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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연분홍불꽃 지핀 소백산 연화봉

 연분홍불꽃 지핀 소백산 연화봉

-연화봉대피소&천문대-

 

초여름 날씨의 충북단양 죽령탐방지원센터에 내린 건 10시 반쯤 이었다. 소백산철쭉에 심신을 묻고 막바지상춘을 즐기려는 산님들로 주차장은 빼곡했다. 어쩜 이번 봄에 일기불순으로 남녘에서 화사한 철쭉세상에 발 담그질 못한 아쉬움 탓도 있겠지 싶었다.

 

 

연초록 숲의 소백고산 죽령은 싱그러웠다. 2연화봉을 향한다. 연초록이파리들에 내려쬐는 햇살이 부서져 녹색입자로 흩어진다. 그 풋풋한 신록의 장원에서 시멘트포장길 걷는다는 건 되게 어설프다. 해발1000m가 넘는 국립공원산마루를 구불구불 오르는 포장된 신작로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산불진압내지 군 작전을 위한 명분은 옹색한 행정만능주의 변명 같다.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볼썽만 사나운 미개국의 자연훼손을 연상케 해서다.

시멘트도시에서 탈피하여 한나절이라도 자연에 몸 담궈 보자는 사치(?)는 정말 사치스런 생각일까? 국립공원 시멘트 길을 올라간다.

 

연분홍철쭉이 한두 놈씩 웃고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놈들은 떼거리로 나타나 팍팍한 시멘트 길을 걷는 우릴 위로하려 드나싶다. 지금 만개하기 시작했다는 철쭉을 향한 반가움이 그런 불만을 앗아간다. 소백산철쭉은 거의가 연분홍이다. 우리네 주거지 주변의 진홍철쭉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소백산연분홍철쭉의 은근한 빛깔은 우리들의 해맑은 정서와 어울리는, 토종이란 순수의 깊이를 느끼게 하나싶다. 래선지 진짜 토종 철쭉일까 라는 선입견이 들어 더더욱 이삐 보인다.

그 연분홍철쭉무더기는 연초록소백바다에 연꽃웅덩이처럼 떠있다.

 

소백산초록바다에 연분홍연꽃이 떼거리로 핀 연화봉을 오르고 있다. 연분홍웅덩이 속에 천문대가 솟았다, 천문대 끝엔 물빛하늘이 명주보자기처럼 걸려있다. 햇살이 미세한 먼지처럼 부서져 반짝댄다. 소백산의 봄날이란 연출에 빨려 두 시간 반쯤 얼렁대니 연화봉(1383m)이라. 산님들이 연분홍철쭉웅덩이에 빠져 탄성을 지르느라 연화봉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마의 땀을 훔쳤다.

 

1연화봉쪽으로 살짝 나와 가드라인을 월경해 졸참나무그늘아래에 점심자릴 폈다. 초록잎에서 녹즘이 삐어져 흐를 것 같은 떡잎 밑에서 조망하는 연초록바다와 연분홍웅덩이와 하얀천문대와 물빛하늘은 무한대의 자연의 아름다움에 파묻혀 모든 걸 잊게 한다.

 

물빛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온 바람이 초록 숲과 연분홍꽃잎을 간지럽히다 내게로 다가와 내 몸뚱이를 살랑살랑 스킨십 한다. 닭살 돋게 하는 산뜻하고 상큼한 느낌의 바람은 소백산 연화봉이 주는 행복한 밥상이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천상의 화원밥상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식탐에 들게 한다. 그 자릴 뜨기가, 식감을 닫기가 못내 아까웠다.

 

연화봉 일대엔 노랑민들레도 유난히 샛노랗다. 성급한 씨방은 깃털을 달고 미풍에 올라탄다. 저놈들의 활공은 달나라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단 상상을 해봤다. 놈들의 왕성한 생식력은 달나라엔들 정착 못할 텐가! 우리네 토종 하얀민들레가 외래종민들레에 주눅 들어 입지를 잃게 마련이란다.

 

토종이 사라진다. 우리네철쭉이 외국(노일전쟁 때 러시아병사에 채집당해)에서 변혁개종으로 재입국 하여 토종을 밀어내는 수모의 현장이 연화봉이란 생각에 씁쓸해졌다. 희방사를 향한다. 가파른 돌너덜지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연녹색이파리들이 터널을 이룬 숲길이, 숲을 흔드는 미풍이, 그 시원한 상큼이 하산길의 고역을 씻겨준다.

 

희방사골짝은 녹음이 짙어졌다. 눈부신 5월을 짙푸른 신록의 장원으로 차완하고 있나싶었다. 한 시간쯤 녹색골짝을 더듬었다. 단출한 희방사가 그림처럼 골짝에서 고즈넉이 숨 쉬고 있었다. 얼마나 깊은 골짝이었으면 호랑이가 목에 (비녀)가시가 걸려 울고 있었겠는가. 호랑이는 여인을 잡아먹다 비녀가 목에 걸렸던 것이다.

 

굴에서 수도하던 두운대사가 그 가시를 빼줘 살아난 호랑이는 은혜 갚는다고 오늘 결혼한 신방처녀를 엎고 와 암자마당에 내려놓았다. 두운대사는 그 처녀를 거두어 귀가시킨다. 처녀와 겨울을 동숙하면서 살을 섞지 않는 건 계룡산남매탑의 전설과 똑 같다.

 

처녀는 계림호장(鷄林戶長)인 유석(留石)의 무남독녀였다. 유석이 보은한답시고 여기에 절을 지었다. 그때 놓은 철다리가 지금 현존하는 수철교(水鐵橋)라 한다. 그런 사찰이라 석가세존의 일대기와 공덕찬송가를 한글로 편찬한 불교대장경인 월인천강지곡을 보관하였는데 6.25전란 때 불타버렸단다.

 

일제 때 일본놈들이 호랑이를 멸종시키지만 안했어도 6.25란 중에 호랑이가 희방사를 지키고 있었을 테고 월인천강지곡은 화마를 면했지 싶었다.

막 주조한 것 같은 신 범종을 훑고 희방폭포를 향한다. 28m의 폭포는 처녀와도 사연이 있다. 숲속 벼랑바윌 뛰어넘는 폭포는 장관 이였다.

 

골짝의 온갖 잡것들을 보듬어 곤두박질친 소의 거품은 너무 하얗고 물은 너무 파랗다. 그 깊이와 품을 가늠할 수 없게 말이다. 그 물길소리가 청아했다. 폭포수 따라 걷는 골짝길이 신록처럼 풋풋했다.

멀리 있는 미지의 것들은 내가 그곳에 가겠다는 다짐과 발걸음 앞에 그 풍경은 시나브로 다가선다. 그리고 내 눈과 맘에서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마음의 기록으로 남아 역사가 되고 추억이 되는 것이다.

 

 

추억은 마음의 길이고 역사는 발자국인 것이다. 다섯 시간

을 소백산과 얘기하며 발자국으로 역사를 썼다. 난 여태 겨울소백산만 세 번 찾았었다. 오늘 연녹색바다에 연분홍봄날의 소백산과 이야기 한 셈이다. 거기엔 지인이 있어 더 짙은 추억으로 남기도 할 것이다.

오늘 나를 연분홍철쭉웅덩이에 빠뜨린 서동요산우님들이 고맙다.

                 2016. 05. 22

-죽령탐방지원센터-

 

-병꽃 & 철쭉-

쥐오줌풀-

-지장전-

-희방폭포-

 

 

-함박꽃의 기다림-

-위 필자사진 2매 상황봉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