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바람에 아쉼 달랬던 사자산, 제암산
“안녕하세요. 깡쌤입니다.
이렇게 메시지 띄워도 되는지?
아까 철쭉산행 건으로 마루밴드엘 드니 댓글이 있데요.
일욜 제암산행하시나요?
제 딴엔 반가워서 메시지 씁니다.
가심 일욜에 뵙지요.
결례 안됐음 합니다.”
“아~ 네, 깡쌤님 반갑습니다.
제암산엔 울 산내음도 동행합니다.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반겨줘서 기쁩니다.
산내음은 어떤 향을 뿌릴지?
부탁합니다.”
“아~ 일욜에 뵈어요.”
-형제바위-
엊그제 오후 ‘그곳에가고싶다’님과 나눈 메시지가 새록새록한 일욜 아침, 제암산 철쭉꽃바다에서 헤엄을 치고파 버스에 올랐다.
25번고속국도를 달리던 버스가 휴게소에서 숨을 고를 때 나는 버스에서 ‘그곳에가고싶다’님과 인살 나눴다.
간단한 댓글 나눈 지가 일 여년은 족히 됐을 테다. 나는 ‘그곳엘 가고 싶다’며 그곳에 가서 ‘그곳에가고싶다’님을 뵙겠다고 몇 번이나 되 뇌인지라 첫 만남치곤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덩달아 ‘산내음’님과도 반갑게 악수를 했다. 정녕 지인들이 오랜만에 해후하는, 반가워서 수다스런 그런 낯익은 풍정을 비좁은 버스 속에서 태연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말이다.
우리가 자리에 앉길 기다렸다는 듯이 버스는 달려 열시반쯤 제암산자연휴양림입구에 우릴 해방시켰다. 해방은 끼리끼리 나뉘어 산행에 드는 자유를 말함이기도 했다.
‘그곳에가고싶다’님이 감기로 짧은 코스 산행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며 ‘산내음’님이랑 뒤처진다.
-사자산-
홀로산행을 하는 내가 어떤 걸 기대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싱겁고 시니컬한 기분이 들었다. 동행이 수반하는 교분도 산행의 또 다른 재미라 여기기에 못내 기대했었다.
그런 기분은 산속을 후비고 들어가면서 웃고 있어야할 철쭉이 안 보인 탓에 진한 아쉬움으로 엉키는 거였다.
철쭉이 없는 건지, 안 핀 건지, 피었다 진건지 가늠이 안 됐다. 상록수님 말따나 본격 철쭉군락지에 닿으면 연분홍바다에 멱 감을 수 있을 테니 좀 느긋해질까 보다.
-보성만-
진홍 꽃 대신 연둣빛 신록이 싱그럽다. 관목들은 연초록 잎으로 성장을 하고 키 큰놈들은 지금 꼬깃꼬깃 말아둔 연두이파리를 생살 찢고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
오월의 부신 햇살이 연두잎새에 뽀뽀를 하고 있다. 풋풋한 이파리들은 키스론 양이 안찼던지 햇살에 몸뚱일 스킨십하느라 뒤척거린다.
입맞춤하다 놀란 햇살이 부서졌다. 부서진 빛의 프리즘이 골짝에서 너울댄다. 사자산(668m)등줄기에 피다지다 만 철쭉이 처연하다. 연분홍바람 대신 연둣빛바람이 능선을 타고 오른다. 보성만에서 엊밤을 새우잠 잔 바람일 것이다.
아직 고운 때깔 잃지 않은 철쭉이 바람의 장난에 떨고 있다. 바람은 얼마 전 이쁜 꽃잎을 뒤흔들어 망처 놓긴 했지만, 결단코 성가시게만 구는 놈이 아니다. 매파노릇을 하여 신천지를 일깨우는 우주의 동반자다.
안무일까, 해무일까, 아님 미세먼지까? 제암산준령도, 보성만도, 거기에 엎드린 올망졸망한 섬들도 뿌연 우주의 차일에 갇혔다. 살아있는 건 바람뿐인가 싶다. 환하지 못한 심정을 달래주는 바람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한 떼의 철쭉이 그 바람결에 해맑게 인사를 한다.
산뜻한 꽃잎에 내려앉은 바람은 하나의 암술을 보호하기 위해 빙 두른 열 개의 수술을 일으켜 맑은 영혼을 지니게끔 한다. 끼어들었지도 모를 미세먼질 털어내고 깨끗한 신방을 차려 동종의 영혼을 받아내게 말이다.
