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의 속멋-낙조대,쌍선봉,월명암,직소폭포

 

변산반도국립공원내변산 깊은 골736번 도로의 벚나무의 퍼레이드는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아픔의 몸살기로 떨고 있다. 담 주말이면 함박눈처럼 눈꽃분분 휘날릴 것이다. 열시 반, 공원분소직원 말은 회망골짝등정은 5월에 가능하단다.

가마소와 와룡소를 헤집고 용각봉등정을 묻는 내게 민망하리만치 친절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월명암 뒤 낙조대와 쌍선봉을 찾기로 했다. 가뭄 탓인지 봉래구곡도 스산한 겨울잔영이 아른댄다. 봄을 일깨우려는 실개울속삭임에 수선화가 청초하다.

둠벙물가에 빠저 죽어가며 중얼거린 나르키소스의 사랑한다는 고백은 에코의 울림으로 봉래계곡을 깨우나싶다. 실개울물이 그리 맑을 수가 없다. 월명암 오르는 바윗길은 오르면 오를수록 첩첩산릉비경의 파노라마다. 내변산연봉들이 실안개를 시스루자락 나풀대듯하며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은 몽환적이다.

몽필화 한가운데 사파이어처럼 알 박힌 분옥담은 내변산의 눈깔같다. 낙조대를 향하는 능선엔 조릿대나무숲이 펼쳐졌다. 찬겨울을 난 꼬장꼬장한 진초록이파리가 내 사타구니를 더듬으며 재잘댄다. 그 속삭임과 전율이 감미롭다.

푸른호수가 분옥담

따사로운 햇살에 감미로운 해풍의 스킨십까지~! , 오감을 닭살 돋게 하는 봄맞이 외출에 난 스르르 나를 잊어가고 있었다. 덩치 큰 바위를 쌓아놓은 낙조대는 정작 서해바다도 안무 속에 숨겨 놨다. 하긴 해넘이가 아직 멀었는데 푸른바다를 애써 끌어올 까닭도 없겠다.

낙조대

낙조대는 해질녘에 와야 한다. 붉디붉게 하루를 불태우는 황혼녘에 여기에 서야함이다. 그 불타는 시각에 여기 서서 내 찌꺼기도 얼마쯤은 태워야하는 것이다. 변산팔경의 하나인 서해낙조-붉게 타는 해질녘의 월명무애(月明霧靄)를 안으러 언제 날을 잡아 다시 오리라.

낙조대서 조망하는 안개 속의 서해

쌍선봉을 향한다. 바람꽃, 고깔제비꽃, 깽깽이풀꽃, 현호색이 누굴 향해 추파를 던지고 있나! 쌍선봉은 월명암에서 보면 쌍봉낙타모습이다. 헬기장으로 둔갑한 쌍봉에 선 나는 서북쪽에 펼쳐진 진경에 감격하여 잠시어리등절 했다.    엷은 안무 속의 그림은 지난 만추에 접했던 기막힌 풍경-하늘과 별과 바람만이 알고 있는 의 뒤태여서다.

"섬

하늘만 알고/ 새들만 찾는/ 산속의 섬

해 뜨고 / 달 가는/ 별이 속삭이는 섬

산바람소리에 숨 쉬다/ 눈비에 몸 푸는/ 쪽빛치마 두른 섬

눈길도 발길도 닿지 않는/ 첩첩산해의 섬

오늘도 사람들을 위해 안개이불 말린다. "

 

                            [ 출처: http://pepuppy.tistory.com/649 ]

쌍선봉서 조망한 '섬'

하늘아래 첩첩산록의 부안호가 낳은 초록무인도의 실체를 확인할 수가 있는 곳이 쌍선봉인 거였다. 내변산의 진경은 파헤칠수록 점입가경이란 걸 절감케 한다. 월명암을 향한다. 골짝의 사찰언덕배기를 누가 파스텔톤색칠 했을까?

진초록언덕배기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동토에서 한겨울 난 노랑상사화의 시퍼런 꿈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애처로운 그리움의 일생이다. 모진 설한파 견뎌내며 밀어올린 초록이파리는 아픈 생채기의 시작일 뿐이다.

노랑상사화언덕

자칫 문드러질 만치 시푸른 잎은 시들어야만 아니, 죽어야만 비로써 꽃을 피운다. 난 노란상사화가 언덕빼기를 물들인 월명암을 기억하고 있다. 내사랑하는, 내가 낳은 새끼를 보지 못하고 복상사하듯 죽어야하는 비극의 일생이 그들의 운명이다.

