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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오대산 선재길, 오크밸리 오솔길 2박3일

오대산 선재길, 오크밸리 오솔길 2박3일

 

 

 *오대산 선재길에서의 심통

 

중국산동성에 청량산이 있는데 산정엔 다섯 봉우리가 육각모형을 이루고 있어 오대산이라 부르며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다하여 천하의 명산이라 회자된다.

평창의 오대산도 비로봉(1563m), 동대산, 두로봉, 호령봉, 상왕연봉을 마치 연꽃의 꽃잎 같이 오므린 채란다. 그런 꽃잎 속을 흐르는 계곡물길이 오대천인데 물길 따라 걷는 길을 선재길이라 한다.

 

 

1400여 년 전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적멸보궁에 안치하려 걸었던 유서 깊은 길이다.

화엄경에 지혜와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선재동자가 등장하는데 자장율사는 선재를 본받아 구도행에 들기 위해 월정사를 창건하고 뒤뜰

53(선재가 구도 중에 만난 선지자의 숫자)그루의 나무를 심었단다.

-월정사-

 

그 선재길은 수많은 고승들이 오간 구도의 길이자 깨달음의 길인데 근세에 선승 방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의 발길도 닳고 닳았다.

선재길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연결하는 도보여행길로 2013년 가을에 개통된 10.7km의 산책길이다. 특히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 이어지는 천여그루의 아름드리전나무가 품어 안는 천년의 숲길은 걸어보지 않곤 청량과 평정에 드는 기분을 표현할 수가 없다.

-선재길 자작나무숲-

 

 

댓돌에 앉거나 전나무에 기대서서 상큼한향을 깊이 숨 쉬며 물소리에 맘을 담궈 보면 금세 일상은 까마득해진다. 게다가 새소리며 다람쥐의 재롱까지 훔치다보면 느림의 달콤함에 빠져들게 되는데~!

선재길엔 전나무와 소나무, 자작나무와 신갈나무, 넝쿨식물 등이 원시림을 이루고, 만병초와 노랑무늬붓꽃, 백작약 등의 희귀종이 자생한다. 거길 관통하는 조붓함이라니!

-선재길입구-

 

 

울창한 숲들이 초록 차양 막을 친 초록숲터널을 걸으며 어제 많은 비가 내려 밤새 불어난 오대천 물살들의 아우성에 귀기울리다, 불현 듯이 숲 흔드는 바람소리에 ~!’하는 감탄을 절로 하게 된다.

감청색물길은 물거품을 토하며 한강에 이른다. 길에 녹아 있는 천년의 역사를, 대화를 걸러내며 정제시키면서다. 

혼자 아님 누구와 걷든 간에 걸은 길은 나에게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길 위의 역사가 삶이고 일생일 것이다. 걸으며 온전히 자기를 내려놓을 때 자아의 진면목에 이르게 될까?

모든 걸 버려서 깨달음을 얻었을 나옹대사와 사명대사와 고승들이 이 길을 수 없이 걸었을 테다. 그런가하면 나라를 반석에 올려놓겠다는 거대한 욕망에 권력의 화신이 된 세조도 이 길을 걸었다.

세조의 알량한 체면은 어린동자승 앞에 코미디가 됐지만 상원사입구에 있는 관대걸이가 그런 흔적을 기리게 한다.

 

왕이 여기를 지나다 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고 계곡물에 멱 감는데 마침 지나가는 동자승을 불러 등목을 부탁하곤 입단속 시킨다.

왕이 계곡물에 깨 벗고 멱 감았다,는 소문내지 말라고 하던 왕께

문수보살이 등 밀어줬다, 고 말씀하심 안 됩니다라고 했다는 동자승의 대꾸에 입 닫은 세조는 상원사에 불사를 일으킨다. 고질병인 등창이 나은 탓이다.

-선재길-

 

길엔 기막힌 역사가 녹아있고, 우린 그 역사를 쓰며 오늘도 길을 걷는다.

중국서 살고 있는 초딩1년짜리 손녀가 방학핑계대고 귀국해 우리부부의 상전이 됐는데, 오늘 선재길 산책시작은 신나 까불대며 잘 걷더니만 절반도 채 못 갔는데 칭얼대며 떼를 썼다.

어르고 달래느라 오두방정을 털다가 왕짜증이 난 우리부부는

키워봤자 아무소용 없는 것들~?”라고 자조하며 안았다 업었다를 반

복했다.