매파 대신 살랑살랑 노래를 들려주며 기다림의 낭만에 젖게하고, 허망의 슬픔으로 우울에 들지 않게 하는 것도 바람이다. 바람은 아름다운 꽃들이 자만하거나 사치의 향락에 빠져들게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 바람의 노래를 듣고 있다. 지난 번 폭풍 같았던 놈들이 쑥대밭을 만들어버린 산등성이 철쭉밭에서 연둣빛바람의 위무를 공감한다.
하늘과 산릉이 맞닿은 이 광활한 철쭉동네가 미친바람만 없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그 연분홍세상을 아니 진홍의 절규를 못 보게 된 아쉬움이야 말할 수 없지만 정녕 속 아려 풀죽은 그들의 모습에 나의 사치가 부끄러웠다.
곰재산일대의 철쭉군락은 한없는 아쉼과 처연함이 물씬거렸다.
-상황봉커플, 이후 내가 대역을 했다-
금년엔 철쭉이 언제 만개 했나 싶게 여영부영 눈부실 오월을 보낸 편이라고 곰재에서 아이스콘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도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군데군데서 황홀한 철쭉본래모습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진홍과 연분홍꽃잎 다섯 개에 반점까지 찍어 바르고 살포시 웃고 있는 철쭉은 참으로 아름답다.
오죽해야 절세미인 수로부인이 그 화려함에 미처 에로틱한 프로노를 꿈꿨을까?
프리섹스가 만연한 신라시대 모든 신들이 탐욕의 대상으로 섹시한 수로부인을 납치 통정했을 텐데, 정작 수로부인은 고혹적인 철쭉꽃을 탐했을 만큼 열정의 화신인 셈이다.
-촛대바위-
연분홍빛깔이 아직은 배어있는 철쭉골짝에 불침번처럼 서있는 형제바위와 촛대바위도 풀죽어있나 싶었다. 제암산이 붉게 타오르다 진홍의 꽃물이 용암처럼 훌러 내리는 골짝의 바위라면 얼마나 장엄할 것인가!
아쉬운 철쭉골짝에서 어찌하다보니 나는 상황봉커플의 수하가 됐다. 사진쟁이 상황봉님의 모델(?)로 픽업 돼 한나절동안의 커플노릇 하느라 하산길이 즐거웠다.
여태까지 적잖은 산행을 하면서 내 사진이래야 고작 한두 컷 이였는데, 그의 연출에 덩실 춤추다 보니 그가 혹시 내사진으로 도배힐까 싶어 어줍잖기도 했다. 암튼 상황봉님 내외의 격의 없는 살가움이 사뭇 고마웠다.
‘그곳에가고싶다’와 ‘산내음’에 기대했던 동행의 즐거움을 상황봉님커플이 대신하나 싶기도 했고-. 울 셋은 4시쯤 날머리에 도착했다.
뒤풀이가 무르익고 있었다. 이윽고 '그곳에가고싶다’와 ‘산내음’이 합석했다.
우린 세월을 꾀나 삭힌 지인들처럼 격의 없음에 내 스스로 움찔했다. 아니 산님들은 어쩜 넘 순수해서 가슴 활짝 여는통에 금방 십년지기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동양적인 풍모와 서구여인 이미지를 엿보게 하는 '그가싶'과 '산내음'은 얼마나한 단짝인지를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참으로 반가웠다. '행`둘' 그곳엘 가야한다.
-제암산정-
아쉬운 철쭉바다 헤엄 대신 ‘상황봉님커플’과 ‘그곳에가고싶다’와 ‘산내음’이 풍기는 연분홍바람으로 뿌듯한 추억 한 장을 간직함이라.
흐지부지한 철쭉의 아쉼을 따뜻한 산님들의 정감으로 열락하는 산행이였다.
마루님들의 손길 고맙슴다.
2016. 05. 08
* 위 필자사진 6장은 상황봉님 작품임
-'그곳에가고싶다'&'산내음'일행- 상황봉작품
-상록수커플 2컷- 상황봉 작품
-제암산정에서 상황봉의 스카이다이빙?-
-대산저수지와 파리엉덩이 만한 들녘-
-쓰레기선물(?) 든 뒷태가 아름다운 산님들-
-철쭉 대신 지피운 산님꽃-
-삼층바위-
-제암의 눈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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