그 설픈 언덕위에 수선화가 흐드러지고 단출한 사찰들이 고즈넉하다. 1300여년전 부설거사가 터를 닦았다는 관음전 마당에도 수선화가 새초롬하다. 부설거사(浮雪居士)는 재가출가인(在家出家人)으로 세계3대거사로 칭송받는다.

관음전

불국사원정스님한테서 득도하고 영희, 영조 두 도반과 수련하려 오대산을 향하던 중 김제 구()씨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구씨집엔 18세의 이쁜 벙어리처녀 묘화(妙華)가 있었다. 근디 그 처녀가 부설을 보자마자 신통하게 말문이 트였다.

월명암마당에 만개한 수선화 & 매화

이에 처녀가 부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어여삐 여긴 부설이 영희,영조 두 스님을 떠나보내고 그냥 거기에 눌러 앉았다. 생불이 되려는 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기도 함인데 처녀와의 일생도 불도란 생각에서다.

종각

부설은 묘화와의 탈계의 삶에서 등운(登雲)과 월명(月明)이란 남매를 낳고 이곳에 토굴을 지어 15년간 수신재가하다 치병(治病)을 한다. 그때 영희, 영조 두 스님의 예방을 받게 되어 셋은 각자의 법력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월명암뒤에서 조망한 내변산릉들

물을 가득 담은 병 세 개를 공중에 매달고 지팡이로 때리는 법력이었다. 두 스님이 휘두르는 지팡이에 물병은 공중에서 박살 나 흩어지는데, 부설의 물병은 병만 깨져 떨어지고 물은 그대로 얼어 공중에 매달린 채였다.

"()은 육신이요, 떨어지지 않는 물은 진성(眞性)이다. 분별과 시비를 놓아버리니 오직 마음의 부처를 보며 스스로 귀의하노라" 라고 게송을 남기며 부설은 거기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다.

월명암에서 본 쌍선봉

그 후 묘화는 모든 재산을 털어 절을 세우니 부설사, 딸 월명은 이곳에 월명암, 아들 등운은 계룡산에 등운암을 지어 선풍을 날렸다. 라고 부설전은 전한다. 부처는 절간의 등신불도, 스님도 아닌 내 마음이란 걸 부설거사는 증명해 보였던 거였다.

묘적암요사체 토방서 꿈쩍도 않는 견공-열반게송을 --?

부설거사의 불성이 월명암에 성성함에 이리 아늑하고 평온한지 모르겠다. 작년에 왔을 때 마중 나왔던 우람한 늙은 개가 묘화당 옆 요사채토방에 옆드린 채 꿈적도 않고 눈만 껌벅대고 있다. 놈도 그렇게 열반에 들 요량인가? 싶었다.

월명암입구-견공이 마중을 나오곤 했는데~?

직소폭폴 향한다. 봉래계곡 봄을 깨우는 실개울물소리 따라가다 선녀탕에 들었다. 숨겨진 폭포가 살며시 내다본다. 소는 명경이다. 그 위의 분옥담은 호수다. 봉래골진경을 그대로 호반에 가둬놨다. 물 속에서 어른대는 실루엣은 말초신경촉수까지 일으켜 세운다.

분옥담과 관음봉

몽환적이다. 다시 깔끄막길을 오르다 급살 맞게 하강한다. 가뭄이어도 직소폭포는 우렁차다. 잠시 쉴 요량으로 소 바위에 앉았다. 아주머니 세 분이 와선 방을 빼란다. 사진 찍겠단다. 내 보기엔 결코 뷰포인트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레이디 퍼스트인가?

분옥담

봉래구곡을 되짚어 하산한다. 내변산의 멋은 한도 끝도 없다. 오밀조밀한 골짝의 암자와 물길이 이어지는 담소와 호수에 바위 숲은 단애를 만들어 폭포까지-산수자명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오후4시가 돼가고 있었다. 담 주엔 벚꽃나들이로 내변산은 한껏 폼잡을 것이다.                      2017,04. 02

직소폭포

분옥담의 실루엣

선녀탕

 

쌍선봉정상헬기장

낙조대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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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eh 2019.08.08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사진과 글 잘 보고 갑니다. 월명암에 가 보고 싶어지네요..