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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연애 할 바다를 잃은 망해사(望海寺)

새만금바람길과  연애 할 바다를 잃은 망해사(望海寺)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겨울바다명소로 동해의 추암`촛대 칼바위에서의 일출, 남해 금산의 기기묘묘한 바위산에서 조망하는 해안, 강진만의 작은섬들과 갈대시위, 김제망해사에서 맞는 지`수평선의 일출`일몰의 넉넉함이라 했다.

십여 년 전에 망해사를 찾았을 땐 망망바다를 접한 절벽위의 단출한 절이 한갓지다 못해 넘 쓸쓸하단 생각을 했었다. 더구나 해안선엔 철조망이 드리워지고 초병들 막사도 보여 으스스했던 기분이 모처럼의 해방감을 앗는 거였다.

근데 광활한 김제평야 너머 모악산 품에서 뿝는 일출과, 망망대해 수평선을 불태우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곳, 망해사를 품은 새만금바람길이 생긴 걸 알고 나는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망해사

모처럼 새만금바람길을 걸으며 황홀한 일몰에 빠져보고파 망해사를 찾았다. 나무들이 언덕배기에 도열한 채 우릴 맞는 건 여전한데, 초병막사도 사라지고 종각을 비롯한 절간도, 마당도 넓혀 어딘가 허허로운 삭막함은 사라졌나 싶었다.

그렇게 망해사는 외형을 살찌움서도 바다란 진면목을 빼앗기고 있어 쓸쓸하다. 바다를 보는 望海寺가 아니라 땅을 보는 望地寺로 개명해야 하나싶어 측은했다.

물웅덩이와 풀밭 된 갯벌

그땐 바닷물은 스스로 길을 내며 저만치 물러나서, 드넓은 갯벌속의 물들이 숨 쉬게 하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시퍼런 바다는 망해사바위벼랑에다 푸우~! 하며 개거품 남기곤 슬며시 달아나곤 했다.

바닷물의 맛사지에 반들반들 차질대로 차진 갯벌은 바다의 생명이고 생물들의 우주였다더는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며 망해사의 얼굴 이였다. 그 바다가 사라졌다. 바닷물은 길을 잃었고, 갯벌은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 속에 처참한 몸꼴을 숨기고 있다.

물웅덩이로 변하는 바다

망해사는 푸른 바닷물 대신 웅덩이의 고린 물과 누런 잡초를 휩쓸고 오는 후줄근한 바람을 상대하느라 지처있는 성싶었다.

누르스름한 바위벼랑에서 팽나무를 앞세우고 인간의 허망한 위세에 대척하느라 눈 부릅뜬 극락전부처님을 나는 외면했다.

새만금간척은 오로지 전북도민의 우매함이 빚은 자연에의 죄악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 땅을 황무지화하는데 앞장서진 안했는지?

팽나무와 종루

선진국에선 갯벌의 중요성을 깨달아 방조제를 허물고 갯벌복원에 골몰하는 데, 우린 새만금방조제란 미증유의 갯벌 죽이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으니 망해사부처님은 억장이 무너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늘도 점점 성층구름 뒤로 숨는다. 낙서전(樂西殿)앞 팽나무는 400여 년을 수호수로 살면서 인재(人災)로 바다가 사라짐을 푸닥거리하고 있나 싶다. 노거수는 바닷물을 부르느라 온 몸을 던져 손짓하며 신음소릴 내고 있었다.

낙서전과 팽나무

1589년 진묵대사가 망해사를 중창하며 낙서전을 지을 때 앞에 팽나무 두 그루를 심었단다. 방풍, 방조에 조경수를 기대했을 스님의 뜻이 이젠 사라지는 바다를 부르는 애타는 망해목(望海木)이 된 셈이다.

하늘과 땅, 바다가 맞닿은 오직 한 곳, 망해사에서 미륵세상을 손모아 비는 나무가 말이다.

