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역사가 흐르는 무진(霧津)속의 주흘산(主屹山)
성황당서 본 주흘성곽&문 뒤로 조령산
지긋지긋한 폭염을 밀어내기 위해 가을은 진종일 안개를 뒤집어써야 헸을까. 아침부터 주흘산행을 마칠 때가지 농무는 물러서질 안했다.
11시를 넘겨 주흘관문을 들어선 나는 성벽을 타고 성황당을 찾아들었다. 성곽 한갓진 음습한 곳의 성황당은 치렁치렁 감아 늘어뜨린 원색인줄로 이어진 아름드리귀목에 둘러싸여 있었다.
성황당
안무속의 성황당에서 성곽을 타고 흐르는 주흘문과 그 뒤로 굽이치는 조령산능선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됐다.
안개속의 성황당은 문경세재의 내밀한 역사를 켜켜이 안고 있는 성황신(城隍神)의 안거이다.
태종임금이 조령의 길을 첨으로 낼 때 문경현감은 급히 조정에 치계(馳啓)할 중요한 문건이 있었다.
성황당귀목의 인출
현감은 신체가 건강한 역졸을 골라 조정에 상계(上啓)할 장계를 봉송 요성역에 급파했다. 허나 역졸은 새재를 넘다가 호랑이 밥이 된다. 호환(虎患)을 당한 줄도 모르는 현감에게 조정에선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보고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현감은 새재 일대를 수색하여 호랑이가 먹다 남은 신체 일부와 행장을 발견했다.
충렬사
현감은 다시 사건의 경위를 상보(上報)한다. 이 장계를 받아든 태종은 뿔따구가 나서 봉명사(奉命使)를 차원(差員)하여 문경새재 산신령을 잡아오라는 엄명을 내렸다.
아무리 왕이라지만 찬물 한 사발도 없어 섭섭했던 성황신은 그런 불상사를 모른 챌 하고 있었다. 그 성황신의 거처가 누추하고 퇴락했다. 찾는 이도 없어 소슬하다.
충렬사를 훑고 여궁폭포(女宮瀑布)를 향한다. 가뭄 탓에 골짝물길이 실핏줄이다. 귀를 쫑긋해야 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8년 전에 왔을 땐 큰 물난리가 입산금질 시켰을 만큼 골짝을 휘몰아치고 있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수마(水磨)의 포효에 기죽은 나였었는데~!
여궁폭포도 명색만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해서 여성의 심벌이 적나라하게 돋보일 진 모르지만 폭포는 아니올시다.
여궁폭포
그땐 쏟아지는 폭포수와 우뇌소리에 접근할 수가 없어 애태웠는데 말이다. 혜국사를 찾아들었다. 벼랑에 옹색한 터를 닦아 요람처럼 들어선 사찰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소리도, 움직이는 어떤 것도 없다. 대웅전토방에 황구 한 마리가 엎드려 눈만 끔벅끔벅 와선중인가 싶었다.
황구 저 놈이 호랑이 넋을 눈꼽만치라도 전수했다면 저 위 산신각에 자빠져 있어야 옳다.
혜국사대웅전토방의 황구
태종이 파견한 봉명사는 불알 떨어지게 달려와서 호랑일 잡으려 궁리했으나 뾰쪽 수가 없자 성황당에 재를 올리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글고 여기 혜국사에 올라와 깊은 잠에 빠졌다가 포효소리에 놀라 잠을 깼었다.
산천이 떠나갈 듯 으르렁대는 소리에 주눅 든 봉명사가 동이 트자 밖으로 나가보니 산신각마당에 대호 한 마리가 죽어 있잖은가! 호피는 태종에 상납됐고 그날 이후 문경새재는 호랑이로부터 해방됐다.
엄청 큰 호랑이가 밤새 포효하다 죽은 산신각
그 호랑이 넋이 대웅전토방에서 눈만 끔벅끔벅 거리는 황구 아닐까 추측해 봤다. 사람잡아먹고 살던 호랑이도 공민왕 앞엔 얼씬도 안했던 모양이다.
홍건적의 침입(1359년)에 몽진 왔던 공민왕은 저 위 대궐터에 움막을 짓고 유거하며 혜국사에서도 머물렀었는데 호랑인 숨소리도 안 냈었다. 공민왕의 간절한 북방정책과 노국공주와의 참사랑에 감흡 해서였을 테다.