 

 

그때 뜬금없이 생각난 게 세조임금이었는데 꼬맹이를 문수보살로 여겨야 내 맘이 편할 텐데, 아내와 난 거짓과 으름장으로 달래고 더는 우격다짐하다 못해 끝낸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린애를 키우는 마음은 불성(佛性)이겠다. 나를 버리고 희생해야만 가능하다. 해서 어머니는 위대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남자, 그 남자를 지배하는 사람이 여성이다. 여성은 곧 모성일지니~!

 

 

선재길, 너무나 걷고 싶었던 길이였는데, 작년엔 울산바위도 점령한 꼬맹이라 낙관했는데 낭패였다. 어제 제법 많은 비가 내렸고, 햇님도 숨어버린 쾌적한 초여름날씨였는데 말이다.

오늘 선재길 산책은 어쩜 손녀에게 불망의 추억이 될 것이고, 커서 산을 사랑하게 되면 일생의 역사 한 페이지로 추억되겠지 하며 위안했다.

 

 

나와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숙녀가 된 꼬맹이는 선재길에서의 오늘이 정녕 아름다운 역사로 남을까.

다람쥐가 꼬맹이의 떼 몽니를 앗아간다. 우리도 못 달랜 꼬마의 심통을 다람쥐는 출현만으로 천진난만 동심으로 돌려놓았다. 문수보살이 다람쥐로 현신했을까? 처처불상이라 했다.

-선재길 전나무 숲-

그리고 보니 오대천다람쥐는 순수 토종다람쥐다. 놈들이 숨바꼭질하며 우릴 갖고 논다.

하긴 선재길의 진정한 주인장은 그들 다람쥐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가진 걸 내려놓질 않고 욕심쟁이로만 이 길을 걷

는다면 말이다.

2016. 07. 02

 

 

 

*오크밸리 오솔길의 새벽의 몽환

 

 

그 여름날

열정의 포풀러는

오려는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그늘 좁다란 지점에서

-후략-”                         

                                  -윤동주의 창공’-에서

 

 

길은 걸어 온자의 자취이며 추억의 기록이다. 그 길 위에서 웃었을 것이고 때론 서러워하기도 했을 테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찬란했던 추억이 알 박혀 있을 거고, 부풀었던 로망이 꿈틀대기도 했을 것이다. 해서라도 사람들은 걸어온 길을 다시 가고파하는지도 모른다.

 

 

오크밸리는 우리가족이 네댓 번은 왔던 오지속의 유토피아 같은 곳이다. 가늠할 수 없을 초지에 펼쳐진 골프필드와 숲속의 오솔길 그리고 하얀 겨울의 스키슬럼프는 자연과 인간이 빚은 별천지였다.

난 골프도 스키도 문외한이다. 막내가 한솔그룹에 재직하여 리조트에서 여름 한나절을 즐기다, 맛이 들려 가끔 찾아 오솔길을 산책하며 필드를 안았을 뿐이다.

 

 

지난 주말 중국서 들어온 막내가 주선하여 오랜만에 찾은 오크밸리는 연륜이 쌓인 만큼의 멋과 맛이 물씬거렸다. 뮤지움 산(Museum San)을 개장했고 필드와 슬럼프의 외연도 확장한데다 리조트실내도 이노베이션 해 산뜻했다.

뮤지엄 산은 건축과 예술의 하모니가 자연 속에 녹아들어 이룬 문화공간으로 우리들의 느림의 휴식을 취하는 힐링처란다.

 

 

그런 것 보단 오붓한 가족애를 담금질했던 시간의 추억이 묻어나는 향수에 취하기 위해서도 가족나들인 그만이란 생각에 들떴다.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무한대로 펼쳐진 푸른 초원을 점령군처럼 밀려드는 안개비를 거부반응 없이 맞으며 얘기꽃을 피웠다. 영상통화는 싱가포르로 떠난 큰애까지 초치해 합석했다.

 

 

빗속에 갇힌 여행은 추억을 반조하는 타임머신 여행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어 새벽5시쯤 일어난 난 비가 그쳤다는 걸 알고 리조트를 빠져나왔다. 우리가 투숙한 B동은 조각공원을 일별하고 오솔길에 들기 최적의 장소다. 막내가 부러 선택한 펜션이라.

