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호수와 구불뫼길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군산 구불뫼길을 모른 채 오늘에 이른 나를 두고 하는 말일 것 이였다. 입소문을 몇 번인가 흘러듣긴 했다. 허니 저수지를 끼고도는 길이 별미가 있을라고? 하는 선입견으로 무시하곤 외면했던 거다.
근데 뒤늦게 트레킹 맛에 빠져들기 시작한 지인 박 샘이 강추하며 앞장을 섰다.
그가 몇 차례 찾아와 걸을 때마다 늘 새로운 신비감에 졌었었다고 애찬하여 따라나섰다.
27번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군산공항을 향하다 옥산호란 이정표를 좇으면 채 5분도 안 돼 옥산저수지에 닿는다. 뚝 밑엔 푸른 갈대밭이 겨드랑일 차고 오르며 미로를 만들고 있는데, 가을엔 은빛머리칼 풀어 나붓댈 멋진 정경으로 오버랩 시키는 거였다.
들머리호수에서 청암산(115m)을 오르는 산길과 호수가를 도는 수변산책길로 나뉜다. 박 샘이 수변길로 들었다. 내가 미쳐 감탄할만한 곳이 수변로에 많다는 게다. 먼저 곰솔장병들이 열병하며 나를 환영하는 소나무 숲을 향했다.
깔끔한 흙길을 진초록숲 속에 조붓하게 깔아 놨다. 따갑던 햇살은 푸나무에 걸려 실 빗살이 돼 흐르다 청량한 공기가 되는가보다. 코 평수를 넓히고 맘껏 들이마셨다. 상쾌하다. 음영이 짙어졌다.
푸나무 사이로 음습한 늪이 나타나고 늪 위에서 나무들이 춤을 추고 있다. 놈들은 태생적으로 춤꾼이었던지 허릴 휘어 흐느적댄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늪도 덩달아 춤꾼을 품어 껴안고 흐느적댄다. 그 춤사위는 늪을 빠져 호수에 번져 광란의 춤판이 돼 어지럽고, 마름부유물은 저만치서 모여 초록이끼 위에 연꽃을 피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습지가 있을까!
왕버들과 초록부초와 연꽃이 어우러진 무도회장 – 습지에서 나는 발걸음을 떼고 싶질 안했다.
그 습지는 생명의 시원을 엿보게 하는 원시의 못이다. 생태의 보고(寶庫)인 곳이다.
수변을 걸면서 수풀사이로 얼굴 내미는 호수와 그 수면에 드리워진 산능의 그림자를 보면서 이 길을 굳이 ‘구불뫼길’이라 했던 연유를 더듬어보는 거였다.
호수를 끼고도는 청암산릉이 구슬처럼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구슬뫼’라 불렀고, 군산시는 구불길을 조성하면서 옥산호수 갓길을 연계시켜 ‘구불뫼옥산호수길’이라 명명했을~
대나무숲에 들었다. 대나무가 터널을 이뤘다. 길지는 않지만 운치는 최고였다. 박 샘은 여자 혼자 걷기 오싹할 길이란다. 누런 댓잎이파리가 양탄자마냥 깔린 대숲 길은 밟히는 댓잎소리와 쿠션이 나를 놓게 한다. 두서너 번을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싶었는데 박 샘은 저만치다.
청암산(靑岩山)은 조선시대에 푸른산이라는 뜻의 취암산(翠岩山)으로 불렀단다. 청암산이 품고 있는 옥산저수지는 옥산면과 회현면에 걸쳐 있으며 군산저수지로 부르기도 한다. 원래 장다리, 세동, 요동, 고사, 팔풍갱이 등 5개 마을이 있었으나 1939년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수몰됐단다.
1963년에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통제되어 군산시민의 식수원이자 페이퍼코리아의 공업용수처였는데 2009년 사람출입이 허용됐다.
하여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돼 원시습지가 발달돼 람사르 습지보호지정을 받으려 환경부가 신청했으나 주변마을까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일 수 있어 취소하기도 했단다.
호수를 끼고 푸나무속을 헤집는 조붓한 흙길은 다양한 식생과 마주친다. 게다가 습지 위로 난 데크를 걸으며 호수에 드리운 그림자들에 취하다보면 자연이 빚는 빼어난 경치에 경탄한다.
음습한 습지는 마름지대가 넓고 피자`양치식물이 번성하여 태곳적원시를 엿보게 한다.
파란하늘보단 쪽빛수면이 더 좋아 팔들을 전부 수면을 향해 늘어뜨린 왕 버들나무는 기괴한 판화를 연출하여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기묘한 판화는 석양 땐 어떤 채색을 할까?
막 피기 시작한 연꽃방죽의 함초롬한 은근함은 사유의 깊이를 무진장으로 펼치고 있다.
뿐이랴, 곰솔사이로 다가서는 드넓은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오리 한 쌍이 참으로 고즈넉한 행복 자체다.
13km쯤 된다는 구슬뫼길은 평탄한 오솔길이어서 북적댈 것 같은데도 인기척이 뜸해 좋았다. 아마 청암산행길과 나뉜 넓은 호반를 끼고도는 긴 루트가 나뉘어 분산함일 것 같았다.
세시간반쯤 호반과 숨바꼭질 하니 들머리에 섰다. 저수지제방에 서서 호수가 품고 있는 다양한 신비경이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그 신비경을 보물찾기하듯 구불구불한 호수길 걷기가 말할 수 없이 평안했다.
더불어 교감한지 일천한 박샘이 동행 겸 리더해 줘 더 신났을 테다. 진정 뿌듯함은 구불뫼길이 지근거리에 있고, 박샘과 더욱 돈독한 관계속에 동행꾼으로 다가섰단 행운일 것이다. 한참 후배인 박샘의 신뢰는 알량한 나의 산행기가 한 몫을 했단다. 그 말도 나를 우쭐하게 함이였다.
군산, 또는 익산시민들이 반시간 안에 찾을 수 있는 태곳적분위기의 트레킹코스- 옥정호수와 구슬뫼길이 있단 건 축복이라.
여차하면 나는 구슬뫼길을 걸을 테다. 그때마다 호수와 왕 버드나무는 진기한 판화를 찍어 자연이 빚는 신비경을 펼치며 나의 찌든 가슴팍을 순화시켜 줄 것 같다.
201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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