혜국사를 빠져나와 가파른 곡숭골짝을 오른다. 돌너덜과 데크`계단이 줄 차게 이어진다. 실핏줄물길이 소에 떨어지느라 흐느적댄다. 숲속 귀뚜라미울음소리가 갸날프다.
뜬금없이 매미노래소리도 묻혀왔다. 철딱서니 없는 저 놈의 세레나델 듣고 있을 암컷이 있기나 할 땐가? 장가가긴 틀렸다고 귀뚜라미가 배꼽잡고 웃고 있을 것 같다.
가파른 혜국사경내와 입구
대궐터에 도착 석간수로 해갈한다. 이 청정수의 물맛은 650여 년 전 공민왕도 흡족했을 테고, 해서 이곳에 거처를 만들었을 테다. 그는 인질로 잡혀갔던 원나라에서 정략결혼한 공주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노국공주는 피난길에도 동반했던 금슬 좋은 커플 이였다. 근데 8년 동안 태기 없어 애태우다가 드뎌 임신을 하고, 1365년 해산 중에 난산으로 운명했다.
공민왕커플이 유거했던 대궐터에서
공민왕의 아픔은 상상을 절한다. 그 원앙커플이 이 대궐터에 머물러 석간수를 마셨지 싶었다. 고려는 공민왕의 공주잃은 슬픔으로 사직이 기울기 시작했다.
주흘산정을 향하는 된비알계단은 끝도 갓도 없이 이어진다. 정오가 지났다. 이따금 안개를 헤치고 엷은 햇살이 기웃댔다. 바람소리도 없다. 이마에 땀방울이 숭숭 솟는다.
귀목의 괴이한 형상은?
뭐라 이름 할 수 없을 괴이한 형상을 우람한 귀목들이 발걸음 붙잡곤 한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남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깊이다”고 말했다.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을 때 깊이를 보고, 볼 땐 안보이던 것도 보이게끔 하는 게 자연이다. 관심 갖는 만큼만 자연은 내밀한 깊이를 보여준다.
홍송이 뿌리는 가을단풍
오후1시쯤 주흘산주봉(1106m)에 올라섰다. 산님들의 오찬파티장이다. 선점한 김창곤회장, 푸잔일행이 자릴 비워졌다. 아침에 봤던 임이삐 일행도 조우 김밥을 챙겨주곤 떠났다. 어쩌다가 ‘9인의 밴드’ 중 두 여산님과 동행이 된 나는 기갈을 해소하다가 믿기지 않을 비보를 접하고 망연자실한채, 그녀들의 낭패감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였다.
‘9인의 밴드’중 유일한 남성동행자인 회장이 도중에 쓰러져 119에 신고 후송됐다는 거였다. 통성명도 안했던 그 회장은 오늘 버스좌석에 나의짝꿍이기도 했다. 응급조치 후에 정신을 되찾긴 했으니 안심하라고 응급조치한 딴 산악인이 내게 알려줬다. 하산하면서 줄곧 심난해졌다.
홀로산행을 즐기는 내가 이젠 그 짓을 안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만약 불상사가 내게 생기면 어찌 될까? 아찔해진다.
어느 젊은 커플은 으름,산머루 따먹기에 신명이 났었다
좋아하는 일 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으면 행복한 죽음이지만 병신이 되면 가족들한테 못할 천덕꾸러기일 뿐이어 서다. 죽음 복을 타야한다. 사고로 하산했을 밴드회원들에서 떨어져 동행꾼이 된 두 여산님과 그런 얘길 했었다.
하산해서 알게 됐지만 졸도해 119호출을 했던 밴드회장은 곧장 정신을 차려 119구호를 취소하고 일행들과 하산했단다. 천만다행 이였다.
진달래꽃만이 흐드러지게 핀다는 꽃밭돌너덜지대를 지나 조곡관에 닿았다. 황토로 곱게 빚은 세재대로가 수목사이로 이어진다. 우측엔 가느다란 물소리가 운율을 뗀다.
참으로 멋있는 새재길이다. 눈 감고도 갈 수있는 이 길은 옛날엔 기호지방과 영남을 잇는 유일한 험한 지름길 이였다.
꽃밭서덜서 탑마루식 폼 잡은 필자
인조 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의 강화파로 나라의 위안을 도모한 최명길은 영의정으로 정사원훈 일등공신(靖社元勳一等功臣)에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오른 분이다.