서해바다를 즐기는 낙서전에 그 바다가 없어진다, 는 생각은 끔찍한 망해사의 불행이라.

진봉반도의 '망해사'터는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합수처로, 앞으로는 서해수평선이, 뒤로는 만경평야지평선이 펼쳐진다.

바다를 부르는 팽나무의 절규

강물과 바닷물이 합류되는 곳에 향나무를 묻고 천년 뒤에 꺼내 피우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매향(埋香)이란 불교 의식이 있단다. 망해사 팽나무아래에 그 매향비가 있다. 뒤늦게나마 1999년 매향제행사를 하고 있단다.

바다가 다시 이뤄질까?  낙서전(樂西殿), 법당, 청조헌(聽潮軒), 종루를 훑고 산책길에 들었다.

420여살 된 팽나무

근래에 절 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새만금바람길을 만들었단다. 망해사 왼쪽의 봉화산봉수대에서 망해사 우측 진봉방조재까지10km를 김제시는 맘먹고 만들었는데 보도블럭을 깐게 흠결이었다. 

빼곡한 송림의 야산을 관통하는 바람길을 따라 신포항까지 걸었다.

옛날의 흥청망청 성황이였던 신포는 영낙없는 파시의 전형이 됐다.

바다를 잃은 몇 척의 어선들은 웅덩이에서 가물가물한 옛날의 호시절을 되새김질 하고 있나 싶었다.

소나무사이로 숨바꼭질하는 푸른바다가 일품일 텐데 갯벌과 패인 웅덩이는 어째 건조하고 궁색하다.

누가 바다를, 갯벌을 쫓아내자고 선동했을까? 지 코 앞만 보는 일부정치인들의 얄팍한 표도둑에 속은 우리들 탓이였다. 우리가 낸 세금 수조 원을 처박고도 그보다 더 쏟아부어도 끝이 안 보인단다.

그래도 3층낙조대에서 조망하는 고군산열도를 품은 서해를 바라보는 정취는 평온하고도 아늑할 텐데 그마져 해무에 감감이다,

여기서 맞는 수평선으로 지는 석양은 황홀한 애잔함에 가슴 쓸어내리며 묵상에 들게 한단다.

나는 그 석양의 타는 노을빛에 나를 사르고 싶어 왔음인데 시나브로 모여드는 구름은 다음을 기약케 한다. 그래도 광활한 김제평야를 붓칠하는 푸릇푸릇한 봄기운이 지평선을 낳아, 하늘과 땅과 바다가 맞닿는 우주의 한 중심에 선 나를 발견케 해 탄성을 질렀다.

낙조를 못 볼라치면 어두워지기 전에 망해사를 떠나야했다.

아직 시뻘겋게 달구지 않은 이른 봄의 해님이 구름사이로 살짝 얼굴 내민 모습이 팽나무에 걸렸다. 다시 숨는다.

정각 & 종각

그 여리고 아쉬운 빛살을 자꾸 뒤돌아보며 망해사를 떠나왔다.

시뻘겋게 타는 용광로 속에 나를 집어넣으러 언제 다시 발걸음 할까?

바다도 갯벌도 아닌 폐허의 저 황무지는 타는 불꽃 속에서 어떤 모습일까?

바다와 맞대어 짝을 이뤄야 신명나게 살맛나는 절이 우리나라엔 세 곳이 있다.

동해 낙산사와 남해 항일암과 서해 망해사다. 조상대대로 천여 년을 지킴이 해온 자존심을 우린 어쩌자고 그 간단한 불침번 노릇도 못한 찌질이가 됐을꼬? 

2016. 04. 03

해우소
팽나무 뒤 井閣이 앙증맞다
매향 앞의 우물
새만금바람길 안내판과 부도
바람길에 깐 보도블럭이 흠이다
황무지화하는 바다. 왼편에 신포항이 보인다
파시같은 신포항

 

해풍속의 명자꽃
바람길에서 본 김제 만경평야
양지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