 

 

안개는 지근거리에서 느리게 기고 있고 나무들은 감청색옷을 두르고 다소곶이 새벽잠자린가 본데 불청객인 내가 눈치 없는짓 하나싶어 미안했다. 해도 난 슬금슬금 숲길을 오른다. 어떤 놈이 나의 숨소릴 듣고 놀랐던지 물방울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안개도 겁났던지 젠 걸음질치며 물러선다.

 

 

길 떠났던 주인이 오랜만에 찾아드는, 낯설지 않은 거동에 숲은 숨죽이고 잠자는 척 하고 있는 성도 싶었다. 꼭두새벽에 숲을 찾는 기인이 나 말고 없었던가? 길섶 팔랑개비가 일제히 도리질 친다. 청설모가 아지트에서 왕방울눈동자로 그물통로를 주시한다. 그물통로와 아지트는 전엔 없었던 산짐승을 위한 배려였다.

 

 

저기 앞산을 점령했던 안개가 칠부능선까지 물러나고 산은 시꺼먼 옷을 걸치고 기지개를 편다. 골짝을 애무한 물살이 소에 몸 풀고 금붕어가 수면위로 올라와 인사를 한다.

오늘 이 새벽에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놈은 금붕어가 유일하다팔각정에 닿았다.

-오솔길-

 

능선을 타고 오르다 갈림길에서 석화계곡길에 들었다. 전에 없었던 코스다. 인적이 뜸했던지 낙엽은 채 다져지질 않았다. 안개도 슬그머니 물러나 시야가 명료해졌다. 그런데도 미지의 새벽길은 맘을 편하게 하질 않는다.

비라도 쏟아지면 낭패다. 한 시간을 걷다가 돌아섰다.

 

 

석화능선을 휘돌아 다둔능선길을 완주하긴 넘 무리일 것 같아서다. 아까의 갈림길에서 팔각능선길을 오른다. 계곡을 빠지는 안개가 나뭇잎을 건드리자 물방울세례가 시작된다. 능선을 반시간쯤 오르자 석화능선과 다둔능선이 만나는 갈림길이 안무 속에 나타났다.

-오솔길 못-

 

안무는 숲을 내놓으며 미풍을 일으켜 물방울을 쏟고 내 몸은 비지땀을 밀어내 걸친 옷 나부랭인 흠뻑 젖었다. 7시가 지났다. 보폭을 서둘렀다. 안개 땜에 시계도 제로다. 살아 움직이는 건 눈 씻고 찾아도 없다. 하늘이 어두워진다. 다시 밤이 오나?

 

 

전에 다둔능선을 밟으며 하늘아래 첩첩한 능선뿐 이였던 공활에 폐를 활짝 열어 푸른 하늘을 마셨었는데 시계가 제로여서 가늠이 안 선다. 이따금 거목이 농무속서 짐승처럼 다가선다. 안개가 다시 밀려온다.

거미집은 수 많은 진주를 달고 아침화장을 끝내 가는데~?

 

 

조각공원을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툭툭 빗방울이 참나무이파릴 두들기고는 왕방울이 되어 나를 때린다. 무방비 벌거벗은 몸으로 산에서 비와 맞서기도 첨이다. 세찬 빗발의 숲 나라에서 벗어날 쯤 젊은 산님이 나타났다. 반갑게 우린 큰소리로 인살 나눴다. 그렇게라도 비를 쫓아내자는 듯이~

 

 

그는 마치 빗발과 싸우러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맨몸으로 산으로 돌진하는 거였다. 아님 새까매진 하늘에 볼일이라도 있단 걸가?

조각공원에 닿았다. 8시가 됐다.

미첬수?” 문을 열고 나를 맞는 아내의 외마디였다. 새벽에 도둑처럼 빠져나가는 나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 꼴이 될 것이라곤 상상도 안했단다.

오크벨리니까 무방비여도 된다!?

샤워 후 늦은 식살 하곤 잠에 빠져들었다. 미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빗속에서 다둔능선을 향해 돌진하던 젊은 돈`키오테, 아까 그 사람이다.

맨몸으로 비와 대적하며 하늘을 향해 산을 오르던, 구멍난 하늘 똥구멍이라도 틀어막아야 될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그 산님도 몽환에 들었는지 모른다.

2016. 07. 02

 

-오솔길의 다람쥐집과 통로-

-오소길 팔각정쉼터-

 

# 아래그림은 선재길 모음

                 

 

-월정사-

-오대천-

-지장폭포-

-600살 쯤 먹은 전나무의 위용-

-오크밸리입구 안내판-

-금붕어의 인사-

-오대산입구의 매밀막굯국수집, 먹을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