절을 넘 많이 입었다.

 

-하늘화선지의 칼바위그래픽-

 

오흥권커플님과 그 분의 친구들이 베푼 점심자린 풍요로웠고 난 포식했다. 12시 반 낙산사로 향한다.

망망대해 동해를 품에 안은 낙산사의 오밀조밀한 경내와 해안가는 걸으면 걸을수록 유쾌했었기에 화마(火魔)입은 후론 여간 궁금했던 바다.

근데 화마가 복전(福田)이었던가 싶었다.

 

-해수관음상-

 

고색창연함이야 훼손 됐을망정 경내 동선(動線)은 더 멋지고 편리해 산책하며 분위기에 젖어들기 좋았다. 탐방객들한텐 한결 더 편하고 멋있는 동선을 이뤘지 싶었다.

해수관음상에서 설레임이 있는 길을 따라 자장전에서 잠시 쉬고 의상대서부터 홍련암까지의 바닷가 해조음소릴 들으며 걷는 낭만은 낙산사만의 멋이고 한량이라 하겠다.

 

-낙산사 사천왕문-

 

언젠가 나는 거기 바닷가에 내려가 시꺼먼 바윌 어르는 거친 파도의 언어를 들으려다, 아랫도리 홀라당 젖은 짭조름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근디 지금은 누구 하나 들어갈 생각도 않나보다. 하얀 포말 뒤집어쓰다 얼굴 내미는 까만 바윌 건너뛰는, 징검다리 바다널뛰기 재미를 애써 참고 있는 걸까?

 

-의상대와 소나무마스코트-

 

그 파도와의 술래의 낭만을 모르는 걸까? 바닷가에 가서 바닷물에 손 적시지 않는 여행은 왠지 연인을 만나 스킨십 한 번도 못한 떨뜨름한 기분이 든다.

점심때 오흥권커플님이 따라준 냉막걸리 맛도, 낙산사주차장에서 마루회장과 산이좋아님이 준 깡냉이탁주 맛도 일품 이였다. 목젖이 따가울 만치 시원한 쌉살 달짝지근한 오묘한 맛이라니~!

 

 

술맛 모르는 내가 고롷코롬 좋으니 애주가들의 기분이야 내 짧은 맛깔론 상상을 불허한다.

암튼 마루회장은 그 자리에서 깡냉이술장사만은 오지게 잘하고 있었다. 울릉도건어물상회와 버스기사님과 마루회장의 꼼수가 좀 수상쩍다(?)

그곳에 가고싶다님은 버스 속에서 잔 없는 입술로 또다시 얼굴 파묻게 하고이래저래 난 기분 좋은 홍당무가 됐다.

 

-의상대에서 홍련암가는 해안길-

산행은 자연을 닮아가려는 순수호연지기 담금질이며 그 연장선상에 교우하며 담소하는 일상때껍털기의 행복찾기지 싶다. 외톨박이 산행에 빠진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를 흐뭇하게 한 오늘의 풋풋한 만남들-산이 좋아서, 선인장, 백제 전회장, 마루회장, 오흥권커플님, 해든마루님 고맙습니다. '그곳에 가고싶다'의 미소가 이쁘다. 

2016. 09. 25

-낙산해수욕장-

-칼능 그래픽의 한국화-

 

 

-육담폭포와 소와 흔들다리-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는 듯-

-나무는 시목이 돼도 아름답다, 향기나는 죽음이란?-

-비단구렁이는 만들어져가고?-

 

 

 

-멋진 연리지-

-냐체의 울산바위를 -

-오흥권님 커플, 첨 인사나눈 제 앞에서 넘 잉꼬티를 냅디다-

-위, 아래 오흥권님 커플, 불타 앞에서 이래도 되는지? 남새스럽게시리?-

-해든마루님을 꼬시는(?) 산이좋아서님-

-울릉도건어물집에 속작속작대는 마루회장-

-원통보전과 수리중인 칠층석탑-

-보타락은 쉼터, 낙산사의 자랑-

-애틋한 사연을 안은 홍련암-

-낙산해수욕장을 지키는 육각정-

-마루회장이 벌려놓은 깡냉이탁주장사가 엄청 잘 됐다.

짭잘하개 올린 수입으로 2호차에서 또 한 판을?-

-퍼온 토왕성폭포-

-위 필자 사진 4매는 '산이좋아서'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