공이 어릴 때 외숙(外叔,안동부사)을 뵈러 안동으로 갈 때 새재를 넘게 되었다. 그때 어여쁜 젊은 여인이 공을 바짝 따라 오면서 동행하길 요청한다.
버섯꽃 피운 오리나무는 뒤쪽은 살아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저는 사람이 아닌 새재 성황신(城隍神)인데 안동 사는 어느 좌수가 서울 갔다 옴서 성황당에 걸려 있는 치마를 욕심을 내어 훔쳐가서 제 딸년에게 주어 그 좌수 딸을 죽이러 가는 길이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공이 “인명은 재천인데 그깟 일로 죽여서는 안 되지요.”라고 말하자
산목련
“공은 미구에 영의정에 오를 분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면 나라를 구할 겁니다. 명나라는 망하고 청이 흥할 것이니 청과 화친하여 이 나라 사직을 보전케 해야 합니다. 오늘 좌수의 딸을 죽이려다 공의 체면을 봐서 살려줄 것이니 제 체면도 세워 주시지오”하면서 사라졌다.
공이 괴이하게 여겨 서둘러 안동 좌수댁을 찾으니 좌수 딸이 급사 직전으로 집안이 난리였다.
공이 좌수에게 “당신 따님을 살릴 수 있으니 따님의 방으로 가자.”고 하였다. 딸 방엔 아까 봤던 성황신이 좌수 딸의 목을 누르고 있다가 공을 보면서 “이제야 오십니까.”하고 인사를 했다. 성황신과 공의 대화는 누구도 보이거나 들리지 안했다. 공이 좌수에게 “새재 성황당에서 가져온 치마를 빨리 불사르고 정성껏 제사를 드리면 회생할 것이니 염려 말라.”고 했다.
좌수가 공의 말대로 치성을 드려 딸이 회생하였다. 그 후 공은 영상(領相)이 되었고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화청정책(和淸政策)을 써서 국난을 수습했다. 최명길과 성황신과 좌수의 딸 얘기는 새재길 바람소리에, 물소리에 녹아 인구에 회자된다. 갈수에 명맥만 흉내 내고 있는 팔왕폭포를 훔치고 견훤이 왕건에게 항복한 굴욕의 마당바윌 밟곤 주흘관제1관문과 성황당을 향한다.
5시까지 하산하겠단 약속을 지키려 봉명사가 사타구니 불붙는 듯한 뜀박질을 해야 했다. 무섭고 험난했던 문경새재는 이제 황톳길 맨발의 힐링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계곡물만 풍성하면 이보다 좋은 산행코스가 있을까? 싶게 아기자기한 스토리텔링코스다.
내가 1년 만에 찾은 탑마루산악회는 성황만석이었다. 까닭이야 많겠지만 김 회장의 산악회운영변혁의 영향이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탑마루는 회비를 5천원 할인하여 2만원을 받고 있었다. 대신 산행 후 뒤풀이를 생략 바로 귀가 길에 든다는 거였다. 하여 산행시간은 여유롭게, 하산시간은 철저히 지키는 진정한 산님들의 산행문화를 지향한다는 거였다.
지름틀바위 앞을 통과하는 임이삐일행
그래선지 매주 토욜마다의 산행인데 늘 만석을 이룬단다. 물론 장거리산행 내지 섬`트레킹 땐 뒤풀이를 하고-.
약주 좋아하시는 분들은 좀 섭섭하겠지만 건전한 산행문화를 실천함이라 생각되어 나는 박수를 쳤다.
그래 설까? 탑마루는 1년 전보다 훨씬 젊어지고 활기차 보였다. 글고 내가 늘 관심 갖는 푸른잔디는 더 풋풋해 졌나싶고-. 모두 예뻐지길 염원해본다.
2016. 09. 21
무진속의 주흘산 하늘금
새재골에 도착했을 때 얼굴 내밀다 만 햇님
제1주흘문
성황각
벼랑의 혜국사
혜국사입구 오작교
9인의 밴드, 회장이 졸도할 줄이야?
우연한 동행꾼이 된 밴드에서 탈출(?)한 두 여산님,
꽃밭서들
제2문 조곡관
교귀정과 소나무
황톳길 새재대로
조령원터
생태탐방로
현감 신길원 비각
위 필자사진 두 매는 늘푸른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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